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만나보기] 『내 동생이 수상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다락방 명탐정』 시리즈로 비룡소 문학상을 받아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성완 작가의 장편동화가 나왔다. 개발 바람이 닥친 조용한 시골마을, 폐허로 변해 가는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성완 작가 특유의 환상성과 발랄함으로,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보여 주는 기대되는 신작이다. 작가가 이전 작품과는 결이 다른 『내 동생이 수상하다』를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하여 작품 바깥에 덧붙이는 글을 극구 사양하던 작가를 보채서 글 한 편을 받을 수 있었다.
 
 
『내 동생이 수상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나란 사람, 참 쪼잔하다.
하나를 주면 하나를 돌려받아야 심통이 안 나고,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돌려줘야 잠이 온다. 공짜를 좋아하지도 않고, 거저 퍼주는 법도 없다. 그뿐인가. 나는 말주변도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고 오면 두고두고 후회한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후회하고, 정작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해 가슴앓이한다. 폼 나긴 글렀다.
 
수년 전, 나는 지역신문 기자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어느 택지개발지역을 취재했고, 이를 계기로 『내 동생이 수상하다』를 쓰게 됐다.
장담컨대 내 일이 신문기사 취재까지였다면 『내 동생이 수상하다』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근무했던 지역에서는 여러 명분과 모양으로 개발이 진행됐다. 그래서 시청 앞엔 철거민, 노점상 등의 농성이 잦았고 나는 그때마다 현장을 들락거렸다. 생계와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가슴 아팠지만, 감히 나까지 책으로 엮을 생각은 못했다.
 
 
 
출처 : 『사라지는 마을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삼송』, 높빛, 2007.
 

하지만 신문사에서 그 지역과 관련된 책을 만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나는 일 년 넘도록 그 지역을 드나들면서, 개발 그 너머의 삶을 보았다. 빈집이 늘어날수록 온기가 사라지는 마을. 고장 난 가로등은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기가 끊긴다, 물이 끊긴다는 소문에 마을은 흉흉했다. 마을버스는 한 시간 간격으로 바뀌어 불편했고, 가게는 새 상품을 들이지 않았다. 논밭은 쓰레기더미로 변했고, 마을은 공사장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마을을 떠나지 못하던 분들의 삶이,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분들의 삶이 거기 있었다.
 
 
 
 
스산했다. 먹먹했다. 그리고 어느 집 대문에 붙어있던 ‘아직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스스로 항변하고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현실이, 내내 눈에 밟혔다. 그래서 썼다. 이미 수없이 다뤄진 이야기일지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면 또, 또, 그리고 또 이야기하는 게 옳다는 오기로 썼다.
 
 
 
 
출처 : 『사라지는 마을과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 삼송』, 높빛, 2007.
 
사실 이 글은 등단 전에 쓴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진부한 소재니 버려라”라는 조언도 들었다. 내 등단작 『다락방 명탐정』과 색깔도 많이 달랐다. 하지만 나는 버릴 수 없었다. 진부하다니. 소재라니.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반복되는 현실의 문제들을 먼발치에서 접할 때마다, 몇 번만 반복되어도 지겹다고, 또 그 얘기냐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그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 그분들의 지난한 삶을 생각했다. ‘아직 사람이 살고 있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죄스러웠다. 나는 빚지고는 못 사는데 말이다. 그래서 원고를 다시 꺼내 열심히 다듬었다. 물론 나 자신도 모르는 내 색깔을 등단작에 제한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쪼잔하고 말주변 없는 나는 그곳에 계시던 분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아니다. 사실 난 아무 말도 못했다. 위로는커녕 너스레도 떨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말을 건네고 싶다. 안부를 묻고 싶다.
한 평 남짓한 쪽방촌의 방을 수줍게 보여 주시던 아저씨는 어디에 방을 구하셨는지, 일하는 식당에서 가져온 오리고기를 마을 분들과 함께 구워 먹던 아주머니는 요즘 어디서 누구와 고기를 구워 드시는지, 나고 자란 고향이건만 하루빨리 이사를 가고 싶다며 독기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소년은 이제 고향을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게 됐는지, 너른 앞마당의 이것저것을 자랑하시던 할머니는 마당은커녕 베란다도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가셨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신지……. 모두 궁금하다. 그리고 복잡한 절차와 야박한 보상에 “정부도, 시도, 대책위도, 아무도 믿을 수 없다”며 우산도 없이 빗길을 걸어가시던 아주머니에게, 그때 우산을 빌려드리지 못해 죄송했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다.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라 쑥스럽고 서툴러서 그랬다고 변명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 동생이 수상하다』는 내 방식의 뒤늦은 안부 인사다. 잊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기억하라고, 너희는 우리 어른들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보라는 당부다. 애당초 폼 나긴 틀려먹은 나는 그렇게 『내 동생이 수상하다』를 통해 또 한 번 세상에 말을 건다.
 
 
노루목에서 성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