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화의 사기’를 읽는 즐거움

‘장자화의 사기’를 읽는 즐거움

김경윤(인문학 작가, 자유청소년도서관 관장)

내 책상의 앞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구가 적혀 있습니다. “훌륭함이란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것을 말한다.” 인문학 작가로서 책을 쓸 때마다 틈틈이 바라보는 경구입니다. 세상의 책은 넘쳐나지만 쓸모와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저도 스무 권 넘게 책을 썼지만, 제 책이 이 세 가지를 충족했는지 자신할 수 없지요.
‘장자화의 사기’(전5권)은 이 세 가지를 충족합니다. 대만과 중국의 10곳이 넘는 기관에서 극찬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지요. 그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1. 쓸모 있다
저의 서재에는 민음사판 『사기』 완벽본이 있습니다. 「본기」, 「표」, 「서」, 「세가」, 「열전」 등 130편을 모두 번역한 방대한 책이지요. 글의 출처를 찾아보거나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을 때 유용합니다. 하지만 방대하여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문제(?)가 있네요. 청소년들에게 소개하면 고개를 절래절래할 분량입니다. 물론 민음사판 말고도 10여 종에 가까운 『사기』가 있으나, ‘장자화의 사기’는 다른 종과는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5권으로 나뉘어 있어 쉽게 손이 가고, 읽으면 술술 읽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고, 어서 다른 책을 읽어 봐야지 하는 의지를 다지게 됩니다. 이 정도면 독서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쓸모라 할 것입니다. 일화가 끝날 때마다 정성스럽게 써 놓은 ‘3분 역사 키워드’는 약방의 감초처럼 앞의 이야기를 되씹게 하고, 사마천의 평가와 다른 결로 장자화의 인물평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고전 어휘 익히기’는 이야기를 한자성어로 정리하게 하는 효과를 줍니다. 작지만 강하고 쓸모 있는 장치입니다.

2. 감동을 준다
이야기를 압축한 다른 『사기』들은 분량은 줄어들었지만, 문체에 있어서도 압축에 그치고 만 느낌이라 감동이 덜합니다. 그런데 ‘장자화의 사기’는 마치 새로 쓴 역사소설처럼 인물과 사건이 살아 있습니다. 눈으로 읽는 드라마라고나 할까요. 마치 눈앞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은 작가의 역량일 텐데, 이런 역량을 갖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다가 인물을 놓치고, 인물을 살리려다 이야기가 길어지는 실수를 종종 범하는 저로서는 참으로 부러운 역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역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건과 마주치면 독자와 글의 감응이 커지는데, 이를 감동이라고 하지요. 적은 분량에 큰 울림을 주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장자화는 그것을 해내네요. 감동은 읽을 때보다 읽은 후에 더 큰 잔향을 남기는 법이지요. 책을 덮고 나서 느껴지는 여파를 한번 느껴 보세요.

3. 재미있다
사실 청소년들은 쓸모와 감동보다는 재미라는 직접적 요인이 있어야 책을 집어듭니다. 대부분의 위대한 고전들이 청소년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1차적 원인은 재미가 없다는 점이지요. 물론 모든 책이 재미를 추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차원적인 철학 서적도 필요하고, 복잡한 과학 지식도 필요하지요. 하지만 역사책이라면 우선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사람에게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기 마련입니다. 인물의 성격과 태도, 그로 인해 빚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은 그 강렬도가 높을수록 재밌게 마련이지요. 중국 고대에서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천하를 주름잡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그 삶이 강렬하기 마련이지요. 강렬한 재미! 그것이 ‘장자화의 사기’에는 있습니다. 먼저 나온 1권과 2권을 읽고, 다음 책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외인구단』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의 경험이었습니다. 5권까지 다 읽고 너무 재밌어서 청소년 자녀에게 건넸더니 순식간에 읽어 버리네요. 부모와 자녀가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중국 고대 철학을 강의하는 저로서는 철학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역사적 사건과 동시대에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을 알아야 강의를 더욱 입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장자화의 사기’는 그런 점에서 저에게 강력한 지원무기가 되었습니다. 인물과 인물이 겹치고,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오래된 것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은 역사서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이겠지요. 역사가 과거에 묻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롭게 쓰여지는 것은 바로 현재를 읽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마음 한 구석에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어, 조금만 더 쓰려고 합니다. 사마천은 죽음 대신 궁형이라는 치욕스런 삶을 선택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도 유언이려니와 공자 이래로 이어지지 않은 중국 전체 역사를 다시 새롭게 쓰겠다는 시대적 포부가 있었지요. 『사기』는 죽음과 맞바꾼 시대의 명작입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이 책의 작가인 장자화도 삶에서 커다란 시련을 겪습니다. 교수로 나아가는 길도 막히고 사업도 망하고 가족을 잃고 건강마저 약화되는 상황을 만나지요. 그때 제안을 받고 쓴 것이 ‘장자화의 사기’입니다. 장자화는 『사기』를 단순히 선별하고 요약한 것이 아니라 『사기』에 나오는 역사적 오류들도 수정하고, 새롭게 구성하여 씁니다. 저는 ‘장자화의 사기’를 읽으면서 사마천과 오버랩되는 장자화를 만납니다. 사람은 책을 쓰지만, 책은 사람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장자화와 같은 좋은 작가가 건강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족>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이 고대철학자들의 이야기가 생략된 것이었는데, 『사기』에 이어 고대 철학 서적을 새로 쓰고 있다니 벌써 기대가 되네요. 장자화가 쓰는 고대 철학은 어떤 색깔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