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하늘은 무섭지 않아

가슴이 뛰어*


최영희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자, SF 작가, 어린이청소년문학 작가)

 
최근 뉴욕타임즈는 이 시대 어린이들을 ‘마인크래프트 세대’라 정의했다. 3D 블록을 쌓아서 세계를 만들어 가는 마인크래프트는, 전 세계 어린이들 사이에 수년간 대세로 군림하고 있는 디지털 레고게임이다. 이전에도 다양한 오픈월드 게임이 있었지만, 마인크래프트가 신선한 이유는 게임의 목적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부족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거나 어딘가에서 탈출해야 하는 등의 목적 자체가 없다. 앤더맨, 스켈레톤, 좀비 등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이들과의 충돌은 게임 속 일상일 뿐 게임 전반의 목적은 아니다. 목적과 방향성, 세계의 존재 이유를 만드는 건 플레이어다. 따라서 이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플레이어는 ‘설계자’가 된다.
  제2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하늘은 무섭지 않아』를 앞에 두고 마인크래프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설계자들이 바로 이 책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수상작 「하늘은 무섭지 않아」에 나오는 표현대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상이 뒤집어졌”다. 이 책이, 나아가서는 SF동화들이 마주해야 할 독자는 알파고를 하나의 일상으로 여길 만큼, 완전히 새로운 세대다. 그들은 SF 콘텐츠 유저가 아니라 SF의 설계자다.
  설계자는 SF적 서사와 설정을 그다지 새로워하지 않는다. 여기서 기존 SF의 미덕 하나가 무너진다. 경외감! 지금껏 우리는 SF란 장르를 설명하는 데 무던히도 이 단어를 끌어다 썼다. 하지만 설계자들은 경외감 자체에 무덤덤하다. SF동화보다 더 치밀하고 놀라운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우주의 존재 이유도 만들어지고 있다. 거실 소파와 학원 휴게실에서, 어린 설계자들의 손에 의해!
  이런 상황에서 작가들은 왜 SF동화를 쓰는가. 상황이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야기 자체로 가슴을 뛰게 하면 된다. “언젠가 정말로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어.”(고호관 「하늘은 무섭지 않아」) 설계자들은 까다로운 듯 보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또 쉽게 곁을 내준다. 그러니 작가는 이야기꾼으로서, 본업에 충실하면 된다.
  SF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하나의 방식이며 무기다. 무기의 원리는 과학적 논리이며, 무기의 쓰임은 다른 세상, 다른 차원으로 뚫고 나가는 것이다. 고맙게도 「하늘은 무섭지 않아」 속 작품들은 SF라는 멋진 무기의 쓰임과 매력을 충분히 활용하여, 설계자들도 반길 만한 이야기를 내놓았다.
  상상력과 꿈을 통제하는 세상에 맞서(「하늘은 무섭지 않아」), 무엇이든 쉽게 폐기하고 방치하는 어른들의 논리에 맞서(「슈퍼히어로, 이 녀석!」), 아이들의 삶에 안일하고 무책임한 해결책을 던져놓은 어른들에 맞서(「로봇 짝꿍」), 아이들의 욕망을 자본의 논리로 계급화한 세상에 맞서(「동식이 사육 키트」), 포기와 패배를 가르치는 부모 세대에 맞서(「자전거 탄 아저씨」), 아이들은 실험하고, 서로 의지하고, 친구를 찾아가 사과하고, 버려질 위기에 처한 존재를 보듬고, 꿈을 지켜 간다.
  수상작 「하늘은 무섭지 않아」는 SF동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 같은 작품이다. 동화에서 ‘자기 결정권의 훼손’만큼 그악한 현실은 없다. 부모님이 이혼하면 나는 누구랑 살게 될 것인가, 나는 왜 내 맘대로 못 하고 저 주먹짱 말을 들어야 하는가, 마녀는 왜 나를 개구리로 만들어 버렸는가.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은 자기 결정권이 훼손된 현실의 메타포다. 작가 고호관은 수상작에서 우주를 꿈꾸면 안 되는 사회의 아이들을 보여 준다. 그 속에서 아이들은 실험을 통해 폐기된 지식을 조금씩 복원하고, 마침내 작은 로켓을 하늘로 띄운다. 달을 향해 침을 뱉던 아이들이 이제는 목을 꺾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물로켓 하나로 닫혔던 우주를 여는 힘, 그게 바로 SF동화다.
