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부수기,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 를 읽고


시스템 부수기,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 를 읽고







너는 나를 보지 못한다. 나 역시 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법칙을 알아낸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이 사회의 시스템을 보지 못한 채 그 아래서 살다가 죽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작가 김우남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만만찮은 글솜씨로 해체하여 보여주고 있다.



단편 <비너스의 꽃바구니>에서 부부간 권력의 심각한 불균형, <엘리베이터를 타는 여자>의 '자본계급'과 '무산계급'의 대칭구조, <문수산 가는길>의 '소시민'과 '거대정치세력'의 갈등의 형상화를 통해 이 사회의 구조와 그 안의 모순이 형상화된다. 이와 같이 김우남의 작품 세계의 특징은 자본주의 사회 구조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고, 이들의 갈등 관계가 줄거리를 이끌어간다는데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한자의 풀이대로 '돈이 근본인 이념'이다. '돈'을 연료로 사회라는 거대 기계가 굴러간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벨트 앞에서 할당된 노동을 감당하고 급여를 지급받는다. 그 누가 그 기계의 온전한 모양을 본 적 있는가. 그 모양을 확인하기에 우리의 키는 너무 작고 기계는 너무 거대하다. 그리고 일하는 우리들 간에도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계급이 존재한다. 그리고 저마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에 오르기를 '욕망'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제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철부지와 같다. 그 철부지는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의 천안댁에게 속삭여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게 한다. 간병인으로 일하는 천안댁은 자신이 일하는 병원의 특실 병동의 호사스러움을 훔쳐 본 후, 신분 상승의 은밀한 욕망을 꿈꾸게 되고, 파멸의 길을 자초한다. 이처럼 서민들은 티브이를 통해 보는 상류 사회로의 은밀한 진입을 욕망한다. 사회라는 시스템의 견고함을 마쉬멜로우의 말랑말랑함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견고함은 <문수산 가는길>에서 보여지듯 서민들의 꿈을 가차없이 배신하고, 내어쫓는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의 견고함 앞에서 주저앉겠는가. 김우남은 <파워게임>의 기섭을 모델로, 부당한 권력 체계에 몸을 부딪치는 소시민의 결연한 의지를 그려내고 있다. 사표를 던지면서까지 거대 권력에 맞서는 기자 기섭. 우리는 그에게서 희망을 본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민주 사회도 윗세대가 흘린 피와 땀의 결과물이다. 이상향에 대한 도전은 늘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것이다.



김우남 작가는 필시 행동가의 성향을 갖고 있으리라. 그녀의 글에서는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녀의 그 의지는 읽는 이에게도 힘이 나게 한다. 이 사회의 시스템은 시민들의 도전으로 완성되기 위해, 불완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악다구니 같고, 꽉막힌 이 세상에서 희망의 징표로 남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