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닐곱 살, 그들의 분실된 나이를 찾습니다 - 7~8세가 읽는 책 '사계절 웃는 코끼리' 시리즈를 읽으며

어린이에게 '너 참 어른스럽다'는 말은 칭찬일까 아닐까. '아는 게 많고 생각이 깊다', '몸가짐이 차분해 제 몫을 한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속된 일을 많이 안다', '표정이 활발하지 않고 어둡다'는 말을 에둘러서 한 경우일 수도 있다. 긍정적이든 아니든 '어른스럽다'에 담긴 의미는 '발산적'이기보다는 '수렴적'이며 '동적'이기보다는 '정적'이고 '밝음'보다는 '어둠'에 가깝다. 거꾸로 어른에게 '아이 같다'고 할 때는 '뒷걱정 없이 환하게 웃을 때'나 '행동이 크고 움직임이 무딜 때'처럼 반대의 경우가 많다.

어떤 사회에서 어린이에게 '어른스럽다'는 말을 칭찬으로 쓴다면 그 사회는 아직 근대초기에 머무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있다. '조숙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던 17세기 후반 서양에서는‘일찍 해치우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목표였다. 당시 바이예가 쓴『학업으로 유명해진 아이들』이라는 책에는 14세에 대학을 마치고 17세에는 박사 자격을 얻는 얘기가 나온다. 재능 덕분이든 속성교육 덕분이든 어린이는 조숙해야 했다. 웃을 새도 없이 근엄해지는 법부터 배웠다. 그러나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반성이 일어난다. 살아가려면 지식 못지않게 판단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깨달은 것이다. 특히 창의력은 몸과 마음의 성장 관계를 무시하고 서둘러 발달시킬 수 없고 성장을 재촉할 경우 오히려 해가 되었다. 따라서 조숙함은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된다.
지금 우리 어린이는 어떨까. 우리 사회가 근대와 탈근대의 징후가 뒤섞여 몸살을 앓고 있는 것과 같은 처지다. 지적으로는 조숙할 것을 강요하면서 감성적으로는 '아이답게 키우고 싶다'는 말을 하는 부모가 많다. '초등학교 1학년이 2학년 과정 마친게 무슨 선행학습이에요. 예습이지. 2-3년씩은 미리 해야 선행이잖아요. 왜들 그래요. 방학 끝나가는데 다음 학기 문제집 반도 못 풀린 엄마들처럼.' 개그맨이 이렇게 말할 때야 웃어 주면 그만이지만 또래엄마가 그런 말을 하면 학원광고부터뒤지는게 현실이다. '입을 덜기 위해 일하러 나갈 것'을 강요당했던 조부모 세대와 다른 방향으로 우리 아이들은 조숙의 명령을 받고 있다. '공부부터 하고 다른 건 나중에'라는 말이 시작되는 나이가 무려 예닐곱 살이다. 학교 갈 나이이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 아이들이 웃지 않고, 코끼리처럼 쿵쿵거려야 할 아이들이 빈대마냥 쪼그라져 학습지에 들러붙어 있다. 그들의 나이는 접은 바짓단처럼 껑충 분실되었다.

7-8세가 읽는 책‘사계절 웃는 코끼리’시리즈는 그런 점에서 야무진 책이다. '광기 어린 조숙의 독서문화'에서 빠져나와 예닐곱 살 어린이들의 잃어버린 나이를 찾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전집과 단행본을 불문하고 영·유아용 서적은 넘쳐난다. 초등학생을 위한 동화책은 '학습 목록'으로서 쏟아진다. 그 사이에 '낀 세대'인 예닐곱 살 아이들은 억울한 말을 들어야 했다. '우리 아이가 그림책은 좋아했는데 학교 가면서부터 만화만 찾고 책을 싫어해요'라는 나무람 말이다. 책이 싫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눈으로 속마음을 읽어 주는 책이 없었던 탓이다. 예닐곱 살이면 기승전결 구조의 박진감보다는 떠들썩한 자신만의 하루를 즐길 때다. 내 삶이 이미 흥미진진한 절정으로 가득한데 이야기의 전개며 인물 묘사에 붙잡혀 있을 마음의 짬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는 7-8세가 읽는 책 '사계절 웃는 코끼리'처럼 시원시원하면서 살짝 '쓸쓸함'을 알아가는 때다. 서정적 태도도 이즈음에 싹튼다.

7-8세가 읽는 책 '사계절 웃는 코끼리'시리즈는 지금까지 네 권이 나왔다. '본 대로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 진짜 보물이라는 걸 알려 주는 김옥의『보물 상자』, 여섯 살의 하루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김양미의『여름이와 가을이』, 성큼 걷고 훌훌 날아 보라고 권하는 김옥의『달을 마셨어요』, 어린이의 용기를 외면하는 사회에 일침을 놓는 박효미의『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 이야기들은 문장이며 내용에서 서두르는 기색이 없고 신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제 나이를 꼬박꼬박 챙겨 갈 수 있는 섬세한 소재들이어서 반갑다.
 
『보물 상자』에는 다음과 같은 독백이 나온다.
'내 마음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없습니다. 나도 겨우 여덟 살인데.' 조숙을 권하는 사회는 이 사회에 자라는 나이, 변화의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종 완성형만을 들이밀며 현재의 대차대조표를 적는다. 이 숨 막히는 답답함 속에서 7-8세가 읽는 책‘사계절 웃는 코끼리’시리즈가 발간되었다. 우리 어린이들의 숨통을 틔워 주고 더 많이 웃게 해 주고 더 크게 천천히 움직이도록 도와주기를 바란다.
 
 
 
김지은│어린이 철학을 공부하면서 동화를 썼고 동화를 깊이 읽기 위해 철학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책 넣는 하얀 면가방을 손으로 빨아 빨랫줄에 널어놓고 새로 나온 동화책을 읽을 때가 제일 좋다. 월간「열린어린이」, 네이버 캐스트 등에 동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7-8세가 읽는 책 '사계절 웃는 코끼리'
김옥, 김양미, 박효미 지음│서현, 정문주, 김진화 그림
7-8세가 읽는 책 '사계절 웃는 코끼리'는 그림책에서 읽기 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는 7, 8세 어린이들에게 스스로 책을 읽는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친구와 가족, 학교생활을 이해하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기르며, 정확하고 풍부한 우리말 감각을 익힐 수 있다. 지금까지『보물 상자』,『 달을 마셨어요』,『 여름이와 가을이』,『 학교 가는 길을 개척할 거야』가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