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세상을 바꾸다 : 이누리

2011 1318독후활동대회 글쓰기 부문 장려상
전남 영암여자고등학교 1학년 이누리
 
 

이 세상에는 개선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다. 일상의 사소한 일부터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이르기까지 너무 많아서 셀 수조차 없다. 그것들에 직면할 때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받아들이자니 뭔가 찜찜하고, 싸우자니 뒷일이 두려운, 아주 어려운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부분은 그냥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한다. 부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감당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결국엔 외면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옳은 걸까? 언젠가는 꼭 해결해야 하는 일이다.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면 고인 물이 썩어 버리는 것처럼,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도망치고 있을 때 어떤 누군가는 모두를 위해서 싸운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그 ‘누군가’이다. 또래 친구들처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외모에도 신경 쓰는 평범한 열일곱 살 소년이지만 강단은 어른 못지않다. 소년은 대대로 가업을 이어온 보수적인 이발사 집안의 손자이다. 때문에 열일곱 살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욕망이 소년에게는 허용될 수가 없다. 보름마다 소년의 머리카락은 할아버지의 낡은 이발소 의자에서 짧게 잘린다. 마치 그런 욕망들을 함께 쳐내는 것처럼 할아버지는 입을 앙다물고 성의껏 손자의 머리를 이발한다. 이따금 소년은 친구들처럼 머리를 기르고 싶은 마음에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감히 할아버지께 반항할 수는 없다. 

그런 소년의 속도 모르고 학교 선생님들은 소년의 용모가 단정하다며 칭찬한다. 학교 규정대로 짧게 머리를 잘랐기 때문에 소년을 말 잘 듣는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느 선생님이든 소년을 다정하게 대하고 소년을 좀 본받으라며 다른 학생들을 다그치기까지 한다. 어느새 소년은 그 짧은 머리 하나로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모범생’, 친구들 사이에서는 ‘범생이’라고 불린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체육 선생이 두발 규정에 어긋난 한 학생의 머리털을 라이터로 그을리려고 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순간 소년은 학생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선생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그리고 어떤 용기에서였는지, 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선생의 라이터를 빼앗아 집어던진다. 그렇게 선생과 소년의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지고 나서 결국 소년은 상담실에 불려 간다. 그 일로 소년은 모범생이라는 선생님들의 신임을 잃는다. 그러나 여전히 소년은 자신이 한 일이 정당했다고 생각하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학생 두발 규제 폐지에 대한 시위까지 계획한다.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다. 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기로 한 그날, 소년은 유인물을 뿌려 보기도 전에 선생님들에게 걸려 또다시 상담실 신세를 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학생주임 선생님의 불호령에 부모님까지 불려 오게 된다. 하지만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소년의 아버지는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고 나서 아들이 올바른 행동을 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아들이 쓴 유인물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어리지만 자신의 생각을 잘 적었다며 칭찬까지 해 준다. 선생님들 앞에서 머리를 조아릴 줄 알았던 아버지가 자신의 편을 들고 믿어 주자 소년은 힘을 얻는다. 아버지의 격려로 소년은 이제 자신이 시작한 일은 자신이 끝내겠다며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

그런 결심을 하는 소년을 보면서 나는 그가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다. 기존의 권위에 맞선다는 것은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인데, 소년은 고작 열일곱 살이다. 바로 지금 내 나이인 것이다.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소년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처음 친구들과 계획했던 도전은 생각만 있다면 나도 시도해 볼 만했다. 그래, 그건 쉽다. 그러나 그 도전이 좌절되고 나서 모두가 포기했을 때는? 아마 나는 친구들과 같이 우리끼리 뭘 할 수 있겠느냐며 입을 모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소년은 홀로 피켓을 만들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소년에게 엄청난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문 앞에서 소년을 지나쳐 갔던 친구들과 선배들의 낯선 표정, 선생님들의 비웃음. 아마 나는 그 모든 것들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처음 소년이 1인 시위를 시작했을 때 학생주임 선생님은 소년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그만둬라. 네가 이런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야.” 

아버지 말고는 소년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친구들 역시 처음에는 소년을 도왔지만 나중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소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끈질긴 싸움 끝에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뤘다. 학교에서는 두발 규제 완화 또는 폐지에 관해 의논할 운영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며 선생님들 역시 이제는 학생을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정말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이 모든 일은 단순히 학생을 통제하려고만 하는 학교를 향한 평범한 학생의 분노에서부터 시작했다. 

소년의 학교에서는 앞머리 5cm, 옆머리 3cm, 뒷머리 3cm, 일명 ‘오삼삼’이라 불리는 이 규칙을 만들어 놓고 학생의 인권을 짓밟으면서까지 철저하게 따르도록 했다. 규정에 어긋난 학생들은 ‘바리캉’으로 머리가 밀렸고, 군대에서만 한다는 얼차려를 받았다. 학생 모두가 그 엄격한 규칙이 부당한 것을 알았지만 소년처럼 그것에 맞설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학생으로서 견뎌 낼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소년은 싸우는 대가로 30일 정학처분을 받았고, 친구들이 교실에서 공부할 때 혼자 뙤약볕 아래에서 피켓을 들고 외롭게 서 있어야 했다. 그렇게 소년은, 일부러 다른 친구들보다 어려운 길을 택했다. 언제든 포기할 수는 있었지만 소년은 절대 도망치지 않았다. 할아버지께 교문 앞에서 시위하다 들켰을 때도, 아들이 정학 처분을 받았다는 걸 알고 엄마가 속상해했을 때도 끝까지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다. 

소년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지금 싸우면서 감당해야 할 위험보다 나중에 얻게 되는 가치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우리 아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아빠는 배를 만드는 노동자이시다. 다른 사람들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빠를 보고 왜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일을 하냐고 비웃지만, 아빠는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 아빠는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갖가지 차별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고 계신다. 자신은 정규직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약한 사람들을 대신해 세상에 맞서고 있는 아빠가 나는 정말로 존경스럽다. 회사의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으면서까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신념을 지키고 있는 아빠를 보면서, 나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언젠가는 나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조리한 현실을 마주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도망치거나 못 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아무리 강한 상대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해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굳어져 버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큰 어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또 어떠한 어려움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끈기 때문에 실제로 그 몇몇 사람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꽤 크다. 그들은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거인과 같은 거대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세상에 맞서고 있는 그 사람들처럼, 우리 아빠처럼, 그리고 이 책의 소년처럼 나 또한 나중에는 세상을 바꾸는 작은 거인이 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힘을 믿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는, 작은 거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