「일과 사람」전진경 작가 인터뷰

즐겁게 자유롭게 그리고 싶어요!
 

구불구불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산기슭 아래 작은 집. 문을 열고 들어서니 낯선 나라에 온 듯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작가를 꼭 닮은, 독특하고 멋진 작업실에서 『맥을 짚어 볼까요?』와  『책 만드는 이야기, 들어 볼래?』 의  전진경 작가를 만났습니다.    
 
 
 
먼저 『맥을 짚어 볼까요?』 이야기부터 할게요. 한의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곰곰 팀에서 처음에 몇 가지 일을 제안해 주었어요. 그런데 새벽부터 활동하는 일은 안 될 것 같았어요.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는 게 저한테는 무리였거든요. 한의사는 진료 시간 동안 취재하면 되니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취재는 어떤 식으로 했나요? 따로 공부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취재원과도 궁합이 있어요. 처음 뵌 한의사 선생님과는 잘 안 통했어요. 주로 취재한 선생님은 두 번째로 뵌 분인데 질문의 수준을 개의치 않는 점이 우선 좋았어요. 주로 제가 질문을 하고, 선생님께 설명을 듣는 식이었죠. 어떤 질문을 해도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어요. 선생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아, 나도 공부를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따로 자료도 찾아보고, 책도 읽고 그랬어요. 알면 알수록 한의학의 신비로운 점들이 점점 더 보여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면요?
한의사는 맥을 짚어서 여러 가지 체질과 증상, 병을 이해하잖아요.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선생님은 먼저 건강한 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건강한 맥을 알아야 나머지 맥들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처음에는 맥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려웠는데, 제 나름대로 ‘맥은 우리 몸에서 보내는 신호’라고 정리를 하니 이해가 되었어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셨는데,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저는 순수 미술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 이야기를 꾸려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취재 가서 본 것을 무작정 그렸어요. 낱장 낱장으로요. 나중에 한데 모아서 연결 고리를 만들어 냈고요. 어렵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책에 나온 모든 에피소드들이 다 ‘진짜’인 셈이 되었어요. 제가 한의원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그대로 담았으니까요.
 
『맥을 짚어 볼까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몸의 이치를 설명한 장면을 좋아해요. 한의학의 개념이 그림으로 잘 표현된 것 같아서요. 『맥을 짚어 볼까요?』는 한지에 그렸는데, 번짐이나 선의 느낌을 제 의도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조금만 호흡이 흐트러져도 인물이 굳어지는 듯해서요. 그래서 모든 장면을 아주 여러 번 그렸어요.
 
한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나요?
보통 양방 병원에서는 진료가 몇 분 만에 후다닥, 끝나잖아요. 의사 선생님한테 질문하기도 쉽지 않고요. 그런데 한의원은 그렇지 않아요. 때때로 한의사는 환자 하소연도 들어주고, 공감도 해 주지요. 제가 취재한 한의사 선생님은 환자가 마음을 편안하게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어요. 그런 면에서 한의사는 병을 치료하면서 증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까지 조언해 주는 상담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만드는 이야기, 들어 볼래?』는 어떻게 구성했나요?
이 책은 곰곰 팀이 글을 썼는데요, 맨 처음 원고는 엄청나게 길고 복잡했어요. 아무래도 본인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내용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죠. 또 대부분의 장면이 출판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정적이었고요. 그래서 제가 인쇄소를 첫 장면으로 하자고 의견을 냈어요. 좀 더 동적인 느낌으로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물감이랑 사인펜 등 재료가 다양하고, 콜라주 기법을 썼는데요, 이렇게 장면을 연출한 이유가 있나요?
『맥을 짚어 볼까요?』를 작업하면서 너무 무난하게 그리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좀 더 자유롭게, 풀어진 느낌으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 만드는 이야기, 들어 볼래?』는 새로운 재료들을 많이 시도했어요. 참 즐겁게 작업했고 그런 마음이 그림에 드러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다면요?
책장을 배경으로 앉아 있는 장면이요. 면지에 그려진 스케치를 보면, 책장이 평면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채색할 때 평면보다 줌 인으로 구도를 잡는 게 좋겠다 싶더라고요. 즉흥적으로 변화를 줘봤는데, 훨씬 더 느낌이 살아난 것 같아요.
 
『책 만드는 이야기, 들어 볼래?』를 작업하면서 편집자에 대해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편집자와 긴밀하게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편집자는 작가를 돋보이게 해 주는 역할을 하는구나' 하고요.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책 속 편집자들을 아주 멋지게 그리고 싶었어요. 머리도 예쁘게, 옷도 세련되고 개성 넘치게요. 보통 편집자들이 안목은 거의 잡지 화보 수준인데, 현실은 늘…… 잘 아시잖아요? 하하하.
 
개인 작업도 꾸준히 하시잖아요. 그림책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사실 그림책은 제가 크게 욕심내던 분야가 아니었어요. 늘 제 작업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두 책을 작업하면서 그림책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고, 장면을 꾸려 나가는 것이 마치 영화감독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요즘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떠오르면 ‘아 이거 그림책으로 그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작가는 매번 “습관처럼 그림을 그리자”고 다짐을 한다고 합니다. 인터뷰 내내 유쾌하게 웃으며 시원시원하게 말하던 전진경 작가는 신 나게 자기 길을 열어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개인 작업 사이사이, 우리에게 신선한 그림책을 보여 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