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서평] 『제로의 비밀 수첩 쉿!』 김다노 작가 서평





<제로의 비밀 수첩 쉿!> 서평
고달픈 십 대들의 필수품, 비밀 수첩


동글동글한 얼굴과 몸, 빨간 테 안경, 삐죽삐죽 단발머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주인공과는 조금 다른 외형의 제로는 키와 몸무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결코 시시하지 않은 열한 살 여자아이다.

진짜 십 대 어린이가 된 제로가 비밀 수첩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첫 번째는 마음껏 잘난 척하려고! 두 번째 엄마, 아빠에게 하기 싫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초등학교에 ‘작가와의 만남’으로 초청되어 가면 다양한 나이대의 어린이들을 만날 수 있다. 저학년과 고학년을 대할 때 나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칭찬과 희망찬 말을 쏟아내지만 십 대 독자들에겐 일종의 예고를 날린다.

‘이제 여러분들의 인생은 고달파질 것입니다.’
잘 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웬 저주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고 진실이다. 직접 겪은 일이니 장담한다. 열 살이 넘었으면 한 자릿수 나이 때보다 인생을 안다 싶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아진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여전히 어린애 취급이다. 내 권리와 의견을 주장하면 아는 것도 없이 까부네, 말대답을 하네, 사춘기가 왔네, 같은 소리나 듣기 일쑤다. 그러니 열한 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비밀 수첩이 아니면 무엇이겠냔 말이다.

제로에게도 누구보다도 비밀을 지켜 줄 친구가 생겼다. ‘쉿’이라는 이름부터 믿음직스럽다. 아무리 본인 스스로 ‘나는 좀 똑똑한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존감 높은 어린이라도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하다. 특히 제로 같은 아이는 말이다.

제로는 할 줄 아는 게 많다. 혼자 가스 불을 켜서 라면을 끓이고, 친구와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 떡볶이 가게까지 이동하고, 용돈을 모아 스스로 딩동댕 게임기까지 산다.
어른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다. ‘관리’라는 이름으로 뺏긴 세뱃돈을 쟁취하고, ‘착하다’라는 칭찬보다 ‘고마워’라는 인사를 높게 평가한다. 자신을 의심한 아빠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 현수막도 붙인다.

이렇게 야무져 보이는 제로지만 가끔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라면 받침대를 놓지 않아 탁자에 시커멓게 냄비 자국을 남기질 않나, 애써 받은 용돈을 탕진해 버리고, 친구에게 절교 편지까지 보내 놓고 감자 과자를 나눠 먹을 생각이나 한다.

그래서 제로의 열한 살 인생이 플러스, 마이너스, 0점인 거냐고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어린이가 지닌 놀라운 회복력은 제로 안에서도 발휘된다. 괴롭고, 속상하고, 슬펐던 일들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아내 기록할 수 있는 건 비밀 수첩 덕분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이름을 지닌 일기장이 있었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를 읽고 따라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 늘 지니고 다녔다.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가득해 도저히 곁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없었다.

상상 속 친구에게 속삭이듯 쓴 일기들. 그때의 나는 불만과 불안으로 가득 찬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내 편이 간절히 필요했구나. 어른이 된 지금에야 알겠다.
열한 살 제로는 고민이 많다.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도 언젠가는 넘어서야 하는 부모님, 이별하고 새로 시작하기도 하는 친구들, 내 거이면서도 내 거 같지 않은 돈 문제까지. 지금 당장 해결할 수도 없고 해결 방법도 알 수 없는 우리네 숙제들 말이다.
그래도 제로는 좌절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실수도 했지만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으니까. 이런 제로 덕분에 엄마, 아빠까지 덩달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건 절대 안 비밀.

이름은 제로이지만 매력은 만점인 우리의 주인공 제로는 이제 두 번째 비밀 수첩을 맞이할 거라고 한다. 또 무슨 엉뚱함 속에 어떤 사랑스러움을 숨겨 둘까? 비밀 수첩 ‘쉿’이 두꺼워질수록 성큼성큼 자라나는 제로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_김다노(동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