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작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 있다면?_<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 김혜진 작가


"말 한 마디가 하루를, 사람을, 세상을 바꾸는 일도 일어나잖아요. 충분히 마법이라 할 만하지요."

대개 마법이라 하면 엄청난 힘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여기 좀 수상한 마법이 있습니다. 먼지나 겨울 햇살, 실바람, 글자나 빨대 같은 가느다란 힘을 이용한 ‘가느다란 마법’이랍니다. 게다가 책 제목을 가만히 읽어 보니 어딘지 익숙합니다. 가느다란 마법사? 가나다라마바사! 눈을 크게 뜨면 찾을 수 있을 듯한 이 소박한 마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를 쓴 김혜진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Q. <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A.갓 학교를 졸업한, 가느다란 마법을 쓰는 신참 마법사가 특별한 친구들을 만나 동네의 문제를 해결하는 모험 이야기입니다. ‘가나다라마바사’를 ‘가느다란 마법사’로 잘못 알아들은 것이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예요. 그럼 ‘아자차카타파하’는 뭐가 될 수 있을지 궁리한 끝에 ‘아주 착한 타파하’라는 캐릭터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참, 가느다란 마법사는 가느다랗지는 않습니다. 아주 착한 타파하는 그리 착하지 않고요. 그게 이야기의 묘미 중 하나랍니다.



Q. 나비 날개처럼 얇고, 실처럼 가느다란 마법! 가느다란 마법은 어떻게 구상했나요?
A.‘가느다란 마법사’라는 이름을 만든 뒤에 과연 가느다란 마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글자의 획을 이용한 글자 마법이 먼저 떠올랐고, 실과 바늘처럼 실제로 가느다란 물건들을 활용하는 마법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재료가 그렇게 가느다랗고 얇으니 효과도 그 정도겠지요. 그런데 그 작고 있으나 마나 한 힘이 결국엔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어요. 말 한 마디가 하루를, 사람을, 세상을 바꾸는 일도 일어나잖아요. 충분히 마법이라 할 만하지요.
보잘것없어 보이는 재료로 작은 파문을 일으켜, 결국은 넓고 깊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가느다란 마법입니다.

Q. 단어와 글자, 자음과 모음이 흩어졌다 모이며 새로운 말이 되는 글자 마법! 어렵지만 재미있는 말놀이를 작품 속에 넣은 이유가 있나요?
A.원래 글자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어요. 글자의 획을 뒤집고 나누고 다시 붙이며 노는 것 말이지요. ‘ㅎ’을 옆으로 돌리면 작은 ‘아’가 된다는 것이 너무 재밌고 신기하지 않나요? '곰'을 아래로 접듯 내리면 '문', ‘ㄹ’을 자르면 ‘ㄱ’과 ‘ㄷ’이 된다는 것! 그 자체가 마법 같은 일입니다. 다른 언어의 글자들로는 이렇게 하기 힘들겠죠? 한글은 정말 멋집니다!

Q. 떡집 3층에 ‘갓 졸업한 마법사를 위한 방’이 있다니! 평범한 동네 배경인 데다가 묘사가 구체적이어서 재미있어요.
A.일단은, 평범한 동네로 하고 싶었어요. 흔한 것에서 신비로운 힘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니까요. 제가 마침 평범하고 오래된 동네에 살고 있거든요. 서울 북서쪽, 은평구예요. 지금은 조금씩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구불구불 휘어지는 골목과 오래된 가게들이 있는 곳이에요. 특별한 구석은 없어도 나름의 개성이 있는 재미있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방앗간 얘길 하자면, 저는 어디를 가든 방앗간이 있으면 괜히 그 동네에 호감이 생기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어두침침한 가게 안에서 쉼 없이 기계가 돌아가고, 때론 고소하고 때론 맵거나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모습이 좋아요. 그러고 보니 떡 찧고 참기름 짜고 고춧가루를 빻는 것도 가느다란 마법과 관련 있을 것 같은데요? 맛도 있고요!



