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가 보낸 편지 : 『파브르 식물 이야기』를 읽고

얘들아! 너희 혹시 감자나 고구마 좋아하니? 아, 그냥 ‘감자’보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사 먹는 ‘포테이토’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명절에 시골 갈 때 휴게소에서 사 먹는 찐 감자나 튀긴 고구마 스틱이 더 친숙할지도? 나 역시 도시에 살 땐 그랬어. 감자나 고구마를 상점에서 상품으로 만나곤 했지. 하지만 시골로 이사 와서 얼치기 농부로 살게 되면서부터는 감자나 고구마 또는 갖가지 채소들이 다르게 보이더구나.
 
난생 처음 밭에다 감자와 고구마를 심었을 때, 나는 무척 의아했어. 감자는 몇 조각으로 쪼개서 심는데, 고구마는 순(줄기에서 새로 돋아나온 연한 싹)을 끊어서 심더란 말이지. “거 참 이상하다. 왜 감자는 뿌리를 심고, 고구마는 줄기를 심지?”
 
지금부터 약 150여 년 전 프랑스에 살았던 파브르는 일찌감치『파브르 식물 이야기』에 내가 궁금해 했던 감자와 고구마의 진실을 기록해 놓았더구나. 진실은 바로 이거였어. 감자는 줄기, 고구마는 뿌리다!
 
우리가 즐겨 먹는 둥글둥글 못생긴 감자는 흙 속에서 캐내기 때문에 영락없는 뿌리 같아. 하지만 감자는 뿌리가 아닌 줄기란다. 감자에 옴폭 들어가 있는 부분이 있지? 바로 감자의 눈(막 돋아나려는 풀이나 나무의 싹)이야. 그 눈에서 싹이 나와. 뿌리에는 눈이 없어. 줄기니까 있는 거지. 또 감자는 햇빛에 잠깐 놓아두면 파랗게 변해. 광합성을 하거든. 이 역시 줄기니까 가능한 거야. 놀랍지 않니? 파브르 덕에, 나는 감자랑 고구마를 심으면서 몹시도 궁금했던 한 가지 의문을 완벽하게 풀었단다. “감자도 고구마도 모두 줄기를 심는 거로구나. 와우! 파브르, 감사해요.”
 
농부로서 흙을 밟고 살다 보면, 밭작물 외에도 온갖 야생의 풀과 나무들을 만나게 돼. 처음엔 이름조차 몰랐어.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크게 자라는지, 얼마나 무성히 번지는지도 몰랐지. 그런데 몇 년간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잡초’라고 통칭했던 갖가지 풀들과도 친구처럼 친해지게 돼. 풀꽃 공부, 나무 공부, 곤충 공부, 이런 공부들은 꽤나 재미있단다. 시험에 나온다고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궁금해서 찾아 다니는 공부라서 하나도 힘이 안 들어. 힘들기는커녕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무한 기쁨이 덤으로 따라오지.
 
 
"오랜 세월을 거듭하며 익혀 온 식믈의 생존 전략이 놀랍고 감탄스럽더구나.
얼핏 정적일 것 같았던 식물의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동적이고 흥미진진한지,
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동물의 왕국’이라도 보는 느낌이지 뭐야."
 
 
『파브르 식물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아주 오래 전 학창 시절의 생물 시간이 떠올랐어. 세포막이니, 관다발(양분의 통로인 체관과 물의 통로인 물관)이니, 광합성이니, 증산(식물체 안의 수분이 수증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나오는 현상)이니…….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개념어들이 이 책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볼거리, 흥미로운 상식거리로 다시 다가올 줄 어찌 알았겠니? 파브르의 식물학 강의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식물의 분류 방식과 부분 명칭들을 너무나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주었단다. 쌍떡잎식물과 외떡잎식물의 차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줄기와 뿌리들, 햇빛을 골고루 받기 위한 잎차례(잎이 줄기에 배열되어 붙어 있는 모양)의 놀라운 지혜, 꽃과 꽃가루받이의 비밀, 그리고 생명을 잉태한 씨앗의 머나먼 여정 등. 오랜 세월을 거듭하며 익혀 온 식물의 생존 전략이 놀랍고 감탄스럽더구나.
 
수업 시간에는 못 들었던 신기한 얘기도 많았어. 스스로 폭발해 씨앗을 뿜어내는 물총 오이, 잎 끝에 주머니를 달아 벌레를 잡아먹는 벌레잡이통풀, 밤이 되면 동물처럼 잠을 자는 괭이밥, 나무 한 그루로 숲을 만들어 버린 인도고무나무 등. 얼핏 정적일 것 같았던 식물의 세계가 사실은 얼마나 동적이고 흥미진진한지, 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동물의 왕국’이라도 보는 느낌이지 뭐야.
 
인간이 만들어 온 일방적 관점이 뒤집히는 통쾌함도 느꼈어. 식물이 화려한 빛깔의 꽃을 피우는 목적은 오로지 곤충을 유혹해 꽃가루받이를 하려는 것뿐,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는 애당초 없었지. 과일도 마찬가지래. 복숭아나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의 과육은 식물이 열매 중앙에 있는 씨앗을 보호하려고 만든 열매 껍질일 뿐,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려고 생겨난 건 아니란다.
 
타고난 관찰자에다 열정적인 탐구자였던 파브르. 그의 눈과 마음을 통해 기록된 아름다운 식물기가 150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로 왔어. 파브르가 쓴 원본을 그대로 완역했다면 우리 땅에 없는 식물들까지 포함되어 꽤 어렵고 방대했을 텐데, 다행히도 우리 땅의 우리 식물을 모았어. 아름다운 삽화와 사진을 함께 편집해 놓은 덕에 누가 읽어도 쉽고 재미난 책으로 거듭난 것 같아.
 
오래 전 지상을 떠난 파브르는 우리에게 이 귀한 책을 남겼고, 파브르 시대의 그 식물들은 끊임없이 씨앗을 맺고 자손을 퍼뜨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맹렬하게 살아가고 있단다. 식물은 개체의 형태나 생존 방식의 복잡성과 상관없이 저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자신만의 완전한 삶을 이루고 있지. 파브르가 얻었던 존재의 깨달음을 접하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어. 그래, 맞아. 우리도 완전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있는 그대로.
 
이 푸르른 날에 들판에서 숲에서 물가에서 작은 꽃과 이파리와 열매와 씨앗을 파브르처럼 들여다보며, 흙과 물기와 바람과 햇살과 그 속에 존재하는 나를 느끼고 숨 쉴 줄 아는 그런 친구들이 많아지면 참 좋겠다.
 
 
글 · 김혜형 (농부)
 
 
 
1318북리뷰 2011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