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만세 운동의 현장으로-정명섭 작가의 "어린 만세꾼"


"어린 만세꾼"은 1919년 3월 13일, 밀양 보통학교에서 벌어진 밀양 만세 운동을 바탕으로 실제 인물, 사건과 정명섭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 진 이야기 입니다. 정명섭 작가는 역사동화 "사라진 조우관", 역사소설 "상해임시정부", "조선의 명탐정들" 등 역사와 추리, SF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다양한 역사 자료와 자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만세꾼"은 2017년 우연히 참석한 역사 관련 세미나의 자료집의 각주(1919년에 어린이들이 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체포되어서 재판을 받았다는 내용)로 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른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했던 3.1 만세 운동을 새롭게 느꼈던 작가는 특히, 의열단 김원봉 선생의 고향 밀양에 주목합니다. 김원봉의 고향 후배이자 친구인 윤세주, 윤치형이 주도한 밀양 만세 운동은 밀양 보통학교(8-12세의 학생들이 입학했던 4년제 학교)에서 시작하기도 했거니와, 밀양 보통학교 학생과 졸업생들이 주도했습니다. 바로 이 때의 이야기를 작가가 약간의 이야기를 바꾸고,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서당에 다니다 부모님의 강요로 보통학교로 입학한 덕수는 편입 첫날부터 학교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본은 조선의 부탁으로 조선을 지켜주기 위해 왔다는 혼다 교장(심지어 일본말로), 첫 날부터 강압적인 말투로 월사금(다달이 내는 수업료) 납부에 대해 안내하는 홍이관 훈도(담임 교사) 등 첫 날부터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일본말을 능숙하게 하는 윤암이, 그런 윤암이가 부러운 민구, 덩치카 큰 용철이와 친해지게 됩니다.

다음날 홍이관 훈도는 '대일본 제국'의 신화에 대한 설명에 덧붙이며, 이순신 장군과 김옥균에 대해 엉터리로 설명해 줍니다. 훈장님께 배운 이야기와 다른 덕수는 친구들에게 단군 신화와 이순신 장군에 대해 다시 알려주게 되고, 곁에서 듣고 있던 소지 할아버지는 일장기를 변소에 버렸다던 윤세주 선배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가만 있을 수가 있나요? 아이들은 '동화서점'의 윤세주를 찾아가고, 1년간 조선의 역사와 현 상황, 일본의 만행에 대해 공부해갑니다. 그러던 중, 고종의 승하와 맞물려 경성(서울)에서 만세 운동이 벌어지고, 윤세주 선생 또한 밀양에서의 만세 운동을 계획합니다. 아이들은 '밀양 소년단'을 창단하여 윤세주 선생을 도우며, 밀양 만세 운동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조선은 오랫동안 정치가 혼란하고 외세의 침략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일을 반복했다. 당파 싸움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백성들이 고통받는 일이 계속되어 동양의 병자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많은 조선인들이 베이지 천황에게 부디 조선을 맡아서 통치해 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천황이 조선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1910년에 총독을 파견하였다." - 혼도 교장의 조회

"하여튼, 조센징들은 너무 시끄럽다니까! 조용!"-홍이관 훈도의 등장

주인공이 보통학교 학생들(작가는 나이를 환산해서 5-6학년이라고 표현합니다.)과 그 당시 학교의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5-6학년 아이들이 읽으면 참 좋은 책입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역사 부분이 다시 5학년으로 내려갔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중이라면, 역사를 배우고 올라온 학생들이라면 분노가 치밀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작가는 책의 1장에 당시 학교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일본인 교장의 '헛소리'와 조선인으로 보이는 악랄한 훈도를 배치하여 책장을 계속 넘기게 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훈도의 수업 장면은 조선인이 왜 일본 신화를 배우고, 조선의 역사를 왜곡되어 배웠는지 묘사합니다. 역시 초등학교 역사 수업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아이들의 눈높이로, 아이들의 이야기로 들려주니 아이들도 더욱 공감할 듯 합니다.

"일본은 지금 다른 나라와 전쟁 중이란다. 그런데 거기에 쓸 사람과 물자를 조선에서 가져가려는 거야. 말자하면 밭이나 논 취급을 하는 게지."
-'식민지'에 대해 설명하는 윤세주 선생

여기에 '윤세주' 선생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은 실존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포털 사이트에 '윤세주'를 검색하자, '김원봉' 선생이나 '밀양 만세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즘 교실에서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라고 하여 한 학기 책 하나를 선정하여 책 일기 전, 중, 후 활동을 국어 수업 시간에 함께 합니다. 책 읽는 중 활동으로 윤세주에 대해 공부해보고, 당시 상황을 함께 공부한다면 책에 대한 이해도와 공감도가 더욱 높아질 것입니다. 또한 윤세주 선생이 초반에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한 번 더 곱씹는다면 훌륭한 역사 교육 교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서로의 팔을 꽉 움켜잡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덕수도 친구들과 팔을 단단히 엮을 채 만세를 외치며 전진했다. 만세 시위대가 멈추지 않는 것을 본 순사와 헌병들이 총을 겨눈 채 점점 다가왔다."
-책의 마지막, 밀양 소년단의 만세 운동

특히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만세 운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과정을 들려준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왜 어린 아이들이 만세 운동을 하게 된 건지. 그 때 상황은 어땠는지. 어떤 모습으로 만세 운동을 한 건지. 이야기를 읽으며 한 눈으로 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행동이 우리가 사는 지금을 만드는 데 어떤 도움을 줬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을 기회가 됩니다. 책의 이야기는 밀양 소년단의 만세 운동 모습으로 끝나지만 책을 다 읽은 우리들은 그 뒷이야기를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예상을 넘어서 실제 역사적 사실은 어땠는지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자연스레 읽기 후 활동으로 연계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지역의 독립 운동 유적지를 찾는다면 아이들의 마음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봅니다.

​짧은 한 문장의 역사적 사실을 파고들어 훌륭한 이야기로 만들어낸 정명섭 작가의 "어린 만세꾼". 독립 운동을 소재로 한 동화라 약간은 어둡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또한 지금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기도 하고, 순수한 짝사랑의 모습도 표현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마지막 장에서는 마음 속에 큰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요즘 역사를 다룬 만화책도 참 많습니다. 물론, 아이들의 흥미도 높이고 역사를 재밌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활자 매체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거기에 어린 만세꾼들의 용기를 함께 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도 만세 부를 거예요.
밀양소년단은 겁먹지 않아요."


책의 뒷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