  「동식이 사육 키트」는 수록작들 중에서 동화로서 서사가 가장 탄탄한 작품이다. 이 단편을 따로 떼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도 좋겠다 싶을 만큼 완성도가 있었다. 동물과 식물의 중간 형태의 반려생물 ‘동식이’는 아이들이 꿈꾸는 반려동물이며, 더 깊이 해석하자면 세상에 하나뿐인 내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이다. 아이들은 욕망하고, 어른들은 이를 돈벌이에 이용한다. 그 속에서 더 깊이 욕망하고 좌절하고, 판단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아이들은 그 자체로 성장의 메타포다. 자신의 욕망을 조율하고 충돌하면서도 섣부른 윤리적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 점은 작가가 어린이의 감성을 깊이 이해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슈퍼히어로, 이 녀석!」은 캐릭터 설정이 돋보이며, 아이들의 눈높이를 정확하게 짚어 낸 작품이다. 주인공 가빈이와 미루는 쓰레기 폐기장의 어린 노동자들이다. 버려진 것들 속에서 쓸 만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일 가운데 하나다. 아이들의 생명력은 무질서하고 가치가 폄하된 세상을 뚫고 나와 싹을 틔운다. 또한 사이보그 강아지 ‘이 녀석’은 아이들이 꿈꾸는 위로며 히어로다. 사고로 잘못된 신체 부위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세상이어도, 아픈 마음을 달래 주는 데는 역시 ‘이 녀석’의 축축한 혓바닥만한 게 없다.
  「로봇 짝꿍」은 우리 반 왕따가 알고 보니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로봇이라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설정 자체는 그리 새로울 게 없었다. 이미 「수상한 전학생」(김민정, 푸른책들)에서 같은 설정을 보여 준 바 있다. 오히려 이 작품의 매력은 진정성에 있다. 왕따 해결 로봇과 친구로 지내다가, 어느 순간 그 아이를 배반한 주인공(준서)은 평생 동안 그 일을 가슴 아파한다. 결국 친구와 다시 만난 준서는 그때 일을 사과한다. 그 결말이 독자의 가슴을 건드린다. 다만 왕따라는 상황을 힘센 아이가 주도하는 물리적 폭력으로 단순하게 해석한 부분이 아쉬웠다. SF동화 역시 어린이문학이라면, 작가는 어린이가 처한 현실의 복잡하고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자전거 탄 아저씨」는 선명한 주제 의식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패배감에 찬 어른들의 현실적인 논리에 설득당하지 않고 나의 꿈을 믿는 일! 영원한 동화의 주제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서사 자체가 어린이 독자들에게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갈 확률이 크다. 꿈이 좌초된 아이, 미래에서 온 다른 누군가, 격려와 회복. 기존 판타지 동화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한 도식이다. SF의 옷을 입었다 하여 독자들이 이걸 새로운 이야기로 인식할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작품이 주는 감동 자체는 유효하며, 오늘 이런저런 현실로 꿈이 좌초된 아이들에겐 위로가 될 것 같다.
  『하늘은 무섭지 않아』 수록작들은 작품으로서 승부처가 제각각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그 안에 어린이의 인생이 있다는 점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잠시 내려놓고, 이 책에 폭 빠져들 설계자들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뛴다.

*제목은 「하늘은 무섭지 않아」 35쪽에서 따왔다.

 

하늘은 무섭지 않아

저자 고호관, 이민진, 임태운, 우미옥, 김명완

출판 사계절

발매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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