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 김태희

제2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김태희

 
 
소나무와 샘이 많아 솔샘으로 불리는 ‘삼양동’, 들판의 잡초가 아니라 모진 풍파에 맞서며 당당히 아름다운 들꽃으로 자라나라는 바람을 담은 ‘들꽃 피는 마을’, 타워팰리스 불빛 아래 ‘수정마을’, 자립적인 공동체 마을을 꿈꾸었던 ‘복음자리 마을’……. 처음 이 마을 이름들을 들었을 땐 참 따뜻하고 정겹다 생각했어요.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서 이런 이름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런데 그 속사정을 들어 보니까 가슴이 먹먹해져 왔어요. 깊은 가난과 외로움, 상처, 절망, 잡을 수도 그렇다고 놓을 수도 없는 희망이란 것이 엉킨 사연이 끝이 없었거든요.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는 희망이란 게 무어냐고요? 이건 저만의 생각인데요, 이들에게 희망은 너무나 소박해요. 9.92평 집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오순도순 사는 것, 엄마, 아빠가 내 곁에 있는 것, 수돗물, 전기 마음놓고 써 보는 것……. 그런데 이런 것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서럽지만 그렇다고 자포자기할 순 없지요. 어쨌든 이 가난을, 상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 정말 너무나 절절한 희망이지요. 

이런 이야기들을 한 신문에 나온 기사를 통해 알게 됐고, 그 즈음에 『푸른 사다리』라는 책도 만나게 되었지요. 이 책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 보니 서초동 꽃마을 이야기가 나와요. 예쁜 마을 이름이지요? 서울 법원과 검찰청, 대법원, 대검찰청 이런 ‘겁나는’ 기관들이 있는 동네에 꽃마을 비닐하우스촌이 있었다고 해요. 88 올림픽 때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오는 손님들에게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골이 진 함석판으로 숨구멍을 둘러막았던 곳이기도 했답니다. 이제는 아스팔트 깔린 반듯한 새 동네가 되었다고 하는데 작가는 몹시도 안타깝고 눈물이 나려고 하나 봐요. 그 쭉쭉 뻗은 빌딩들 사이에는 여전히 사글세방, 영구 임대 주택, 비닐하우스에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래요. 

작가는 이 책에 나오는 윤제, 기철, 태욱, 인섭, 호성이 같은 아이들에게 더 마음을 주었던 것 같아요. 저도 그랬거든요. 윤제네는 강원도 광산촌에서 살았는데 엄마가 계를 붓던 계주가 돈을 떼어먹고 도망을 쳤대요. 그 뒤로 아버지에게 시달림을 당하던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엄마를 찾는다고 일은 않고 술에 절어 살다가, 엄마가 서울 꽃동네에 하우스 한 칸을 마련해 가족들을 불러 다시 모여 살게 되었대요. 그 사이에 윤제와 형은 외갓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했고요. 이사 온 뒤로 윤제는 밖에만 나가면 같이 놀 친구들이 있어서 신이 났습니다. 아이들의 유일한 놀이터는 하수도물 찔찔 흘러내리고 파리가 들끓는 공터여도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가 문제였다고 해요. 학교만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마음이 답답했다는데 왜 그랬냐면요, ‘똑바로, 도대체’ 선생님 때문이에요. 처음 전학 와서 잘해 보려고 딴엔 애도 써 봤는데 글씨가 왜 이 모양이냐, 수학 검산은 제대로 했냐, 책도 안 가져왔느냐 이런 식으로 번번이 야단만 맞았거든요. “너희 엄마 좀 학교에 오시라고 해. 도대체가……. 너희 집에 같이 가 보자. 너네 부모님은 뭘 하시는지, 도대체.” 이런 말씀을 듣고 윤제는 점심을 먹고 교문 밖으로 나갔습니다. 윤제네 집에는 전화가 없다는 것, 하우스에 산다는 것을 선생님이 알게 되는 게 너무나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다음날에는 호성이와 함께 ‘땡땡이’를 칩니다. 학교에서는요 이렇게 아무 연락 없이 학교에 오지 않으면 ‘사고 결석’이라는 이름으로 표시를 해 버려요. ‘사고친다’의 그 ‘사고’예요. 그리고 이런 게 남으면 큰일난다고 으름장을 놓지요. 문젯거리를 만드는 사고뭉치로 ‘찍히고’ 말지요. 윤제는 어렸지요. ‘착한 건 돈 많은 거’라고 생각하는 그저 놀기 좋아하는 아이였을 뿐이에요. ‘돈이 있으면 좋은 집에 살면서 사람들을 폼 나게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래요. 이왕 이야기를 꺼냈으니 말인데요,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따귀 맞은 영혼’이라는 책 제목도 있던데 한 순간에 윤제와 같은 아이들의 영혼에 큰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저도 학기 초 아이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기 위한 설문지를 나눠줍니다. 그 가운데 ‘지금 저희 집의 경제적 형편은 이렇습니다.’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민감해하는 부분이라 끝에 ‘가난은 조금 불편한 것일 뿐, 부끄러운 일도 불행한 일도 아닙니다.’라는 말을 붙이긴 하지만 막상 학비 감면, 급식 지원을 받기 위해 써야 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제가 감히 다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겠지요. 

