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청춘을 향해 달리고 있다 : 최현미

2011 1318독후활동대회 글쓰기 부문 장려상
인천 세무고등학교 2학년 최현미

 

나는 시선을 하늘로 고정시키고 긴장으로 굳어 있는 내 두 손을 모았다. 동준이는 자신의 어깨에 있는 보로의 깃털을 쓰다듬고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동준이의 표정에선 태연함이 보이지만, 순간순간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동준이의 어깨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자신과 보로를 지켜보고 있을 사람들의 시선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집중하고 있다. 그런 분위기를 나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동준이도 계속 주변을 살피고 있다.

시연회는 시작되었다. 동준이가 처음으로 봉받이(매를 부려 꿩을 잡는 사람)가 되어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다.

“매 나간다!”

내 두 귀를 울릴 정도로 큰 동준이의 목소리가 사방에 퍼졌다.

‘휘이익-’

바람을 가르는 듯한 보로의 비행 모습은 겨우 매 한 마리가 날고 있을 뿐인데, 비행기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차지만 거칠지 않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강렬하고 짜릿하다. 고개가 아파 시선을 돌렸을 때, 내 눈에 띈 모습은 보로를 보고 있는 동준이의 표정이었다. 비록 보로가 지금은 꿩을 잡기 위해 비행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동준은 알고 있다. 보로는 꿩을 잡기 위해서만 비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로는 비행을 하면서, 사냥을 하는 그 순간순간 모습에서 동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동준은 보로의 메시지 하나하나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여 읽고 있는 중이다.

‘비록, 아버지가 너에게 매보다 못한 자식이라고 했지만, 그 말은 진심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동준이 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동준이는 시연회가 끝나고, 나를 불러냈다. 그러곤 한마디 덧붙인다.

“넌 알고 있지? 내가 저기에 서서 뭘 하고 있었는지?”

다소 함축적인,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 자리에서 많은 걸 깨달았어. 아버지를 미워하고 싫어했던 것이 아니었어. 단지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어. 보로를 기다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더라. 오늘 알았어. 그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동준이가 끝말을 흐렸지만, 내게 ‘아버지와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그 감정이 내게 전해진 순간, 난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내게 있어서 아버지와의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내게 있어 ‘아버지와의 사랑’이라는 감정은 나와 아버지를 연결해 주는 다리이자, 삶의 힘이 되는 원천이었다. 야자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면, 나를 기다리고 계신 분은 아버지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면에서부터 미안함, 고마움과 같은 감정들이 올라왔다. 물론 이때뿐만이 아니어도 ‘아버지는 내게 많은 사랑을 주고 계시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보로’라는 매를 통해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아들인 동준이가 다시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내 청춘, 시속 370km』는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다시 느끼게 해 줄 만큼 큰 의미가 있다. 

17살 동준이와 돈벌이도 되지 않는 매잡이를 하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아버지라는 소재의 특이성에서 매력을 느껴 이끌렸고, 단순한 매잡이의 이야기가 아닌 부자간의 이해와 사랑을 그려 냈다는 점이 나에게 흥미로움을 선사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 그들의 가정 이야기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버지는 전통 수호자로서 월 70만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이 돈마저도 매를 위해 쓰이기 바쁘다. 매가 하강할 때 최고 속도인 370km만큼 가정의 경제도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용인으로 떠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동준은 ‘스피드’에 매혹되어 있다. 지금은 비록 배달꾼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지만, 자신이 돈을 벌어 중고 오토바이를 사고 말겠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동준은 돈을 벌기 위해 겨울 방학 동안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던 매사냥꾼의 일을 배워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동준이와 보로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보로라는 이름은 옛말로 ‘치마’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보로의 이름은 원래 친구들과 얘기하다 우연찮게 본 ‘말보로’라는 담배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런 보로가 자신의 왼쪽 어깨에 앉는다. 동준은 아버지가 하던 일이 별것 아니라고 하찮게 여겼지만 막상 자신이 이런 일을 하게 되면서 짜릿함, 쾌감을 느끼게 된다.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았던 동준은 보로와 함께하면서 자신 또한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때문일까? 어머니는 남편뿐만 아니라 아들까지 매에게 빼앗겼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껴 남편에게 이혼을 하자고 한다. 하지만 동준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지 않기를, 가정이 지켜지기를 원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겨울에 매 시연회를 근사하게 끝내고, 동준은 더 성장했다. 사냥감을 찾는 보로의 눈처럼 날카롭지만 정확하게,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시연회를 통해 동준은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전통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를 존경하고, 새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훈훈한 마무리로 끝이 난 동준이와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준이 만약 응사 일을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보로의 마음도 읽고, 자신의 마음도 성장할 수 있었고, 색다른 스피드를 맛본 것이다.

매는 하강할 때 최고 속도 370km로 사냥감을 낚아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시속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의 중심은 매에 있는 것 같지만, 실제의 초점은 응사인 아버지와 동준이에게 맞춰져 있다. 아버지의 삶을 직접 보며 살아온 동준이었기에 자신은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매의 스피드를 느낀 그 순간,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물론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로서의 역할에서는 부족했지만, 응사라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로서는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바이크의 스피드만이 아닌, 보로의 비행 스피드에도 미쳐 있는 동준이었기에 아버지의 스피드를 이해하고, 이제 그 스피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나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던 것일까? 우리 아버지는 동준이네 아버지만큼 가정을 제쳐 둔 분은 아니었지만, 난 아버지를 생각하면 울컥하곤 한다. 많이 배우지 못하셔서 좋은 직장에 다니지 못하고, 해외 이삿짐을 나르는 일을 하신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이해와 사랑을 하기보다는 반항적으로 행동하고, 늦게 끝나고 고된 일을 하시느라 힘드신 걸 뻔히 알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말을 툭툭 내뱉기 일쑤였다. 그러면 항상 져 주듯 먼저 사과하는 건 내가 아닌 아버지였다. 사과를 받고 나서도 매일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듯이 아버지를 무뚝뚝하게 대하곤 했다. 내가 잘못한 걸 뻔히 알면서도 먼저 잘못했다고 한 번 말해 본 적이 없었다. 그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웠던 걸까? 
그런데 오늘 난, 동준이를 보며 새삼 깨달았다. 동준이처럼 아버지에게 “존경합니다.”라는 말로 사랑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 또한 마음속으로는 항상 담고 있던 말이었다는 것을…….

나도 동준이처럼 아버지가 하는 일을 직접 보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아버지처럼 저렇게 고된 일은 하기 싫다고 다짐하지만 지금 내 상태로서는 아버지와 비슷한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매사에 열심히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자면 한심, 그 자체이다. 하지만 오늘 동준이를 보고 알았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한 것도 아니었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떽떽거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내뱉기는 했어도, 그것이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어리광을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딸이 아버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이런 내 표현 방식을 알아차리셨는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곧이곧대로 받아 주시고, 상처받으실 법도 한데 항상 다정하게 대해 주셨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신 것이다.

 
“야! 뭘 그렇게 생각해?”

보로를 어깨에 올린 채로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건드리는 동준이었다.

“어? 아니야……. 그나저나 고맙다 송동준.”
“뭐가?”

난 대답하지 않고 동준이를 보며 그냥 웃었다. 내 웃음은 동준이와 보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다. 동준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내 곧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곤 내 어깨에 보로를 앉혀 보였다. 내 어깨에 앉은 보로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내 청춘에 도착하기 전에 아버지께 꼭 이 말을 해야겠다고…….

‘아버지,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