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평화 프로젝트’


들어가며


1학년 통합 주제 ‘우리나라’의 두 번째 소주제는 우리 민족의 분단의 아픔과 분단된 현재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해 수업을 하다 보면 전쟁 장면의 영상과 교사의 무용담(심지어 본인이 겪지도 않았는데도) 같은 긴 이야기로 끌고 가기 일쑤다. 그런데다가 아직 과거 시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1학년들이라 어디선가 들은 6•25 전쟁, 일본, 이순신과 거북선, 심지어 세종대왕까지 섞어서 말도 안 되는 질문으로 그마저 흐름이 끊길 때가 많다.
형식적으로나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흔하게 들리고 간간이 이산가족 상봉이 텔레비전에서 보일 때는 그나마 이런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상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통일을 이야기하기 쉬웠는데 수년째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오르락내리락 하며 ‘핵미사일을 쏘았네, 안 쏘았네.’ 하는 기사를 자주 접하며 남북관계가 경직되어 있어 말하기가 더욱 어렵다. 우리 반 아이들도 1학기 때부터 북한이 미사일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간간이 하면서 북한 전체를 적으로 돌려버리는 말을 무심코 해 왔기에 미사일을 미사일로 대처하면 결국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결코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님을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아이들이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를 조금이라도 느끼고 우리나라는 이미 6•25 전쟁으로 그 상처와 아픔이 정말 크다는 것을 알고 우리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남북 분단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평화로운 통일,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함을 몸으로, 가슴으로 깨닫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칫하면 교사 혼자 두서없이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아 그림책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0. 분위기 만들기

일주일에 한 곡씩 시 노래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관련 노래라도 하나 알고 있으면 아이들이 더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가르쳐준 노래가 백창우의 ‘백두산 갈 사람 여기 붙어라’이다. 노래 가락이 신나고 익히기가 쉬워서 쉽게 따라 불렀다. 자연스레 백두산 가봤냐는 말이 나왔고 마침 백두산을 두 번이나 다녀온 나는 이때다 싶어 갔다 왔다고 자랑했다. 북한도 갔다 와봤다고 자랑하니 “북한 못 가잖아요.” 한다. 북한에 다녀온 경험을 얘기하고, 노래 가사를 다시 읽으면서 무슨 뜻일까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 백두산 가는데 왜 어른들은 나오지 말고 아이들만 나오라 할까? 누렁이도 나오라 하는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 백두산 못 가게 만든 건 누굴까? 왜 못 가게 됐을까?
다시 물으니 00이 “아.” 하면서 말한다.
- 아, 북한하고 전쟁 했잖아요.
- 그렇지. 전쟁하고 아직 화해를 안 해서 못 가.
- 어른들이 전쟁해서?
- 맞아, 아마도 그래서 어른은 오지 마라 한 것 같아. 어른은 전쟁하고 여태까지 화해도 안 하고 계속 싸우고 있어서 어른들은 해결을 못 하니까 아이들만 나오라 한 것 아닐까? 그런데 아이들은 화해할 수 있을까?
- 네. 우리는 싸우긴 하지만 금방 화해해요.

이제 노래에서 ‘뭐 타고 가자.’ 하냐고 물어보았다.
- 새끼줄 기차요.
- 맞아. 원래 우리나라는 남북한이 한나라였어. 기차가 부산에서 저 북쪽 끝까지 연결되어 있었어.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고 부산과 신의주를 찍어 보았다. 그리고 칙칙폭폭 하면서 선을 그어 신의주까지 연결했다.
- 기차 타고 중국에도 가고 러시아에도 갔거든. 그리고 유럽 여행 간 사람도 있어. 만약에 옛날처럼 기차가 연결되면 너희는 저 멀리 있는 프랑스에도 기차타고 쭉쭉 갈 수 있지. 방학 때.
칠판 넘어 선을 연결하는 흉내를 내니 아이들이 “우아.” 했다. 간단한 그림과 설명이었는데도 기대 이상으로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 그런데 기차 타고 가는 길이 어떻대?
- 진흙길이래요. 자갈길도 있어요. 꼬불꼬불 하대요.
- 그래. 무슨 뜻일까?
- 가기 어렵다? 힘들다? 너무 멀어서?
- 그렇지. 화해를 해야 백두산도 갈 수 있는데 어른들이 아직 화해를 못한 건 사실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그래. 쉽지 않은 것 같아. 그래서 어떻게 가자 하지?
- 끌어주고 밀어주고요. 함께 가자 해요. /아, 믿어달라는 뜻 아니에요? / 도와달라는 뜻?
- 그렇지. 서로 도와서 함께 가자고 했지. 나만 가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이. ‘ 리 같이’는 누구누구일까?
- 친구들/ 학생들/ 아, 북한에 있는 어린이들
- 그럴 거야. 우리 모두 같이 가자고 하지.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아마도 그래야만 너희들이 백두산을 신나게 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노래 가사의 뜻을 찾아보고 다시 신나게 노래 불렀다. 이후 일주일 정도 생각이 날 때면 노래를 부르면서 외웠다.




