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선물 - 『가방 들어 주는 아이』를 읽고 : 김기연

제3회 독서감상문대회 일반부 우수상
김기연

 
 
정말 싫었다. 그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 건……. 몇 달 전의 일이다. 교회에서 장애인들을 도우러 가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장난도 치며 출발했던 웃음을 그 곳에 들어간 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내 손을 잡으면서 히죽히죽 웃던 아저씨의 일그러진 얼굴은 며칠 간 나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손을 씻었다. 결벽증 환자라도 된 것처럼

“언니, 이 책 엄마가 사 주셨다! 이거 진짜 재미있어!” 

9살 난 내 동생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내게 자랑한 책은 ‘가방 들어 주는 아이’이었다. 알겠다고 쓴웃음을 지어 보이며 내 동생을 돌려보낸 나는 하고 있었던 컴퓨터게임에 열중했다. 

몇 시간 뒤, 컴퓨터 게임 조차에도 질렸던 나의 시선이 탁자 위의 책 한 권으로 쏠렸다. 동생이 자랑한 책 한 권이 탁자 위에 홀로 남아있었다. 책의 겉표지만큼이나 아주 외롭게······. 살며시 책의 두꺼운 표지를 펼쳤다 

장애인을 도우며 살아가는 한 어린 아이의 생활을 그린 동화책,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평범했지만 아름다웠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난 다른 데에서 볼 수 있었던 평범함을 그 책에선 느낄 수 없었다. 무언가 때문에, 아주 작은 그 무언가가 다르게 느껴졌다. 설명할 수도 없고, 만져볼 수도 없으며, 우리들 생각에는 준재하지 않는 그 무언가. 작가는 그 비밀을 책 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두었을지 모른다. 나는 그걸 찾고 싶었다.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너무 불공평하다. 장애인 친구, 영택이와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가까운 곳에 산다는 이유로 1년 동안이나 가방을 두 개씩 들고 다녀야 한다니. 주인공 석우는 이 사실이 너무 싫었을 게다. 

사람들에게 곁눈질을 받으며 가방을 두 개씩이나 들고 다닌다고 공부 못하는 아이, 숙제가 많은 아이, 골목대장의 졸병 취급을 받았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문방구 아저씨의 사탕, 어른들의 칭찬, 영택이 어머니의 초콜릿, 영택이의 잠바 등 석우가 영택이를 도와주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석우가 영택이를 도와주는 단 한가지 이유는 바로, 석우는 영택이의 친구이었기 때문이다. 영택이의 생일잔치에 다른 아이들은 다 오지 않아도 예쁜 미소로 영택이를 찾아주었던 것은 석우였고, 영택이를 늘 걱정했던 사람도 석우였기 때문에, 석우는 어른들이 보는 동정의 눈으로 영택이를 보지 않았다. 어린이의 순수한 눈으로 영택이를 친구로 보았기에 석우는 달콤한 초콜릿의 유혹도 뿌리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책을 읽던 중 아직까지 내 마음속 한가운데 저장되어 있는 그림이 있다. 석우가 모범상을 받으며 영택이에게 미안해 눈물을 보이게 되는 장면이다. 나는 처음 이해할 수 없었다. ‘모범상을 받으면서 왜 울까?’ 난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어른들은 이 장면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좋은 일 하고 상 받는 게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라고 생각하며 석우를 비웃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나는 작가가 책안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두었던 비밀을 찾았다. 책 사이에 고이 접어둔 비밀을 내가 찾은 것이다. 

어쩌면 이 비밀은 작가와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책 사이에 접어둔 작은 쪽지를 펴면 그곳엔 바로 ‘순수’라고 쓰여있다.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 순수…….

내일 친구들과 만나 다시 장애인, 아니, 아저씨들을 만나려고 한다. 아저씨의 어리석음에서 순수함이 묻어 나옴을 알았고. 힘든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그들을 돕는 목적이 ‘동정’이 아니라 ‘우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이제 난 그 아저씨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는 이유, 그리고 매번 적어놓고 잊어버리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며 받아 적는 이유를 알았다. 사람의 웃음소리,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분들께서 내 손을 잡으시면 벌레 씹은 표정대신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미소를 선물하려한다. 내 마음속의 빚을 갚기 위해. 

그리고는 집으로 뛰어와 동화책을 동생에게 선물하는 게 아니라, 엄마, 아빠께 선물해 드릴 것이다. 나를 변화케 하였던 동화책, 『가방 들어 주는 아이』를 말이다. 이젠 동화책을 읽으면 왜 행복해지는지 알았다. 동화책을 펼치면 어린아이의 순수한 샘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그 샘에서 세상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순수의 샘물이 무척이나 맑은 동화책을 엄마, 아빠께 선물로 드리면서 말할 것이다.

“엄마, 아빠,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꼭 읽어보세요!”
 
언니에게 동화책을 소개해 주고 싶어 하는 내 동생의 갈급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