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햄릿과 나

 


읽는 이를 골똘해지게 하는 다정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

김선정|동화 작가, 초등학교 교사


열 살쯤 되면 마음이 곧 ‘나’라는 것을 배운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다른 내 마음, 남과 나를 구분 짓는 내 마음을 느끼고 당황한다는 것이다. 나는 슬퍼서 눈물이 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보며 놀라고, 나는 아픈데 별일 아니라는 말에 서운해지곤 한다. 나의 일이 남의 일과 같지 않음을 알면서 성장한다. 그리고 나의 일을 나처럼 알아주는 남이 있어 안심하기 도 한다. 

『햄릿과 나』는 입양아인 미유가 핏줄이 다른 이들과 가족이 되어 가는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고, 유기 동물인 햄릿의 부모가 되었다가 헤어지는 상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성장한다는 것은 곧 상처받는다는 것이다. 아픈 상처가 경험이 되어 비슷한 일을 겪는 타인을 이해하고 어리석은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될 때 사람은 비로소 성장이라는 것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처가 성장이 되기 위해서는 나보다 먼저 그 상처를 겪은 현명한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유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다. 처음 미유를 봤을 때부터 내 아기라는 걸 알아본 엄마는 미유가 울 때마다 깊이 잠들 수 있도록 안아 준다. 아빠는 말없이 햄릿을 돌봐 주고 언니는 미유와 함께 울고 웃으며 점점 닮아 간다. 미유와 가장 닮은 어른인 이모는 미유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다. 친구 혜주와 태리는 먼저 햄스터를 잃어 본 경험을 들려주고 아픈 햄릿을 보고 슬퍼해 준다. 할머니는 헤어지지 않는 만남은 세상에 없다는 담담한 진실을 깨우쳐 준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타인들이 미유 주위를 꼼꼼히 감싸고 있어서, 어쩌면 슬프고 마음 아픈 이 책을 따뜻한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다가 나는 종종 골똘해졌는데 처음 골똘하게 생각한 것이 눈물과 용감함이었다. 나는 잘 우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 같이 아프고 힘든 이 삶 속에서 소리 높여 울고 슬픔을 드러내는 사람이 불편했다. 감정을 과장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잘 우는 사람은 미유와 미유 이모인데 두 사람은 다 용감하다는 말을 좋아한다. 미유와 미유 이모는 눈물이 많아서 용감해지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용감한 사람은 사실 눈물이 많은 사람인 것일까? 미유의 언니는 눈물을 흘리면 슬픔이 몸 밖으로 빠져나온다고 한다. 앞으로 나는 작은 일에도 많이 우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슬픔을 몸 밖으로 빼내는 중이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미유 엄마나 나처럼 잘 울지 않는 사람들의 슬픔은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어디에 고여 있는 것일까?

미유는 손 위에 햄릿을 올려 두고 싶었지만 햄스터를 자꾸 만지면 아플 수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기 때문에 참는다. 햄릿과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어서였다. 난 또 골똘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서 상처를 받는 바람에 오래오래 함께할 수 없게 된 많은 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가족이 될까? 그저 한 공간에 살고 한 핏줄이라고 가족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성장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어쩌면 진부하기도 한 이 주제에 팔짱을 끼고 있다가도, 『햄릿과 나』를 읽다 보면 슬며시 마음이 녹는다. 봄날 햇볕이 드는 소파에 앉아 있는 기분도 들고, 겨울날 찻물이 끓는 주전자 옆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마 이 이야기가 진짜 가족의 이야기여서일 것이다. 보육원에 있던 미유가, 화단에 버려져 있던 햄릿이, 낯선 존재 사이에 들어와 이름을 얻고, 맛있는 걸 먹고, 아픔을 겪고, 실수를 하고, 서로를 미워하며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 가는 이야기 말이다. 혈액형이 달라도 종이 달라도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다. 만나면 헤어진다는 슬픈 사실을 알아도, 온화하고 사려 깊은 동물인 줄 알았던 햄스터가 서로 잡아먹는다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돼도 우리는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은 냉랭한 현실 앞에 서있는 어린이를 깊은 긍정의 힘으로 따뜻하게 안아 준다. “가짜 딸이 어디 있니? 너는 햄릿도 우리 가족이라고 하잖아. 햄릿이 가짜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잖아. 우리와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안 통하고, 심지어 조금밖에 같이 안 살았는데도.” (90쪽) 사랑하는 사람들은 헤어진 뒤에도 나중에 만나 모든 걸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래도 헤어지기 전에 더 많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옆에 있는 가족들과, 타인이지만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따뜻 한 사람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