꺽정아, 일어나라 : 조소현

제3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중고등부 우수상 수상작
 

 
충청북도'괴산'이라는 말만 듣고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기차 안에서 네 시간의 기다림과 설렘은 나를 매우 당황스럽고 놀라게 했다. 물어 물어 찾아간 벽초 홍명희님의 생가는 대문부터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고 마치 폐허 같아 보였다. 옆집 아저씨께 부탁하여 다행히 담을 넘어가 보았는데 정말 폐허였다. 얼마나 쓰이지 않고 이렇게 버려졌는지. 시간을 알수 없는 낙엽과 거미줄만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홍명희님이 살아계셨을 땐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을 그분 역 시 밟으셨겠지. 여기저기 쳐다보다 내 시선이 고정된 곳은 뒤뜰의 낮은 산에 우뚝서 있는 쌍은행나무였다. 나무를 안으 니 두 사람은 더 있어야 둘레가 재어질 것 같다. 그래! 꺽정이라면 이 나무쯤이야 쉽게 뽑을 수 있겠지 .꺽정이가 나무 뽑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가방 속에서 『임꺽정』을 꺼낸다. 

임꺽정은 조선 초기에 양주 고리백정으로 태어나 부패한 사회상에 직접 맞닥뜨린 도적의 우두머리였다. 꺽정이가 백성 들과 힘없는 부녀자를 이용하는 당시의 부패한 관료들을 꾸짖고 혼내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물 론 세상을 향한 그의 함성은 억움함과 분노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를 보는 시각은 의적과 도적으로 나뉜다. 하지만 눈여겨둬야 할 것은 당시의 시대상황이다. 『임꺽정』을 이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 역시 이 부분이다. 피지배 자들의 설움, 도대체 양반과 상놈의 씨가 어디 따로 있길래 말투까지 '함쇼, 하오, 하게'로 나뉘어야 했는지. 그 중에서도 가장 설음을 받은 것은 백정이었다. 그들은 사람 아닌 짐승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술주정하고 양반에게 대꾸좀 했다 고 관아에 끌려가서 엉덩이 맞고 옥에 갇히는 선이라는 인물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꺽정이 가 도적이 되어 일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v 그러나 남곤이 같이 꺽정에게 혼이 날 만한 인물이 있는가 하면 정암 조광조 같은 애국자도 있었다. 조광조는 기묘사화 가 났을 때에도 " 우리 임금이 이러실수가 없다. "며 평소의 임금에 대한 신의에 가득차 있었고 , 자신의 죽음보다 임금 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었다. 지금 이 세상에 정암같이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거리의 노숙자들은 없었을 텐데......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읽으며 가슴 뭉클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역사라는 단어를 가슴 깊 이 느낄 수 있었다. 꺽정이 같은 위적과 조광조 같은 선비가 모두 역사라는 수레바퀴 아래서 서로 얽히고 설켜 돌아가는 구나. 『임꺽정』을 읽으면서 새삼스레 책장 한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국사책을 꺼냈다. 누렇게 종이가 퇴색되고 맞춤법까지 달라진 그 책 속에서 나는 조상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역사는 색 바랜 종이처럼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언제나 하층민을 위한 꺽정이의 마음은 변치 않으리라. 『임꺽정』을 읽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하늘을 꿰뚫고 땅을 요동케 하는 사물놀이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그 장단에 팔과 어깨를 흔들며 온몸에 흐르는 단군의 피를 느낀다. 얼씨구! 개벽이 일어날 것 같은 꽹과리의 울 음에는 세상을 향한 꺽정이의 분노의 소리가, 가랑비 내리듯 살살살 두드리는 채편의 장구 소리엔 조선의 어느 주막집 주 모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임꺽정』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알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친구들 에게 『임꺽정』을 권해 주고 싶다. 해석도 안 되는 영어 문구가 남발하는 티셔츠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빠른 팝송에 고개를 흔드는 아이들, 반면 한복을 입고 한 손엔 부채를 들고 있는 명창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 속에 비쳐지면 곧바로 채널을 돌리는 아이들 속에서 나는 희귀종일 수밖에 없다. 물론 나도 그전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 나는 『임꺽정』을 읽으면서 된장국의 맛을 알게 되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어르신네들이 드셨던 된장국의 나 역시 먹으면서 나는 그 속에서 꺽정이를 알았고, 더 나아가 내가 '남과 다른' 그 무엇을 찾았다. 요즘 우리들은 겉은 물 론 속까지 '미국화'되어 가고 있다. 이럴 때 순 조선 것으로 된 『임꺽정』은 우리에게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겨울이라 쌀쌀한 날씨에도 쌍은행나무는 어느덧 또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었다. 파릇파릇한 눈이 가지마다 달려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많은 새 생명은 일 년을 또 헛되이 피고 지고...... 아무런 보람 없이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낙 엽이 되어 땅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고 진정 보람되고 참된 봄이 올 수 있는 날은 다시 한 번 벽초의 혼이 우리 민족을 일깨울 때 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꺽정이를 통해 우리앞에 나타나리라. 지금처럼 꺽정이의 함성이 그리울 때 가 있을까. 마음 속 으로 외쳐본다. 정말 꺽정이가 일어날 것처럼 , 그래서 진정 우리민족이 한바탕 웃을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꺽정아, 일어나라. 꺽정아, 일어나라. 일어나서 다시 한 번 이눔의 오염된 세상에 너의 함성소리 들려주렴. 들리면 너의 목소리에 우리 백성들의 원성이 풀리겠구나. 꺽정아 일어나라, 꺽정아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