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의 여왕』깊이 읽기




판타지의 대가 크리스 반 알스버그가 다룬 실제 이야기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초현실주의 작품으로, 전 세계 그림책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입니다. 칼데콧 상을 받은 『주만지』와 『북극으로 가는 열차』가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더욱 알려졌습니다. 작가는 판타지 이야기로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 왔는데, 이번 신작에서 실존 인물을 다루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폭포의 여왕’인 애니 에디슨 테일러의 일화에서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애니는 1901년 나무통을 타고 세계 최초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타 넘은 사람입니다. 당시 애니는 예순두 살이었습니다. 애니는 남편을 일찍 여윈 미망인으로, 운영하던 예절 학교가 문을 닫게 되자 노후를 걱정하게 됩니다. 자존심 강한 애니는 허드렛일로 푼돈이나 벌면서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자립할 만한 큰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런 애니가 생각해 낸 돌파구가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타 넘는 것이지요. 남다른 결심에 애니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집니다. 허무맹랑한 일을 벌이는 대책 없는 사람일까? 돈을 벌려고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일까? 이런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니의 도전을 얄팍한 술수로 치부하기에는, 폭포 타기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애니는 직접 나서서 꼼꼼하게 나무통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줄 매니저를 구합니다. 매니저인 프랭크가 애니더러 모험을 감당할 만큼 젊은 것 같지 않다고 하자 애니는 그 자리에서 스무 살을 깎아 마흔두 살이라고 거짓말합니다. 세상을 살 만큼 산 애니는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대책 없는 몽상가가 아니라 자신의 나이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며 결단력과 실천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에서 얻는 건 무엇일까
이제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갑니다. 애니와 프랭크는 기자들에게 폭포 타기 계획을 알리고, 나무통을 호텔에 전시하며 사람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킵니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니는 폭포 타기를 감행합니다.
애니가 들어 있는 나무통이 강물에 흘러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면 마치 눈앞에서 상황이 펼쳐지는 듯합니다. 작가는 애니와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주며 즉각적으로 상황을 이해시킵니다. 나무통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앞둔 절벽에 걸립니다. 3, 2, 1, 애니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애니는 위험천만한 폭포 타기에 성공을 합니다. 이제 계획대로 부와 명예를 얻는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랭크는 애니를 데리고 사람들을 모아 강연회를 열며 ‘폭포의 여왕’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늙수그레한 애니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대중에게, 애니는 관심조차 끌 수 없었습니다. 돈을 벌지 못하자 프랭크는 나무통을 훔쳐 달아나고 맙니다. 애니는 가까스로 나무통을 되찾지만 불행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새로 구한 매니저도 애니가 인기를 끌지 못하자 다시 나무통을 훔쳐 달아납니다.
결국, 애니는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스스로 ‘폭포의 여왕’임을 알리는 기념품을 팔며 생계를 이어갑니다. 이런 결과에 독자는 당혹감과 씁쓸함마저 느낍니다. 독자는 자신의 불편한 감정에 비추어 애니가 얼마나 깊은 좌절을 맛보았을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바로 이런 불편함에서 옵니다. 익숙한 해피엔딩의 성공 스토리가 아닌 불편한 결과에, 독자들은 성공과 도전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한 애니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애니는 씁쓸한 현실을 딛고 성숙한 자기 인식을 토로합니다. 애니의 자기 고백은 한 기자와의 대화에서 드러납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나무통에 들어가 폭포를 타 넘은 사람에 대해 묻는다면 대단한 일을 해냈다고 누구나 인정할 거예요. 나는 ‘그 일을 한 사람이 바로 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요.”
 
우리가 무엇인가에 도전을 할 때 결과는 성공일 수도 실패일 수도 있습니다. 애니처럼 부와 명예를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도전으로 인한 성장은 시도하지 않는다면 얻지 못할 것입니다. 작가의 메시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도전의 가치는 바로 도전 그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니처럼 스스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수많은 도전 앞에 선 어린이들에게 마음의 예방주사가 될 것입니다.
애니의 삶을 곱씹을수록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판타지 세계를 다루던 작가가 왜 애니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지, 그 속내가 알 듯합니다. 현실이야말로 판타지 세상보다 더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슬쩍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작가 소개
글·그림 크리스 반 알스버그
1949년 미국에서 미시간 주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과 물리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지만, 우연한 일로 미술로 진로를 틀었습니다. 미시간 주립대학의 입학 사정관을 만난 자리에서, 대학에서 예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에 흥미를 느껴서 충동적으로 지원합니다. 고등학교에서 한 번도 미술 수업을 듣지 않았지만 사정관에게는 개인 레슨을 받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입학 허가를 얻습니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왕성하게 전시회를 열며 조각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은 저녁 시간에 소일 삼아 그리는 정도였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
만 친구이자 유명한 그림책 작가인 데이비드 맥컬레이는 생각이 달랐습니다. 데이비드 맥컬레이의 주선으로 편집자를 만나게 되었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그림책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 받게 됩니다.
1979년에 출간한 『압둘 가사지의 정원』으로 칼데콧 아너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섬세하면서도 환상적인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조각가답게 양감이 풍부한 느낌을 연출합니다. 작가는 판타지 세계를 현실적으로 보여 주고자 그림에서는 더욱 철저히 비례와 원근을 따져서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20여 권의 그림책을 출간했으며 현재는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에 살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옮긴이 서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어린이책 기획과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빈터의 서커스』, 『채마밭의 공주님』,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빨간 모자』, 『호랑이 씨 숲으로 가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