1. 전쟁의 아픔 느끼기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교사가 교실로 들어오며 뭔가 들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여러분, 무슨 소리 안 들려요? 쉿! 무슨 소리 들리는데?”
아이들이 무슨 소린가 하며 조용히 하고 귀를 기울였다. ‘무슨 소리를 말하지? 우리가 떠드는 소리 아닌가?’ 하는 표정이다. 모두 숨 죽인 채 교사에게 집중할 때 미리 준비한 포스트잇을 나눠주었다.

“바로 이 소리였어.”
<엄마, 보고 싶어.> <무서워.> <살려주세요.> <다 죽여버릴 거야.>
아이들에게 포스트잇을 한 장씩 나눠주고 자신이 받은 목소리를 읽어보라고 했다. 한 번씩 읽고 난 다음, 다시 어떤 느낌의 목소리였을까를 생각하며 실감나게 읽어보라고 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물어보았다.

“무서워해요.”
“화가 난 것 같아요.”
“슬퍼요.”
기대한 대답이다. 처음 포스트잇에 말을 적을 때 전쟁이 일어나면 느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감정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다행히 아이들도 그 감정을 느꼈다.
이제 자신이 받은 포스트잇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낀 사람끼리 모이자 했다.
무서워하는 목소리끼리, 화가 난 목소리끼리, 슬퍼하는 목소리끼리.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끼리. 두 명, 세 명, 네 명, 두 명 모였다.
“자, 그럼 어떤 상황이어서 이런 목소리들이 들리는 걸까 상상하여 보고 정지 장면으로 나타내어 보자.”
전쟁 상황을 바로 떠올리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거나 또는 뉴스에서 봤을 법한 안 좋은 상황 정도를 생각하고 나타내보라고 했는데 모두 전쟁을 이야기 했다. 아마도 자기가 받은 목소리만 들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으니 전쟁이 떠오른 것 같다.
“그렇군요. 모두 전쟁이라고 생각했군요. 맞아요. 바로 전쟁터에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였어요.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더 자세히 볼까요?”

다시 미리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같은 감정끼리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간단한 문장들은 그림책에서 나오는 장면을 참고하여 내가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포스트잇에 적힌 간단한 문장을 보고 전쟁터에서 이 인물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상상해보고 장면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문장은 바로 “혼자가 되었습니다.”였다. 이 문장이 나오자 ‘혼자가 된 사람들처럼 한 번 걸어보자.’고 했다. 영혼으로 떠다닐 수도 있고, 가족과 헤어져서 혼자 남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 자, 부딪히면 안 돼요. 우리는 혼자 걷는 겁니다. 고!
아이들이 모두 힘없이 교실 여기저기를 걸었다. 누군가 좀비 같다고 했다. 혹시 장난스럽게 바뀔까 봐 진지해야 한다고 다시 말했다. 전쟁 때문에 혼자 남거나 떠돌게 된 사람이 어떤 마음이겠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엄하게 말했다. 차분하게 “고! 스탑!”을 반복했다.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멈추고 다시 걷는 모습이 힘없는 영혼들 같았다.
조금 시간이 흐르니 엄숙함이 흐트러졌다. 서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나은이가 “혼자 된 사람이 많아요.” 했다. 더 이상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자 이제 외로웠던 사람들은 손을 잡고 모여요.” 하고 제안하자 모두 손을 잡고 둥글게 앉았다.
- 자, 우리는 여태까지 전쟁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찾아 다녀왔어요. 이 사람들이 정말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무슨 말을 우리에게 하고 싶었을까? 생각해보고 한 번 써보면 어떨까?
포스트잇을 나눠주었다.
- 죽이지 마. / 우리 가족을 살려내. / 우리 집을 원래대로 해 놔. / 싸우지 마. / 텔레비전을 마음대로 보고 싶어. / 욕심 부리면 안 돼. / 전쟁 하지 마./ 포스트잇에 적은 것을 크게 읽었다.
- 이것을 누구에게 들려줘야 할까?
- 사람들이요. / 살아 있는 사람들 / 높은 사람들
- 높은 사람들은 왜?
- 높은 사람들이 전쟁을 결정하잖아요.
- 그렇구나. 그럼 너희들이 적은 말은 정말 중요한 말이니까 우리 모두 들었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소리터널 해봤지? 소리터널 대형으로 서서 친구가 지나갈 때 천천히 이야기해주면 어떨까?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천천히, 꼭 들을 수 있게 말해줘야 해. 지나가는 사람도 천천히 지나가야 해.
소리 터널을 만들어 두 명씩 천천히 지나갔다. 다 지나간 사람은 다시 터널을 이어 만들어 자기가 정한 말을 했다. 터널을 끝내고 다시 둥글게 앉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책을 보여주었다.
- 사실 그 목소리는 바로 이 책에서 나온 거였어. 이 책이 여러분들이 만든 그런 이야기야.
이렇게 소개하고 끝내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책을 읽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주 슬픈 명상집 같은 그림책인데 얼마나 쏙쏙 빠져들어 듣는지 모른다. 따로 글을 읽어주지는 않고 그림의 느낌만 같이 보았다. 아이들이 슬퍼서 흘린 눈물로 그린 그림 같다고 한다. 목소리가 물속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2. 분단의 현실과 아픔 알기 『비무장 지대에 봄이 오면』

