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가족>열세 살의 걷기 클럽(김혜정 창작동화)

언젠가부터 미세먼지 알림 앱보다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 만보기 앱.
걷는 날과 걷지 못한 날은 삶의 질이 다르다고 느낀다. 매번 나의 새해 목표이자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다짐으로 ' #매일걷다 '까지 만들고 걷던 순간의 마주한 풍경들을 올리기도 하지만 그 매일이 그 매일이 아니니.... 방학 전 마지막 긴 연휴엔 무조건 걷기다! 다짐하며 책으로도 '걷기'를 만났다.
헌터걸, 오백 년 째 열다섯의 김혜정 작가님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읽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소재로 한 이야기라니. 그런데 열세 살, 사춘기 아이들이 걷기의 맛을 알기나 할까하며 첫 장을 펼치다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 옆의 큰 아이에게 넘기자 아무리 책을 추천해줘도 거들떠도 안보던 곧 열세 살 첫째가 이 책은 웬일로 가져가 키킥대며 읽는다.
또래 아이들의 대화와 사건들이 익숙한 탓일까?

"어떤 장면 읽고 있어?"
함께 산을 오르며 간식을 건네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는데
"아~ 엄마도 그 장면 좋았는데~~"
오랜만에 사춘기 큰 아이와 같은 이야기를 읽고 떠드는 순간, 이때다 싶어 책을 덮은 아이와 대화를 이어갔다.
"어떤 주인공이 가장 끌려?"
아이는 네 명의 주인공 중 '혜윤'에게 많이 끌렸다고 했다.
헉, 왜 혜윤일까? 그 머리띠 시스터즈! 어울리던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던 장면이 기억나면서 행여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상처가 있지 않을까 싶어 바로 ' 너도 따돌림 받은 기억이 있니?' 했더니
3학년 때 어울리던 친구들과 어쩐지 자기가 맞지 않아 자연스레 멀어진 이야기를 해준다. 그리고 지금 둘도 없이 친해진 친구들 이야기까지.

"아~ 그랬구나."
유달리 까칠하고 짜증이 많던 시기. 아이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 기간을 잘 통과하고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표지를 보면 밝고 경쾌한 아이들의 명랑한 이야기 같지만 그 속엔 열세 살에 만난 상처가 있다. 따돌림, 학교폭력, 가정폭력, 아동학대신고, 악플, 외모비하, 짝사랑 등 각기 다른 이유로 '걷기'밖에 선택할 수 없던 아이들이 따로 그리고 함께 걸으며 마지막 어린이의 계절을 보낸다. 설레는 열네 살을 기다리며.

"손가락 하나로도 사람을 살릴 수 있어. 고작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니까."

"아,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왜 행복하지만은 않을까. 내 마음 안에 누군가 들어오면 그 아이와의 관계에 따라 좋을 때도 있지만 슬프거나 속상할 때도 있다. 내 마음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 이건 남녀 사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마워, 너희들이 한 말들을 꼭꼭 씹어서 삼켰어. 더러운 말들, 나쁜 말들은 뱉었어."

이어서 아이는 강은이가 악플로 상처받을 때 친구들이 문앞에 응원의 편지를 잔뜩 붙여둔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했다. 친구가 어려울 때 곁에서 도와주는 그 장면이 좋았다나.네 명의 주인공이 연결되게 만든 친구가 강은이가 아닐까 생각되었는데, 늘 다른 친구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던 강은이 힘들어하자 그간 도움을 받던 친구들이 힘을 모아 응원하는 모습에서 친구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서 따뜻하고 좋았다한다. 어른인 나도 이 책 속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읽으며 온통 친구사이에서 겪는 고민들로 가득찼던 그때가 떠올랐다. 좋아하는 만큼 말 한 마디, 눈빛 하나에 상처받고 주던 날들. 그리고 함께 본 영화, 같이 오르던 뒷산, 라면 하나 끓여먹어도 신나던 순간들.
많은 이들이 건강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채워 나갔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대로 건강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강한 이야기, 열세 살의 걷기클럽.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님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고픈 날이다.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 어떻게 위로해줘야할까? 어떻게 다가가야할까? 망설이는 아이들과 나누고픈 이야기들.

"걷기는 이기고 지는 운동이 아니다. 천천히 걷고 싶으면 천천히 걸을 수 있다. 앞서 걷는 사람을 꼭 따라잡을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이렇게 함께 손을 잡고도 걸을 수 있다."

걷기 참 좋은 계절이다. 따뜻하다 못해 덥고 습습한 한 낮을 잘 보내고 어둑해지기 전에, 딱 좋은 바람이 부는 때, 딸과 함께 더 자주 걸어야겠다. 손도 잡고, 속닥속닥 낄낄 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