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죽음 딛고 피어난 꽃 : 윤판자

제4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대상
윤판자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앞산의 산뜻한 푸르름에 눈길을 주고 있다. 저 푸르름 속에서 나는 지금 살아 있음의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있다.
 
우주, 태양계, 지구, 이 곳의 한 조그만 지점에서 생을 받아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유리에 얼비친다. 신비스럽다. 생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인가? 철학적일 것도 같은 여운이 내 주위를 감싸고 있다. 

책을 다시 펴서 차례를 따라가 본다. 
생명의 시작에서 최초의 생명체, 육지의 정복, 파충류의 시대, 포유류의 시대에 이르러 여기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인 나, 38억 년의 진화를 거쳐 지금 여기에 한 생명으로 존재하는 불가사의의 인류인 내가 새삼 경이롭고 신비스럽다.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태어난 아득한 시점부터 내가 존재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까지를 일별하면서 존재의 경외감에 마음이 싸해 온다.

생명의 시작을 들추어 보면 흙과 물과 불이 모두 한 곳에서 태어난 형제일진대 너와 내가 어찌 따로이겠으며, 또 생명 안에서 일어나는 미움과 고움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0시 바로 전, 지질학 시계상 인간이 출현한 시점에서 숨이 턱 막혔다. 생물 진화의 나무에서 가장 어린 가지의 꼭대기에 달려 있는 인류의 역사, 그 가운데 한 점 여린 열매인 내 자리가 몹시 두렵다.

생명의 본질은 살아 있음이라 했다. 살아 있기 위하여 환경과 맞서 싸우고 다른 생물들과 경쟁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한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살아있음을 확보하기 위해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만에 넘쳐 종횡무진 설쳐대고 있다. 무한한 우주 역사의 변천, 그 고요하고 정연한 질서에 견주어 보면 얼마나 오만하고 위험스러운가. 

지구는 수십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 진화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낸 생태계다. 생명의 역사를 뒤흔든 대멸종이 여러 번 있었는데도 지구는 여전히 모든 생명체의 풍요로운 삶터로 남아 있다. 이것은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태어났다가 사라져 간 무수한 생명체의 덕이라고 한다.

일 년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어디에도 안아 볼 길 없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듯 세상이 허허로웠다. 한 개체의 끝이 가져다 주는 허무함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중 조카가 읽고 있던 책, 『생명의 역사』를 마주하면서 가라앉는 마음을 맞이했다. 

자기 복제만 거듭하는 단세포 생물에게는 죽음이 없다. 반면에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다세포 생물 안에서는 무수한 죽음이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죽음으로 인하여 생명의 발전이 이룩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내가 존재하기 위해 수많은 죽음과 더불어 어머니의 죽음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어머니의 부재가 다만 부재로만 안타까워할 일만도 아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기 위하여, 다음 세대인 우리 아이와 그 다음 세대의 아이들을 위하여 어머니는 숭고한 작업인 ??죽음??을 맞이하신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로 알아들었는데도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 왜 눈자위의 더움이 걷히지 않는지…….

다시 책을 펴서 그림으로 그려진 생명의 역사, 그 현장들을 둘러본다. 생명이 지구에 나타났다는 것은 신비이자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면서 생명을 탄생시키고 인류를 낳았다. 

근래에 들어 인류는 자연스럽지 못한 행위들을 남발하면서 자연을 위협하고 있다. 자연을 위협한다는 것은 바로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다. 목소리를 높여 온 인류가 다 들을 수 있도록 호소할 능력이 내게는 없지만 내 주위만이라도 좀더 친자연적인가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허물며 오갔던 이번의 독서가 넌지시 일러 주고 있다. 

그렇다, 오늘 당장 차를 집에 두고 걸어서 출근하여 내 곁의 자연을 자연스럽게 풀어 놓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