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고 아름다운 선택

나는 앞산을 바라보았다. 사택을 막아선 캄캄한 앞산은, 산이 하늘이 되어 올라갔는지 하늘이 풀어져 내려왔는지 그 경계는 보이지 않고 온통 검은빛만 보였다. 사북은 하늘이 클까, 산이 클까? 당연히 산이 크다. 그럼 하늘이 높을까, 산이 높을까? 그건 막상막하다. 어떤 때는 산이 하늘을 뚫고 치솟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하늘이 산을 비켜 저만큼 올라가 있기도 하니까. 그렇지만 하늘이 산보다 높을 때는 청명한 가을날 며칠을 빼고는 별로 없다. 어쨌든 손바닥만한 사북의 하늘은 산이 떠받쳐 주지 않으면 금발 밑으로 쏙 빠져 산산조각이 날 것만 같다.  - 『내 사랑, 사북』 중에서
 
사북이 언제부터 내 머릿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읽은 ‘폭도들이 일으킨 사북 사태’에 관한 짤막한 기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존경하던 조세희 선생님의 사진집 『침묵의 뿌리』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 곳에 꼭 가봐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한 구석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곳에 간 것은 사북과 고한이 스러져 가고 있던 1993년 겨울이었다. 그 즈음 문을 연 ‘흑빛 공부방’ 수녀님과 자원 교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진짜로 내가 바란 것은 진료소 수녀님을 만나는 것이었다. 7년째 만석동에서 살고 있던 나는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빈민 지역의 삶에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임길택 선생님이 시에서 노래했듯 모두들 떠나는 그 까만 마을을 떠나지 않고 아이들 곁에 남아 계시는 장 수녀님을 직접 뵙고, 그 곳을 떠나지 않는 까닭을 묻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수녀원 담에 황재형 화백과 탄광 노동자들이 그린 벽화를 보고 싶었다.
청량리에서 밤기차를 타면서부터 사북에 가 있는 며칠 동안이라도 만석동을 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밤새 산을 돌고 돌아 도착한 그 곳은 또다른 만석동이었다. 검은 하늘 아래 검은 산, 그 산등성이에 아슬아슬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잿빛 사택들, 기찻길 아래 마을을 흐르는 검은 물, 그 추레한 시내를 지나다 만나는 아이들은 만석동 아이들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처음엔 가슴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다 스러져 가는 그 곳에 가서야 수녀님뿐 아니라 다른 사북 사람들도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북 사람들에게 탄광은 절망인 동시에 여전히 희망이었다.
 
 
노랫가락이 울리자 지나가던 옆집 아저씨 아줌마들이 한 사람씩 고개를 내밀며 들어왔다. 좁은 방 안에 서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삽시간에 판이 벌어졌다. 하여튼 사택 사람들은 거의가 다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건수만 하나 잡았다 싶으면 모여들어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그나마 보기 좋은 것은, 돼지고기 한 점도 나눠 먹기 싫어서 꽁하던 왕소금 우리 엄마가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분위기가 흥겨워지면 어느새 돼지고기 다섯 근을 아낌없이 기부하는 통 큰 여인네로 변한다는 거다. -『내 사랑, 사북』 중에서
 
 
사북에 간 이튿날 저녁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부부는 탄광 노동자로 일한 지 20년이 넘은 분들이었다. 이미 진폐증 증세가 나타났다고 쓸쓸히 웃던 주인 아저씨는 돼지고기 굽는 냄새를 맡고 하나 둘씩 모여드는 이웃들을 보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아저씨가 손수 만들었다는 큰 석쇠 위에 얹은 고기가 채 익기도 전에 좁은 마당이 사람들로 꽉 찼다. 아빠가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있는 바람에 고아 신세가 된 삼남매, 진폐증을 앓는 아빠는 모시고 고개 하나를 넘어온 소년과 이웃 아저씨들, 그리고 공부방을 시작한 청년들과 수녀님, 자정이 넘도록 계속되던 만찬자리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하고서야 끝이 났다. 나는 그 날 밤 돼지기름이 덕지덕지 낀 그릇을 찬물로 닦으면서 장 수녀님이 그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까닭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
 
 
사북 사람들 모두가 계속해서 걸어 나가다 보면 탄가루가 날리지 않는 밝은 도시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산 속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괴물 같은 굴을 메우고, 저 게딱지 같은 집들을 모두 쓸어 버리고 온통 하얀 물감을 쏟아붓고 싶었다. - 『내 사랑, 사북』 중에서
 
 
공부방 때문에 만난 그 곳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모두 떠날 꿈을 꾸고 있었다. 산 너머 강릉이든 동해든, 아득한 서울 땅이든, 탄가루가 없는 하얀 도시로 떠나고 싶어했다. 만석동 아이들이 잿빛 하늘을 인 공장 골목과 쥐벼룩 천국인 판잣집을 벗어나고 싶어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북도 만석동도, 아이들의 발목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 뒤로도 몇 번 고개를 넘어 사북에 갔다. 갈 때마다 문을 닫은 광업소와 사택 지구는 폐허가 되어 갔고, 드디어 고한에 스몰 카지노가 들어섰다. 그리고 어느 날 이제는 그 마을을 떠나야겠다는 진료소 수녀님의 말씀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 곳에 갔을 때 수녀원 담벼락의 벽화도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한참을 벽화 앞에서 넋을 잃고 있었지만 울 수는 없었다. 그곳에서 살아 보지 않은 나의 눈물은 유치한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옥수 씨의 『내 사랑, 사북』은 1980년 봄에 일어난 사북 항쟁 이야기다. 이옥수 씨는 25년 전 사북에서 일어난 광산촌 사람들의 절규를 열여섯 살 수하를 통해 들려준다. 요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성에 눈을 뜬 사춘기 소녀 수하의 마음과 생각을 따라 사북으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연탄 때는 아랫목을 경험해 보지 못한 요즘 아이들이 수하와 수하네 가족, 미영이 언니와 사택 가족들 그리고 정욱이 오빠가 겪어 낸 1980년 봄의 그 일을 온전히 다 이해하고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 사랑, 사북』을 우리 만석동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지금의 이 물질적 풍요를 있게 한 광산촌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나서 요즘 아이들에게 사북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선택이 얼마나 용기 있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꼭 말해 주고 싶다.
그런데 더 먼저 할 일은, 1980년 그 때 사북에 계셨던 두 분 수녀님께 책을 보내는 일이다. 한 권은 페루로, 또 한 권은 장 수녀님이 계신 충북 괴산으로 보낼 것이다. 더는 진료소 수녀님이 아닌 일당벌이 농업 노동자로 사는 장 수녀님이 이 책을 가장 반기실 것 같다.
 
 
글 · 김중미 (동화작가)
 
 
1318 북리뷰 2005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