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작가 취재 노트3

③ 헤매는 것도 약이 된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취재 노트 3



교토 히가시쿠조에서 보낸 시간
 

교토 고조 거리
요코하마에 다녀온 지 한 달 조금 넘었다. 2015년 4월 하순, 그런데도 이번엔 교토로 떠났다. 교토는 두 번째였다. 지난 해 단풍이 한창일 때 교토와 고베에 다녀왔다. 그때 교토에서 묵었던 여관과 동네는 채령이 유학 가서 살았던 무대가 돼 주었다. 주택가에 자리한데다 가정집을 개조한 여관 덕에 채령과 수남의 공간을 그릴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교토 근교에 있는 아라시야마는 채령이 정규와 데이트한 장소로 쓰였고, 그곳의 유명한 다리인 도월교 에피소드도 넣을 수 있었다.
봄에 다시 간 이유는 교토는 벚꽃의 도시이기도 했고, 교토 역 남쪽에 있는 히가시쿠조(東九条)에 가 보고 싶어서였다. 그곳은 정규가 사는 동네였다. 이번 여행에는 친구와 친구의 지인 두 명이 함께했다. 요코하마에 가서 실컷 외로움을 누리고 온 터라 여럿이 가서 북적거리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교토는 794년 헤이안 시대 일본의 수도로 중국 시안을 본떠 지은 계획도시다. 왕이 사는 곳부터 1조(条)로 해서 10조까지 구역을 설정해 거주했는데 숫자가 높아질수록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살았다. 히가시쿠조는 신분제 철폐 이후에도 천민 집단의 후손으로 차별받던 일본인들의 거주 지역이었다고 한다.
한인들이 그곳에 살게 된 것은 1920년대부터다. 철도나 터널 공사를 비롯한 대규모 토목 공사 등과 교토의 전통 섬유산업 중 하나인 염색 공장에 한국인들이 고용돼 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토를 가로질러 흐르는 가모강 하류인 히가시쿠조 지역에 판잣집을 지어 생활했다.
지역 주민들은 자기들처럼 차별받는 존재인 조선인들이 들어와 사는 것을 묵인했다. 1940년대 초 비행장 건설을 위해 끌려온 징용 노무자들이 정착한 우토로 마을보다 먼저 한인들이 모여 산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샤 대학에 다니는 정규는 그곳에서 조선인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항일운동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친일파 딸인 채령과 사랑에 빠진다. 사랑 못지않게 고뇌에도 빠졌을 청년 정규가 남겼을 법한 흔적을 따라 길을 찾아 나섰다.
정규는 자신이 채령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말을
조선말보다 더 유창하게 하는 여자, 식민지 백성의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
는 여자,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여자, 부족한 것이라고는 없는 여자가 자신
을 사랑한다고 한다. 입버릇처럼 사랑을 위해 제 목숨도 걸겠다고 한다. 이
암울한 시대에 그토록 구김 없이 자랐다는 사실 자체가 혐오스러웠는데 캄
캄한 장막에 뚫린 바늘구멍처럼 채령의 밝음은 찬란함으로 다가왔다.
(… …)
채령과 결별하리라는 정규의 마음은 피 끓는 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
다. 손과 손이 만나고 입술과 입술이 닿는 순간 정규의 머릿속은 채령의 머
릿속처럼 아무 생각 없이 깨끗해지곤 했다.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가을에서 겨울까지」 중에서


교토 주택가 골목
교토 기온 거리
지도를 따라 교토 역 남쪽으로 내려갔다. 유적들이 즐비하고 번화한 북쪽 거리와는 한눈에도 차이 날 만큼 썰렁한 서민 주택가가 나왔다. 교토 최대의 한인 밀집 지역이라고 해서 한인 타운이 형성돼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헤매고 다녀도 한글 간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봄 햇살은 따스하다 못해 따갑고, 목은 마르고, 다리는 아프고……. 나는 일행에게 점점 미안해져 이곳이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아픔과 한이 서린 곳이다, 어쩌고저쩌고 설명하며 애타게 한글 간판을 찾았다.
길가에 과일 가게가 있어 들어갔다. 사과와 귤을 사며 주인 할아버지가 혹시 재일동포는 아닐까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할아버지는 우리끼리 하는 한국어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더는 찾아다니기도 미안했다.
“일단 좀 쉬면서 과일이나 먹자.”
“그래, 강가로 가자.”
가게를 나오는데 한 중년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 식당 찾아? 저쪽에 있어.”
한국말이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나는 흥분해서 주저리주저리 내가 찾는 곳을 물었다.
“여기가 다 거기야. 옛날에는 한국 사람들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다 이사 갔어. 많이 없어.”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여기 언제부터 사셨어요?”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재일동포 3세다. 고향은 경상도란다. 히가시쿠조의 옛 흔적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기뻤다. 그의 할아버지의 아버지가 정규와 함께 염색 공장에서 일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의 할아버지가 골목에서 뛰어놀다 채령을 보았을 수도 있으니까.
동포를 만난 것만으로 숙제를 마친 기분이 된 나는 일행과 함께 근처에 있는 가모 강가로 갔다. 강둑길에 줄지어 선 벚나무들은 꽃 대신 싱그러운 잎을 달고 있었다. 나무둥치 굵기로 보아 채령이 정규를 만나러 히가시쿠조에 왔을 때도 서 있었을 법했다. 그 둘도 이 길을 걸었겠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우리는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쉬었다. 그때도 흘렀을 강물이 반짝이며 흘렀고, 그때 놓았을지 모를 철도 위로 기차가 지나갔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우리는 잠시 그 안에 머물 뿐이다.
“근데 아까 그 재일동포 아저씨 말이 짧지 않아? 우리보다 젊은 거 같은데.”
“그래, 많이 돼 봤자 마흔 살 언저리 같아.”
“애초에 한국말을 반말로 배웠나 봐.”
우리는 별것 아닌 이야기에 키득거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나중에 두 친구에게 교토에서 가장 좋았던 것을 물으니 히가시쿠조의 강가에 앉아 사과를 먹었던 시간이란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1
저자 이금이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6.03.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2
저자 이금이
출판 사계절
발매 2016.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