Q. 가느다란 마법사는 학교에서도 동네에서도 길을 잘 잃는 ‘길치’예요. 작가님도 길을 잘 잃으시나요?
A.저는 길을 아주 잘 찾는 편입니다! 자랑거리로 삼을 정도지요. 지도 보는 것과 길 찾는 걸 좋아해서, 일부러 안 가 본 길로 가기도 해요. 너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빙빙 돌아서 갈 때도 있답니다. 그래서 오래된 동네를 좋아합니다. 샛길, 곁길, 막다른 길 다 있어서요. 헤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멀고 갈림길이 많은 길을 만나면 막 신이 날 정도에요.
그런데 왜 가느다란 마법사는 길을 잘 잃는가 하면, 제가 그러고 싶어서예요. 길을 잃으면 길 위에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요. 사실 마법사는 길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죠. 그만큼 길을 찾는 법도 많이 아니까요. 가느다란 마법사와 제 공통점이 또 있는데, 한눈팔기를 잘한다는 점이에요. 한눈을 팔아야 마법 학교로 가는 길도 발견하고, 마법 재료도 발견하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초등학교 1학교 교실 앞에 자주 가는 파란얼룩 참새, 먼지뭉치에 종이-책까지! 주인공 말고도 개성 있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많아요! 그중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A.캐릭터들은 이야기를 쓰면서 자연스레 툭툭 튀어나오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러는지, 저도 가끔은 신기합니다. 마법사와 타파하 다음으로 가장 처음 떠오른 건 ‘향나무’였어요. 제가 향나무를 좋아하거든요. 오래된 집 마당이나 건물 앞에 심어진 향나무들을 일부러 찾아서 관찰하기도 해요. 향나무 가지 안에 참새들이 모여 엄청 시끄럽게 짹짹대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무슨 일로 모였을까 궁금해한 것이 이야기에 이어졌지요.
저는 물론 책에 나오는 모두를 좋아하지만, 지금 딱 마음이 가는 것은 ‘먼지뭉치’예요. 대청소를 하면 가끔 끌려 나오는 먼지 덩어리, 바로 그건데요. 마음이 여리면서도 강단도 있고, 위기의 상황에서는 결단력 있게 행동한답니다. 그리고 귀여워요!

Q. 작가님 판타지에는 학교와 도서관, 책이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앗,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특히나 도서관이 빠진 적은 거의 없는 듯 해요. 『일주일의 학교』에도 도서관 장면이 있고, 『일곱 모자 이야기』에도 학교와 도서관이 배경으로 나오네요. 명확한 이유는 없지만, 굳이 이유를 뽑자면 제가 책과 도서관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일 거예요.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계이고, 도서관은 세계들을 모아 놓은 곳이니까요. 그 수많은 세계들을 맘껏 오갈 수 있는 장소는 도서관뿐이지요. 저한테는 책과 도서관의 존재 자체가 판타지처럼 느껴져요 사실 저는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도서관 가까이 살아 본 적이 없었거든요. 버스를 타고 굳이 먼 도서관을 찾아가서, 책장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서 느꼈던 설렘과 기쁨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요즘은 동네에 아주 멋진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갑니다. ‘내를건너서숲으로’ 도서관이에요.



Q. 가장 먼저 쓴 장면과 가장 오래 걸린 장면은 무엇인가요?
A.가장 먼저 쓴 것은 첫머리예요. ‘가느다란 마법사는 가느다랗지 않다’라는 문장이 이야기를 쓰기 전부터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가느다란 마법사가 가느다랗기까지 하면 재미없으니 꼭 그렇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여러 번 고쳐 가며 오래 붙잡고 있었던 곳은, 해결하기 힘든 상황을 놓고 마법사와 종이가 의견을 주고받는 장면입니다. 마법사가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냥 학교로 도망가고 싶지는 않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억지로 힘을 내는 것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지는 것도 안 어울렸어요. 결국은 ‘가느다란 마법’ 그 자체가 마법사에게 통해서, 가느다랗고 작은 위로에서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풀게 되었습니다.

Q. 만약 한 가지 마법을 갖게 된다면, 어떤 마법을 가지고 싶은가요?
A.고민을 좀 해 봤는데요, 대단한 마법을 가지고 싶진 않아요. 힘을 어떻게 쓰나 고민만 더 많아질 것 같거든요. 그래도 마법을 하나 가져야 한다면 ‘심심 마법’을 택하겠습니다. 저는 “심심해야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어요. 심심하고 지루해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말과도 비슷하지요. 그런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쁘거나, 핸드폰을 비롯한 미디어에 빠져 있어 심심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저부터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심심할 틈이 없는 사람들을 심심하게 만들어 주는, 텅 빈 시간과 넉넉한 공간을 내어 주는 마법을 써 보고 싶어요.

Q.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가느다란 마법사와 아주 착한 타파하』는 담백한 이야기입니다. 마법을 다루는 판타지이지만 화려하거나 스릴 넘치지는 않아요. 그림으로 치면 수채화, 애니메이션이라면 3D 말고 색연필로 한 장 한 장 그린 것, 음식으로 치면 ‘밥’ 정도일 거예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달고 짜고 매운 맛을 더할 때가 많지요. 하지만 반찬 없이 맨밥만 먹어도 꼭꼭 씹으면 은은하게 맛이 나잖아요. 그런 단순하면서도 깊은 재미를,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재미가 있으니, 그중 맨밥 같은 재미를 즐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