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발견_풀려나온 몇 가닥의 실은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콜라주는 ‘풀로 붙이기’를 뜻한다. 1912년경에 브라크와 피카소 등의 입체파 화가들이 유화 그림의 일부분에 신문지나 벽지, 악보 등을 풀로 붙였던 ‘파피에 콜레’가 시작이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실밥, 머리카락, 깡통, 사진 등 캔버스와 이질적인 재료를 오려 붙이는 기법으로 확장되었다. 일상생활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요소들이 충동적으로 모인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부조리하고 혼란스러운 사회를 풍자할 수 있었다. 또한 이미지의 현실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것도 콜라주의 장점이었다.
 
<작은 발견>은 섬세한 콜라주와 포토몽타주로 그림책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은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의 신작이다. 둘 이상의 사진을 한 화면에서 재촬영하여 조립된 이미지로 만드는 포토몽타주 기법은 이 책에서 멀고 먼 시대와 오늘의 독자를 하나의 관계로 묶어 주는 절묘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녀는 그림책 안에서 목화 실, 옷감, 나뭇잎, 옛날 사진 같은 실물 소재에 밀도 높은 드로잉을 결합시켜 하나의 독창적인 공간을 만든다. 조각조각 선택된 사물의 이미지가 얼핏 냉정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해서 그녀의 작품을 처음 본 독자는 약간의 거리감을 고백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잠재된 실물의 온기가 느껴진다. 실 한 가닥, 빛바랜 사진 한 장, 둥글게 모서리가 닳은 낡은 물체가 주는 사실적인 힘은 독자를 그림 안쪽의 진실 곁으로 바짝 끌어당긴다. 어린이 독자는 곧 만져질 것 같은 그림책 속 사물을 보면서 이야기에 한층 가까이 간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어린이가 즐겨하는 뜯어 붙이기 놀이처럼 자유롭게 전개되는 이미지는 속 시원한 해방감도 함께 선사한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2011년과 2013년 볼로냐 도서전에서 라가치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다. 반세기를 넘긴 라가치상의 역사에서 한 작가가 두 번이나 라가치상 대상을 받은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그림책을 한국 출판사를 통해서, 오랜 파트너인 기획자 이지원 씨와 함께 펴낸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한국을 ‘창작의 조국’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작은 발견> 은 폴란드 현지에서 출간되었으나 여전히 우리와 무척 친근한 작가다. 그녀는 꾸준히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를 오가는 작업을 해왔고 이 그림책도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5그램짜리 실패에 적혀있는 상표 ‘ROTECH’나 ‘REGIA’는 오래 전 동부 유럽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던 제품의 실재했던 브랜드 이름이다. 여기 나오는 실패 중 몇 가지는 라이프치히 민속박물관에 모셔져 있을 정도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물건들이다. 작가는 이 해묵은 실타래를 가져와 우리 곁의 살아 있는 인물로 변신시켰다.
 
실은 가늘지만 길고, 여려 보이지만 가닥가닥 모여서 힘을 합하면 그 무엇보다 끈질기고 강하다. 작가는 어느 폴란드 할머니의 반짇고리에 남아 있었을 것 같은 실패 몇 개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간의 역사를 복원해낸다. 이웃집 아저씨와 아줌마들로 의인화된 각양각색의 실패들은 저마다 대단치 않아 보이는 작은 일에도 자신의 몸통을 기꺼이 내놓는다. 그들이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몸에서는 실이 풀려나오고 그들은 작아진다. 풀려나온 몇 가닥의 실은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양복 단추를 꿰매기도 하고 소녀의 구슬 목걸이를 엮어주기도 했지만 송아지의 목에 방울을 달아주기도 하고 볏단을 묶거나 거대한 물건을 들어 올리는 밧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절벽에 드리운 실 한 가닥에 매달려 목숨을 건지고, 구원의 줄사다리가 되어줄 때도 있지만 작품 속 실타래 인간들은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언제나 묵묵하게 맡은 바 자신의 일을 해낸다.
 
실타래 인간들의 노력은 실생활을 위해서 요긴하게 쓰이기도 했지만 실재하는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사라진 추억을 견인하는 일도 해냈다. 친구를 잃은 할머니들은 굵은 실 몇 가닥이 힘껏 지탱해주는 그네에 앉아서 하늘나라로 간 친구를 떠올린다. 이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면 실타래 인간들이 이토록 온 힘을 다해서 버텨주고 있는 이 세계에서 살면서 우리는 그동안 그들의 존재를 깨닫지도 못했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어린이가 초등학교 중학년쯤 되면 ‘장차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점점 어린 나이부터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그림책은 ‘진로’나 ‘직업’이라는 말로 미래의 삶을 구분 짓기 전에 먼저 탐험해야 하는 성스러운 ‘일’의 영역이 있음을 일러준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너도나도 내 실타래의 실을 풀어서 다른 사람을 살리고 남의 실타래에 의지해 소망을 이루면서 살아간다. <작은 발견>은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선 어른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감아 들여다보게 해주는 이야기이면서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어린이들에게 자기 존재의 크나큰 가능성을 실감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모든 세대를 위한 그림책이다. 가족이 함께 읽는다면 지나온 역사를 실타래의 실처럼 풀어내면서 깊은 대화의 시간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지은_어린이청소년문학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