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을 기억해 주세요 - 아동인권에 바친 야누시 코르착의 삶과 그의 아이들을 기억하다

연일 남편과 다툰 뒤 자식 셋을 모텔로 데려가 살해한 비정한 엄마의 이야기, 경제적 문제로 아이들을 버리거나 동반 자살한 이야기가 뉴스에서 다루어질 때마다 눈살이 찌푸려지며 한숨이 터져 나온다. 많은 성인들이 아이들을 자신의 부속물로, 아직 어린 자식의 생각과 자유를 부모 마음대로 정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계인권 선언을 모태로 많은 국제 인권 조약이 태어난 이래 아동들의 권리를 정하고 있는 ‘국제아동권리 협약’이 1989년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미 가입과 비준을 마친 이 협약은 전세계 모든 아동들을 방치, 착취, 학대로부터 지키기 위한 세계 기준이라 말할 수 있다. 이 협약이 탄생한 배경에는 2차 세계 대전의 와중에도 자신의 목숨을 헌신적으로 내놓은 폴란드 한 의사 선생님의 일생이 있다.
‘야누시 코르착’. 그의 본명은 헨리 골드슈미트로 1878년 폴란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대계 의사이자 저술가, 아동인권가였다. 그는 변호사였던 아버지가 정신질환을 앓자, 혹시라도 그 질환이 유전될까 봐 평생을 결혼하지 않았으며, 고아원을 세워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 200명을 돌보며 평생을 보냈다. 인권운동가로 명성이 알려져 유태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돌보던 200명의 아이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역사는 공식적으로 1942년 8월 5일, 코르착 박사의 실종을 기록하고 있지만 박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책을 손에 쥐어주고 깨끗한 옷을 입혀서 폴란드 시내를 행진하여 가스실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이를 지켜 본 시민들은 그들의 행진을 ‘천사들의 행진’이라고 부르게 된다.
 
 

『블룸카의 일기』는 어린이의 인권에 바친 야누시 코르착의 삶과 비록 짧았지만 삶의 주체로서 자신을 가꾸며 살았던 12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소녀(블룸카)의 일기 형식으로 담담히 전한다.
면지에 한 소녀가 보라색 꽃이 핀 곳에 양동이를 들고 위쪽을 바라보고 있다. 대화를 하는 듯 푸른색 외투를 입은 어른이 서 있지만 얼굴이 보이진 않는다. 다음 페이지에 등장하는 12명의 아이들과 1명의 어른, 그들의 옷은 다양한 색감으로 드러나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한 가지 색으로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윽고 펼쳐지는 블룸카의 일기, 큰 판형의 양쪽 면 위쪽에 펼쳐진 블룸카의 일기장이 있고 그 아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써내려간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특이하게도 줄 공책의 일기장이 빨랫줄, 침대, 거리, 땋은 머리, 체온계, 석탄 수레, 목재, 벤치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페이지에 걸쳐 12명의 아이들과 코르착 선생님에 대해 각각 소개하고 있다. 소개하는 내용에서도 글자의 크기와 굵기가 다르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굵고 큰 글씨로, 그 내용을 보충하듯 작은 크기의 글씨로 일기를 써내려간다. 그림책을 읽는 재미와 내용의 강약을 잘 살려 의미 전달이 명확하다.
내용상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그림책의 앞부분에서는 나이도,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모두 다른 12명의 아이들을, 뒷부분에서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의 비밀과 꿈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코르착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남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도 하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말하는 블룸카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같다.
코르착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자유롭다. 어떤 일도 강요당하지 않는다.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가지며 똑같은 일을 해도 된다고 배운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똑같이 중요하며 ‘어리다’는 것은 절대로 ‘바보’나 ‘더 못하다’가 아님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마음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어린이 법정에 서도록 하여 공정함이 무엇인지도 배운다. 선생님들도 예외는 없다. 선생님들의 교육 방법에 대한 것도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절대로 때리지 말 것이며,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미안해’라고 말하게 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모두 권리의 주체임을, 어린이의 인권도 보호받아야 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림책의 말미를 보면, 일기를 써내려 가던 블룸카의 펜촉이 어느덧 손으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그 손은 기차를 가리킨다. 가스실로 향하는 죽음의 기차……,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 갔음을 상징하는 것일테다. 그러면 이곳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의문을 던지며 다음 장에서 일기장이 닫힌다.
그림책 속에는 코르착과 그의 아이들이 가스실로 향했던 암울한 비극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저 그림책의 마지막장에 보이는, 꺾인 채 떨어지는 꽃잎들이 애처롭고 슬플 뿐이다. 
유교문화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하면 ‘버릇없다’, ‘몰라서 딴 소리 한다’고 윽박지르는 어른들이 많다. 한편 아이의 응석을 있는 대로 다 받아주거나 경제적인 소원을 무조건 들어 주는 것이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 주는 것이라 착각하는 어른들도 있다. 대체로 어른들은 ‘아직 어리니까, 아직 생각이 다 안 찼으니까’ 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바라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할 권리가 있고 또 표현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어른과 이 사회는 어린아이들의 이야기에 진지한 자세로 경청할 의무가 있다.
‘일기는 잊지 않기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블룸카의 마지막 일기가 가슴 깊숙이 진한 울림으로 남는다.
『블룸카의 일기』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님을, 아이들이 자신만의 세계에서  스스로 각성하여 강한 도덕적 동기를 가지고 자기 삶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어른들이 할 일임을 이야기 한다.
   
글 - 정지현 (창원안골포초등학교 교사,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