지난 시간에 전쟁의 아픔을 겪어보았다면 이번에는 분단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산가족의 뜻조차 제대로 모를 아이들에게 6•25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분단은 또 어떻게 됐는지, 분단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말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그래서 역사적인 이해보다는 ‘분단’ 자체에 집중하고자 했다.

- 지난 시간에 전쟁이 얼마나 무섭고 아픈 건지 겪어본 거 기억나요?
아이들이 쉽게 “네!” 하고 대답했다. 우리나라도 바로 그 무서운 전쟁이 있었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금방 6•25 전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과 전쟁했다는 둥, 선생님은 그때 몇 살이었냐는 둥 뒤죽박죽 질문을 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우리끼리 나라를 세워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미국과 가까운 사람들, 소련과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싸우다가 결국 38선으로 분단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간단히 말해주니 간단히 이해했다. 서로 자기 식으로 한나라를 세우자고 싸우다가 결국 6월 25일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고 알려주면서 일부러 큰 소리로 “전쟁이다!”라고 외쳤다. 아이들이 갑자기 어리둥절했다.

“자, 정말 전쟁이 일어났어요. 여러분은 모둠끼리 한 가족이에요. 그럼 어떻게 가족이 구성되어 있는지 정해주세요. 예를 들어 엄마와 딸, 아빠와 아들, 할머니, 삼촌과 같이요. 그리고 그 사람의 나이도 정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소꿉놀이나 역할놀이를 한 적이 많아서 쉽게 알아듣고 정했다.
“자, 다 정했으면 그 사람은 전쟁이 났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지 한 번 생각해보고 정지 동작으로 만들어 보자.”
천천히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니 금방 정지동작을 만들었다. 가서 물어보았다.

책상 밑에 들어간 남학생
- 대피소에 숨었어요.
그 옆에 엎드려 있는 남학생
- 대피소에 숨으려고 했는데 늦었어요.
가만히 서 있는 남학생
- 벌벌 떨고 있어요.
고개를 숙이고 창문 옆에 서 있는 여학생
- 오빠 기다리고 있어요. (오빠는 어디 갔는데?) 군대 갔어요.
총을 쏘는 남학생
- 적을 무찌르고 있어요. 우리 아빠가 적한테 죽었거든요.
아기(여학생)를 업고 있는 여학생
- 아기 업고 피난 가는 중이에요.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남학생
- 죽은 척하고 있어요. 그래야 들키지 않아요.