그리고 윤제가 그 후에 학교에 다시 갔지만 용호 패거리와 어울리게 되면서 물건을 훔치고, 학교는 물론 집에도 안 들어갔습니다. 파출소에도 잡혀갔고요. 없는 돈 들여 굿까지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었나 봐요. 결국 윤제는 경찰서에까지 ‘연행’되고 소년분류심사원으로 가게 됩니다. 용호의 친절에 끌려 집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 윤제는 ‘엄마, 내가 커서 돈 많이 벌어다 줄게. 청소부도 식당 일도 안 하게 해 줄게.’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윤제가 소년분류심사원으로 간 후 윤제 어머니는 면회는 물론이고 재판장에게 꾸준히 탄원서를 씁니다. 처음엔 사이가 안 좋았던 꽃마을 동네 친구 태욱이, 혜미도 면회를 왔습니다. 그런데요, 어디에도 선생님이 걱정하거나 면회 왔다는 얘기는 없어요. 이야기의 흐름상 빠진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하기엔 마음이 좀 아파요. 윤제가 만났던 선생님은 윤제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청소년 그룹홈 ‘들꽃 피는 마을’ 아이들 아버지이자 선생님 이야기 잠깐 할게요. 울산에서 자란 고2 문경이는 알코올중독인 아버지 탓에 어머니가 가출해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힘겨운 생활을 하다가 고아원에도 맡겨졌다고 해요. 문경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유승권 님은 “문경이는 상처 입은 자신을 대면하기가 겁나 외부로만 시선을 돌리는 듯하다.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끝말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 책에는 윤제 말고도 술만 취하면 식구들을 두들겨패고 살림살이를 있는 대로 때려부수는 아버지와 사는 대현이, 아버지는 골수암 앓다 죽은 줄도 모르고 파출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지희, 엄마 아빠가 이혼한 뒤 할머니하고 살다가 가출한 해일이……. 이 아이들이 더 깊은 상처를 받지 않고, 가난이 부끄러운 것도 혼자만의 것도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도록 나 같은 사람은, 이 땅의 선생님들은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사랑해 주고,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때론 심하다 싶은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그 동안의 삶이 너무 힘겨웠고, 그 힘듦이 자식들에게는 물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윤복이의 일기’를 읽은 세대입니다. 벌써 20년 저편의 일입니다. 요즘 다시 나오고 있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보니 그 동생 되는 이윤식 님의 글이 있어요. 좀 슬펐던 말은 책이나 영화로 일기가 소개되면서 아주 널리 알려졌지만 ‘그 뒤로도 오랫동안 생활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해요. 그렇지만 ‘형의 바람대로 지금 우리 가족은 넉넉하지는 않지만 오순도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고, 형은 사랑을 베풀어 준 분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어했고, 형편이 조금만 더 나아지면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과 소년 소녀 가장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대요. 여기 꽃동네에 사는 아이들, 어른들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가난하지만 있는 만큼 이웃 사람들과 나누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든요. 지금 당장은 못하더라도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나누겠다는 생각을요.

‘푸른 사다리’ 뿐만 아니라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나 ‘열 평 아이들’ 같은 책을 읽은 지금의 아이들에게 저는 ‘나눔’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 형편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는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외롭지 않고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나눌 수 있는 마음과 행동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선옥 님의 이런 글이 있어요. ‘가난은 콘크리트 벽 속에 매장되고 사람들은 이제 우리 모두 가난한 게 아니고 각자가 가난할 뿐이다.’, 그렇지만 ‘내 가난이 우리들의 가난이 되고 네 외로움이 우리들의 외로움이 되면, 그 가난, 그 외로움도 조금은 견딜만한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요. 전 그 말을 믿으면서,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나누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