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맑은 사람들의 마을을 여행하며

몇 년 전,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윈난 성의 시골 마을을 여행한 적이 있다. 가난하고 거칠지만 순박하고 참 정겨운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돌아다니는 내내 다른 세계에 온 듯 황홀했다. 『안녕, 싱싱』을 읽었을 때 내 마음은 그때 만났던 소년들과 노인을 보는 듯 흥분되었다. 2000년대에 살면서 본 1960~70년대 마을의 사람들 마음이 여행객을 들뜨게 한 것처럼,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잃어버린 고향과 유년의 아름다운 마음이 짠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오원쉬엔이 아끼는 중·단편 소설 네 편을 직접 골라서일까. 『안녕, 싱싱』은 작품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다운 감성의 마을을 이룬 듯하다. 장편소설『청동 해바라기』(2007)와는 다른 단편소설의 색다른 맛이 나고, 단편집『바다소』(2005)보다는 표현이나 소재 면에서 더 신선하고 아름답다. 풍차, 소, 겨울 강, 폭설의 산골 등 즐겁게 걸었던 시골 마을에서 느낀 사랑은 샘물처럼 영혼을 적시고 가슴 한구석에 호젓하게 자리 잡는다.
 
슬픔을 태연하면서도 냉정하게 묘사하는 작가의 기법이 돋보이는「야풍차」에서는 가난하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한 소년의 용기를 볼 수 있다. 야생마처럼 돌아가는 풍차는 아들에게 도둑질을 시킬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비참하면서 냉정한 생존의 현실을 안고 있다. 풍차가 악기가 되고 물을 대주는 희망이 될 때든 아니면 상처투성이로 만들 때든 얼바옌즈는 굴하지 않는다. 공부에 찌들고 마음이 약해지는 청소년들에게 냉정한 현실과 맞부딪치며 당당히 살아가는 얼바옌즈의 용기를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 번째 붉은 천」은‘늙은 소와 그 소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 <워낭소리>와 닮은 구석이 많다. 만약 차오원쉬엔이 <워낭소리>를 봤다면‘어쩌면 이렇게 정서가 비슷할까? ’하며 깜짝 놀랐을 것이다. 비단 소재뿐 아니라 정서까지도 비슷한 데가 많으니, 우리나라 독자들이 차오원쉬엔의 문학을 친근하게 여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어린 생명을 구하고 곰보할아버지와 수십 년을 함께한 외뿔소가 죽는 장면은 그동안 낡은 오두막에서 이웃을 피하며 살아온 할아버지의 고독감만큼이나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네 편 가운데 분량은 가장 짧지만, 그 여운만큼은 가장 오래 남는다.
 
「안녕, 싱싱」은 이 책의 표제작이 될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한 소년의 첫사랑을 다룬 작품이지만, 작가는 그 이면에서 교육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소설의 스펙트럼이 이토록 넓은 것은 작가의 문학관에 근거한다. 책 앞머리에 실린‘작가의 말’처럼 삶의 치열함을 우아함, 고상함, 연민, 관용 등으로 그리기 때문이다. 작품을 한정된 주제에 가둬 두기보다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하지만 개구쟁이인 데다 고집불통인 아이 싱싱의 첫사랑을 훔쳐보다 보면 내심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아름답다. 거친 돌을 보석으로 변하게 하는 것은 사랑의 힘이다. 사랑을 하면 위험한 겨울의 강도, 힘센 치한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니 부러워만 하다가 져도 좋을 것 같다.
 
사랑을 일깨워 준 야 누나는 이성의 천사 같은 누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에 희망적이다. 싱싱이 진흙으로 장난치는 것을 보고 미술적 감수성으로 이끌어준 야 누나의 부드러운 눈길은 시대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면서 학력 경쟁에만 앞장서고 있는 교사나 기성세대가 눈여겨볼 점이라 생각했다. 싱싱이 그린 <누나의 태양>에 감동한 야 누나가 잉어를 잡느라 얼음장이 된 싱싱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넣은 뒤의 장면을“눈 내리는 들판은 고요했다.”고 표현한 작가의 감성은 싱싱뿐 아니라 읽는 사람마저 숨을 죽이며 고요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눈 속에 갇힌 한계 상황을 설정해 아이들의 심리를 그린「흰 사슴을 찾아서」또한 사람의 영혼을 투명하게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2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 갔다는 아이티 대지진 참사가 떠올랐다. 생명을 단지 숫자로만 인식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흰 사슴을 찾아서」는 죽음에 몰린 네 소년의 상황을 냉정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 인간애로 그리고 있다. 페인트를 통조림인 줄 알고 몰래 먹는 린와의 행동을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바탕으로 배 하나도 나누어 먹는 다예의 의연함, 극한 상황에서도 토끼를 살리고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노래하는 쉐야를 통해 차오원쉬엔은 결국 희망을 말하는 작가임을 알게 된다.
 
도시화와 문명화로 우리의 감성은 너무 메말라 가고 있다. 태초의 자연에서 너무 멀리 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눈물은 점점 말라 버리고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가슴도 식어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안녕, 싱싱』은 작가의 말대로 한국 독자에게 또 한 번 커다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를 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현실일수록 사람들은 맑은 영혼이 사는 마을을 여행하길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글 · 신병준 (화성 삼괴중학교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