모두 전쟁 때 일어날 일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금방 말했다. 아마도 지난주에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때 비슷한 역할을 해보아서 그런 것 같다. “잘했다”라고 하면서 그럼 이번에는 그렇게 움직여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로 다녔다. 그냥 다니는 아이도 있고 총놀이하듯 움직이는 아이도 있었다. 여학생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다녔고 남학생들은 전쟁놀이하는 듯 뛰어다녔다. 적당히 움직임을 보고 교실 중앙에 밧줄을 두 줄로 해서 놓았다.
“아아, 알립니다. 국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3년간 전쟁을 했으나 끝나지 않아서 미국, 소련, 중국이 전쟁을 잠깐 쉬기로 결정했습니다. 휴전하기로 해서 지금 남북이 점령한 위치대로 휴전선을 놓았으니 국민 여러분은 절대 휴전선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국민 여러분은 절대 휴전선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북쪽 사람이 남쪽으로도 가면 안 되고 남쪽 사람이 북쪽으로도 가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그때 승민이가 “난 갈 거야!” 하면서 뛰어가길래 얼른 잡아와서 “가고 싶다고 가면 간첩으로 여겨져서 감옥에 가게 됩니다.” 하며 교사 책상 밑으로 보냈다. 승민이가 또 튀어나와서 “갈 거야!” 하면서 뛰어갔다. 또 잡아와서 “감옥에 가게 되는데 왜 자꾸 휴전선을 넘는 겁니까?”라고 물었더니 “우리 가족이 저기 있단 말이에요!” 했다. 승민이는 그 이후로도 자꾸 마음대로 뛰어다녔고 휴전선 근처에 지뢰 때문에 펑펑 하고는 넘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낄낄대면서도 반으로 나뉜 각각의 곳에 멈춰 있었다. 마침 한쪽으로 남학생들이 주로 모여 있었고 반대쪽으로 여학생들이 주로 모여 있었다. 그래서 남학생들 쪽을 남쪽 나라라 했고 여학생들 쪽을 북쪽 나라라 했다. 승민이가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기에 다른 사람들도 각각 차례대로 가족들 손들어보라 했다. 마침 모든 가족이 한곳에 있는 경우는 한 팀도 없고 모두 한두 명씩 흩어져 있었다.
“어떡해요. 모두 가족이 흩어져 버렸네요. 서로 넘어갈 수 없는 휴전선은 이제 사람이 지나다지지 못해요. 서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틈, 지뢰도 많이 묻혀 있는 곳, 그게 바로 비무장지대예요.” 하면서 두 줄이었던 밧줄을 벌렸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멀어졌다. 승민이랑 몇 명이 벌어진 가운데 장난감을 몇 개 던져 넣으면서 “이거 지뢰예요.” 했다. 지현이가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금방 휴전선이 없어질 줄 알았는데 10년이 지나도 안 없어졌어요. 자, 그럼 자기 같으면 뭘 하고 있을까 한 번 생각해보고 정지 장면으로 만들어봅시다.”

여학생들의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주저앉아 있었다. 남학생들의 대부분은 총을 겨누었다. 승민이는 또 밧줄 사이로 들어가서 ‘펑!’ 하더니 쓰러졌다. 뭘 하고 있는 건지 남학생부터 물었다.
- 북쪽나라는 적이니까 적을 쏘는 거예요.
- 지뢰를 쏘아서 없애고 가족한테 가려고요.
- 누가 넘어오나 안 오나 감시하는 중이에요.
마침 시형이가 여학생 쪽을 적이라 가리키면서 총 쏘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방향이 혜리였다. (물론 시형이는 별 생각 없이 잡은 방향이었다.) “그렇구나. 맞아. 우리는 전쟁하다 멈췄으니까 서로 적이겠다. 어, 그런데 너 총 방향을 보니까 혜리를 겨누고 있네. 너는 가족이 북쪽 나라에 없어?” 하고 물으니까 마침 혜리가 가족이라고 했다.
- 이런 어떻게 해. 가족을 죽인 거 아니야?
- 멀어서 안 보여서 그래요.
- 그래, 실제로 그런 일도 있었어. 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기 가족이었대. 그러니 그 사람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학생 쪽으로 물으려고 가니 혜리가 쓰러져 있었다.
- 왜 쓰러져 있어?
- 휴전선 저쪽에서 날아온 총 맞아서 다친 거예요.
아마도 시형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동작을 바꿨나 보다. 다른 여학생들은 모두 우리 가족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슬퍼하는 중이라고 했다.
- 여러분들이 동작한 모든 것들이 실제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일어난 일이에요. 그렇게 이십 년, 삼십 년이 흘렀어요. 아무도 못 들어가게 한 비무장지대에는 동물과 식물들만 살게 되었대요. 어? 그런데 누가 지나가요!

그때 책을 보여주고 북태평양에서 내려온 물범 가족이라고 했다.
“물범 가족으로 변신!” 외치니 금세 아이들이 움직이며 비무장지대 공간을 휘젓고 다녔다. 내가 “박수를 두 번 치면 다시 사람으로 바뀌는 거야.” 하면서 박수를 두 번 쳤다. 잠깐 멈췄다.
아이들이 물범을 흉내 내면서 줄 사이로 왔다 갔다 하던 걸 멈추고 날 봤다. 그때 내가 “아! 물범 가족이 휴전선을 건널 수 있으니 나도 갈 수 있겠지.” 하면서 아이들 사이로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에게 눈치를 주면서 “잡아야지” 하고 속삭였다. 얼른 뜻을 알아채고 “안 돼! 사람은 지나가면 안 돼! 야, 선생님 막아. 휴전선 지나가면 안 돼!” 하고 외쳤다. 그러니 모두들 나에게 몰려들어와 막아섰다.
- 왜 안 되는 거야? 물범 가족은 되는데 왜 사람은 안 돼? 나는 우리 가족을 만나야 해!
- 안 돼! 사람은 지나가면 안 돼.

