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람」이혜란 작가 인터뷰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짜장면 더 주세요!』, 『국민의 소리를 들어요!』 를 쓰고 그린 이혜란 작가를 만났습니다. 살다보니 ‘서방’도 생긴다면서 신혼의 알콩달콩 면모를 보여 주셨지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에 대한 열정과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짜장면 더 주세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 작품을 시작한 것은 2003년이 에요. 그때는 .일과 사람. 시리즈가 기획되기 전이었고요. 그림책 공부하는 친구들이랑 같이 더미를 만들어 보았어요. 제 아버지가 중국집을 하셨는데, 그 이야기를 풀어 보고 싶었어요. 처음에 그렸을 때는 꽤 분량도 많았고, 연령도 높았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잘 안 풀려서 덮어 두고있다가, .일과 사람. 시리즈를 기획한 곰곰 팀을 만난 뒤 다시금 새롭게 만들었어요. 책마다 운이 있는데  『짜장면 더 주세요!』는 정말 잘 맞는 편집자를 만나서 책이 더욱 단단해진 것 같아요.   
 
취재는 어떻게 했나요?
기본적으로 아버지가 모델이지만 취재를 두어 곳 더 했어요. 처음에는 아버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다른 분들을 취재하면서는 ‘아버지의 일’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장사하는 골목에 살았는데, 주변에서 중국집을 하시던 아저씨들을 만나고 골목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되었지요.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쭉 아니까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이 보이고 그런 일상이 사람사는 재미로 느껴지더군요.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게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더욱 깊어졌고요.
    
『짜장면 더 주세요!』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아래 장면이요! 사실 이 장면을 그리기 위해서 처음부터 달려왔다고 할 수 있죠. 이 장면은 아버지를 추억한 장면이에요. 중학교 때인가 집에 와서보니 아버지가 손님상을 치우다 말고 잠깐 졸고 계셨어요. 그 모습이 굉장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어요. 처음에는 그대로 그렸는데, 너무 처절하더라고요. 모니터링을 했을 때, 그런 아저씨가 만든 짜장면은 맛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두 아이의 아빠인 그분이 ‘일’을 하는 게 힘이 들지만 가족이 있기에 또 기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뒤, 아버지의 고된 생활이 가족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고 있는 아버지의 자세는 똑같지만, 마치 아버지가 작은 조각배처럼 가족을 품고 망망대해를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어요. 엄마는 돛처럼 방향을 정하고 배에 올라탄 자녀들이 노를 젓는다고 생각하고 그림을 봐 줘도 좋을 것 같아요.
      
 
책이 출간되고 아버지의 반응은 어떠세요?
무척 좋아하시죠.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도 하시고요. 엄마는 중국집 딸인 게 동네방네 소문났다고 했죠.(웃음) 책에 그려진 신흥반점이 아직 부산에 있거든요. 초등학생이 책을 읽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대요.
      
책을 만드는 과정이 아버지의 직업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과정이네요. 그 과정이 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 아버지 이야기에서 벗어나니까, 중국집 옆에 있는 빵집도 보이고, 빵집 옆 채소 가게도 보였어요. 중국집에 오는 사람들도 어디선가 자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짜장면에 들어가는 채소를 키우는 분일 수도 있고, 짬뽕에 들어가는 수산물을 잡는 분일 수도 있고, 프라이팬을 만드는 분일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게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보여 주고 싶었어요. 궁극적으로 그렇게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어요.     
  
『국민의 소리를 들어요!』는 국회의원을 다룬 이야기인데, 작업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아요. 작업 시작은 어떻게 했어요?
힘들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해 보니까 정말 힘이 들었어요. 이 책은 완벽하게 편집자와 의견을 나누면서 시작했어요. 취재도 석 달 열흘, 꼬박 백 일을 했어요. 처음에 욕심이 너무 과했어요. 국회의원은 법을 만들고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과정을 그려 보고 싶었어요.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 수 없을까? 그런 열망도 들었고요. 보여 주고 싶은 게 많으니까, 자꾸 취재도 더 하게 되고 취재를 오래하니, 이야기는 많은데 무엇을 쓰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도 고민이 되더군요.
 
『국민의 소리를 들어요!』는 ‘온 국민 건강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요, 이 소재는 어떻게 잡았나요?
처음에는 영유아 예방 접종법, 이렇게 좀 작은 소재를 잡았어요. 이 법은 예산이 부족해서 실행이안 되고 있는 법이에요. 예산과 상황에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안에 대해서 책에서 다룰 수는 없었어요. 그러다 생각한 게 의료 복지에 관한 것이었어요. ‘의료’는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문제이기에 누구나 관심을 가지겠구나 싶었어요. 참여연대에 가서 ‘의료 복지’에 대해서 공부하기도 했고요. 그 공부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어렸을 때는 병원 갈 때 의료보험카드를 꼭 가져가야 했잖아요. 이제는 전산화를 통해서 그럴 필요가 없지요.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도 누군가 의료 복지를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 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런 식으로 하나씩 나아지는 의료복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지요. 조금 더 번 사람이 더 많이 사회적 책임을 지는 구조 등을 생각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야겠다는 의지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취재를 통해서 국회의원에 대해 새롭게 갖게 된 생각은 무엇인가요?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대다수의 국회의원은 나라를 걱정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구나 싶었어요. 엄마가 가계부를 쓰듯이 이들은 규모가 아주 큰 나라살림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국민의 소리를 들어요!』를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인가요?
국회의원이 이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임을 보여 주고, 그 이면에 우리가 바로 그들을 뽑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아직 정치를 소수의 사람만 한다는 의식이 있는데, 모두에게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내용 흐름 안에 다 담기 어려워서 본문 마지막에 ‘한 표의 힘이 세다’와 같은 꼭지를 구성하기도 했지요.
 
 
 
 
이혜란 작가는 『국민의 소리를 들어요!』의 책 속  장면 가운데, 국회의원 김영희 의원이 밤에 홀로 고민하는 장면에 푹 빠져서 그림을 그렸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다시금 작가의 두 책을 곱씹어 보던 가운데 위 그림을 만나자, 이번에는 ‘작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 세상을 그리고자한 작가, 단단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다음작품은 무엇일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