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임꺽정 : 이소연

제2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중고등부 우수상 수상작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를 뿌리뽑고 정의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노력을 부단히 해왔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 전에도 모순된 사회체제를 거부하면서 정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들이 바로 임꺽정 과 그의 도적 무리들이다. 소설 『임꺽정』을 통해 나는 마치 내가 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역사적 사실들을 생생하게 배우면서 우리조상들의 생활상을 매우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지혜와 통찰 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은 가장 큰 소득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나는 우리 선인들의 따뜻하고 푸근한 인정을 엿볼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는 많은 등장인물들이 도보로 여행을 했다. 유희를 목적으로 하거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 또는 도망을 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때 이들의 여행길은 하루 안에 끝마쳐지지 않고 이틀, 사흘, 많게는 한두달에 이르기까지 도 하는데, 이때마다 이러한 나그네들에게 선뜻 숙식 을 제공해 주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 당시에는 숙박시설도 발달되지 않았고 길이 매우 험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람살이나 인간의 마음은 어느 때에든지 똑같은 것이라, 낯선 사람에게 도 자기 집의 잠자리를 내어주고 둘 또는 세끼의 식사도 대접하는 인정과 이러한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갸륵한 마음이 내 마음속에 인상 깊이 남는다. 

더욱이 가난한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자신의 끼니는 굶으면서까지 손님들을 든든 하게 대접하고, 자신은 아랫방으로 내려가면서 손님들을 안방에서 자게하는 대목에서는 우리조상들의 푸근한 뚝배기 같은 인심이 느껴졌다. 또 나는 이 소설을 통해 관습의 무서운 힘을 알게 되었다. 한 여성으로서 이해하기가 상당히 힘들었 던 것 중 하나가 우리선인들의 결혼풍습이었다. 모두가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 책의 여러 결혼의 묘사에서 보면, 여성은 남성에게 철저히 지배당하면서, 가축이 제 주인에게 무기력하게 끌려가듯이 혼인을 한다. 정절을 이미 빼앗겼다 는 이유, 혹은 어른들 사이에서의 약조, 심지어는 내기를 통해서까지 남성 중심으로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히 잘못 된 것이다. 많은 여인들이 이런 식으로 남자들의 아내가 되는 것을 볼 때 마다 마음이 답답했다. 이것이 바로 관습의 힘이 아닌가 한다. 때때로 관습은 사람들에게서 비판력을 앗아가며 모순된 행동들마저도 반복해서 하게 한다. 우리는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우리들의 행동을, 그리고 사회의 운영체제를 돌아보아야할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 인식 아래 잘못된 관습은 바로 고쳐 올바른 사회체제를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난 이 소설을 통해 사회환경의 위대함을 알수 있었다. 즉 개인의 올바른 가치인식과 생활태도가 모순된 사회 체제 앞에서는 그 정당성 마저도 나타내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종 임금의 치하에 있었던 훌륭한 대신들이 사 리사욕에 눈먼 탐관오리들의 간계와 밀고 때문에 아무 죄 없이 억울하게 죽어갔다. 또 임꺽정도 처음부터 도적이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간신들이 추앙받고, 힘없는 백성들이 모순된 양반사회의 횡포를 그대로 수긍해야 하는 억울한 상 황에서 어쩔 수 없이 청석골 도적떼의 괴수가 되었다. 개인의 의로운 의식이 사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안에서 한 계에 부딪친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것을 보면서 사회를 개혁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들은 흔히 선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은 정당하기 못해도 상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에 반대한다. 목적과 수단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하여 어느 한 일이 한 상않에서는 목적이 되기도 하고 다른 상황에서는 수단도 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인데, 위와 같은 생각이 올바른 것이라고 인정한다면 우리 사회 에서는 절대적 선이 없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상황에 따라 선악의 구분이 달라지기 때문에 사회의 도덕질서는 무너 지고 만다. 그러므로 임꺽정의 '의적활동'을 의롭다고는 말 할 수 없다. 자신과 백성들의 생활도를 덜고 탐관오리와 못된 양반들을 벌 주기 위한, 좋은 목적 때문일지라도 '도적활동'이라는 수단은 결코 올바른 것일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임꺽정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당시 암울한 사회환경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보다 사회의 힘이 어마어마하게 더 크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씁쓸하게 느껴진다. 

물질문명이 더욱 중요시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확산되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조상들의 따뜻한 인정을 배워야 할 것 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개인의 힘은 사회의 영향력에 비해 매우 작을지라도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사회의 잘못된 관습과 사회제도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임꺽정처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하다. 또 우리가 바로 임꺽정이 될 의무가 있다. 우리 사회의 주인은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임꺽정이 되자고 다짐해본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다짐을 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진정한 정의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