“이렇게 또 십 년이 흘렀어요. 여전히 아무도 못 지나가는 비무장지대에 새들이 지나가요. 새로 변신!”
아이들은 새의 날갯짓을 흉내 내며 건너다녔다. 10초 정도 흐른 뒤 다시 박수 두 번을 치니 아이들은 멈춰서 두 줄로 섰다. 아까처럼 내가 아이들 사이로 “새들도 지나다닐 수 있으니 나도 가도 되겠지?” 하면서 지나가려고 하고 이번에는 자동으로 아이들이 날 막았다. 더 세게 막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본다고 산양이 지나다님을 몸짓으로 나타내고 다시 지나가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막아섰다. 이미 전 단계부터 약간 여학생들 사이에 불쌍하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보내주자.” 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아직 목소리가 작았고 다른 아이들이 안 된다고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둘러앉아 그림책을 보고 할아버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의논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우리 반에서 가장 힘이 센 시형이가 앞으로 나서더니 “야! 보내주자. 이제 됐다. 보내주자.” 하면서 날더러 안내하는 손짓으로 “지나가세요. 지나가도 돼요.”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아이들도 “가도 돼요. 가세요!” 하면서 나를 호위하며 같이 교실 반대편으로 갔다. 그때 승민이가 교실 끝에서 뛰어다니고 있길래 승민이를 보고 “아! 저기 내 아들 승민이가 있네. 승민이도 많이 늙었구나. 승민아!” 하니까 승민이가 쳐다보더니 알겠다는 듯 나한테 뛰어오며 “엄마!” 했다.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다.
놀라웠다. 사실 마지막 장면은 그림책 속의 남, 북의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셔오는 장면과 꼭 같았다.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림책처럼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혼자 얼마나 뭉클했는지 모르고 아이들에게 고마웠는지 모른다.

끝으로 둥글게 놓인 밧줄 사이에 둘러앉아 책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책 속에 지금 여러분들이 함께했던 그 이야기가 다 담겨 있다면서 특히 마지막 부분은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한 것처럼 그렇게 서로 마음을 이해하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겠다 하면서 책을 보여줬다. 앞면지에 있는 세계지도의 조그만 빨간 선, 그리고 빨간 선이 사라진 뒷면지의 한반도를 보여주고 꼭 이렇게 되어서 이런 아픔이 빨리 사라지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들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너도 나도 외쳤다.
그럼 이제 할아버지를 보내준 여러분들과 함께 통일 기차를 타볼까? 하면서 비무장 지대로 놓아둔 밧줄로 기차를 만들었다. 윤서가 “통일 기차표 만들까요?” 하길래 얼른 만들어보라고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백두산 갈 사람 여기 모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민이가 “선생님, 통일 너무 신나는 거 같아요.” 했다. 범진이가 “나도 통일 되니까 좋아요.” 했다. 계속 전쟁과 분단의 아픔 이야기만 하다가 자기들을 가로막는 밧줄이 사라지니 통일이 되었을 때의 자유로움과 평화로움이 저절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모두 기차에 타고 깃발도 들었다. 이제 출발하자는 아이들에게 “통일 열차를 타신 승객 여러분들께 알립니다. 이 기차는 여기 한라산에서 출발해서 백두산까지 갑니다. 중간 정착 역은 부산, 포항, 울진, 강릉, 원산입니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승객 여러분들은 앞사람과의 간격과 질서를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했다.
드디어 출발! ‘백두산 갈 사람 여기 붙어라’ 노래가 절로 나왔다. 도착지는 운동장 조회대까지다. 교실에서 나와 조회대까지 열두 명이 줄을 타고 같이 가는 건 쉽지 않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걸 알았기에 두 팀으로 나눌까 싶었는데 그냥 한 팀으로 했다. 사실 통일이 된 걸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분명히 갈등은 엄청 많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노래에도 그런 가사가 있기에 중간 정착지마다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신나게 출발한 기차는 조회대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에는 모두 지쳐 있었다. 드디어 조회대 위에 올라갔다.
“승객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백두산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모두 통일 기차에서 내려주세요.”
모두 줄을 벗어던지고 조회대 위로 올라가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만세를 외쳤다.



3. 평화란
한 번 전쟁이 일어나면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무서운 일들, 슬픈 일들보다 더 많이 일어난다. 아무도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이 평화인건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로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