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독서감상문대회 심사평

솔직히 말해서 이번 제3회 독서감상문들은 독자에게 다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 실망감은 바로 감상문 자체가 제1,2 회의 그것에 비해서 질적으로 약간 처지고 양적으로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처럼 질·양 모두 전에 비해서 부 진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 그 원인은 넓게 보아 과학기술보다 인문분야를 소홀히 하고 활자인쇄매체보다 영상매체 에 쏠리는 효율성 중시와 유희성 위주의 시대적 추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좁게 보면 최근의 IMF사태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 서적 구매를 어렵게 한 것과도 연결 될 수 있을 듯싶다. 특히 이 응모자수의 격감 현상은 아와 같은 원 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한 젊은이들의 무관심 경향과도 맥이 닿는 것 같아 민족문학을 공부하는 학 도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은 그 분량의 방대함이나 규모의 웅장함에 있어서 , 그 사상의 주체적이고 의식의 진보적임에 있어서 , 이야기의 건강한 재미와 우리말의 넉넉 한사용 면에 있어서 다른 작품이 감히 넘보기 힘든 우뚝한 자리를 우리 문학사에서 차지하고 있다. 특히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다같이 극복한 투철한 역사의식, 원한과 저 항. 비극성과 희화성의 생산적 지양, 호쾌하고 변화무쌍한 사건전개, 특이한 개성이 주목되는 다양한 인물설정, 한국어의 활용 가능성을 크게 넓혀놓은 점 등등 그 미덕을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우리 문학의 값진 유산은 외면한 채 지금처럼 온통 외래 대중문화의 경박한 쾌감에 제 정신을 잃고 빠져든다면, 이런 젊은이들 이나 이들 나라의 정신과 문화의 밝은 장래는 전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우리 한국이 참으로 바라는 이른바 지구화, 세계화라는 것도 올바른 민족적 주체의 기반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며, 그럴 경우 우리에게 세계화란 오히려 우리 나라를 문화적으로 강대국에 예속시키는 일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임꺽정』과 같은 민족의 정신적 문화적 유 산을 오늘날에 충실히 계승 발전시켜야 할 이유와 책임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하겠다.
 
이제 소설 『임꺽정』의 독서감상문에 대한 심사경위와 그 결과에 대해서 말하겠다. 심사위원은 성균관대학교 임형택 교수와 상명대학교 강영주 교수, 그리고 연세대학교 이선영 명예교수 세 사람이며, 예심위원장으로는 시인 도종환 선생이 맡아주었다. 예심에서 뽑혀 본심에 넘어온 감상문은 대학일반부와 중고등부를 합쳐 7편이었다. 이 일곱편의 글을 지난 3월 7일부터 세 분 심사위원의 세심한 검토를 거친 끝에, 지난 10일 사계절출판사에서 모인 그 세 사람의 신중한 논의를 거쳐 이며 발표된 바와 같은 심사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먼저 심사과정에서 느낀 점은 응모한 글들이 대부분 문학작품으로서 소설이 갖는 양면성이나 다양성 같은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소설 『임꺽정』에는 사상 내지 이념이 있지만 동시에 일정한 형식. 기교 문체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기존의 지배질서에 대한 민중의 싸움을 통해서 작품의 이념을 밝히는 동시에 재미있 는 스토리의 흥미진진한 전개와 특이한 인물들의 성격창조 혹은 민중언어의 사실적인 구사와 같은 다양한 측면과 특징 을 언급해야 작품의 실상에 더욱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적잖은 응모작품들이 시종 소설 『임꺽정』의 주요인물 들의 기껏 의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문제삼는다든가, 임꺽정의 무리가 활빈적 성격이 부족해서 실망했다는 식으로 결론 짓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나마 최기우씨는 어구 개념에 모호한 점이 다소 있지만 , 소설 『임꺽정』남북한 언어의 이질화 극복의 출 발점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 글로 우수작 수상자가 되었다. 같은 우수작 수상자인 황은주 씨는 비평적 안목이 아쉽지만 인물설정과 서사전개에 대한 언급을 감상문의 성격에 잘 맞추어 표현하고 있다. 정혜숙 씨는 이 작품에 관한 주요 문제 들을 제기하여 온당한 해석을 가하고 어느 정도의 문학적 식견까지 보여주어 대학일반부의 대상 수상자로 뽑혔다. 한편 중고등부의 조소현 군은 적절히 않은 관념이 가끔 눈에 띄지만 계급사회에 맞서 싸운 이 작품의 핵심주제에 감동한 바를 드러낸 글로 우수작 수상자가 되었다. 이정호 군은 문학작품을 보는 안목은 아직 어리고 미숙하지만 중학생임에도 불구 하고 인물의 성격에 대해 적절하고 간명한 지적을 함으로써 우수작 수상자에 올랐다. 안효순 양은 작품의 주제에 대한 언급이 약간 부족하지만 인물과 사건을 문학적 쾌감이라는 면에서 흥미로운 소설감상을 해내고 있어 중고등부의 대상 수 상자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끝으로 수상자를 비롯하여 응모자 여러분에게 더욱 책을 가까이 하고 글쓰기에 힘 쓸 것을 당부하며 저의 심사평을 마치겠다.
 

1999년 3월 21일
심사위원장 이 선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