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사계절 문학상 심사평

제2회 사계절 문학상 심사평

본심평
현기영(소설가), 황광수(문학평론가), 오정희(소설가)

본심에 오른 네 편의 소설들은 대체로 지난해보다 ”청소년 소설”의 본령에 한 걸음 더 다가서 있다는 게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홍선호의 <예측불허의 시절>은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인 화자가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후 새어머니와의 관계를 재정립해 가는 과정을 다루었다. 이 소설의 문장과 구성은 그런대로 깔끔한 편이지만, 화자와 주변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단선적이어서 극적인 요소가 강화된 만큼 현실성이 묽어졌고, 삶의 세목들에 대한 묘사가 뒷받침되지 않아 소설의 몸체가 턱없이 부실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러한 단점은, 순정만화 같은 유별난 주제와 스토리텔링의 안이함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안연수의 <그날이 오면>은 정치적 주제를 전면화했다는 점에서 청소년 소설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는 문체 역시 이러한 주제의식에 충실히 복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6년 4월에서 1987년 12월 사이에 이루어진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큼직한 사건들을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배치하고 화자와 그녀의 친구가 그러한 사건들의 정치적 배경에 눈떠가며 의식화되어 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따라가고 있는 작가의 시선은 지나치게 계몽적이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배경과 인물배치가 전형성에 얽매여 있는 점도 소설의 실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신지영의 <일기장에 자물쇠 채우기>는 언니의 일기장을 훔쳐보면서 쉽게 사랑에 빠지는 언니를 안타까워하는 초등학교 6학년인 화자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던 남자아이와 가까워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가고 있다. 이 작품은 소녀들의 친교관계와 심리적 추이를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듯한 기쁨을 안겨주지만, 열세 살짜리 소녀의 말로서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관념어들을 남발하는 약점을 노출하고 있다. 구성이 다소 산만하고 문장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옥수의 <푸른 사다리>는 힘없고, 돈 없고, 참혹하게 찢겨진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흘러들어 아웅다웅 살아가는, 그래서 한 발만 삐끗하면 범죄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인 동네 안으로 독자들을 깊숙이 끌어들인다. 불량소년과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파출소도 몇 차례 드나들고 소년원까지 거치게 되지만, 그 자신의 타고난 투지와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그리고 두 친구의 우정에 힘입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소재나 구성에서 통속소설이나 피카레스크로 떨어질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서초동 법원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촌"이라는 그 동네 이름만큼이나 복잡하고 역설적인 천민자본주의의 생리와 도시빈민들의 삶의 실상을 꿰뚫어보면서 사람들 사이의 내밀한 교감을 풍요롭게 그려냄으로써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청소년들의 성장배경 역시 어른들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뚜렷이 입증한 점도 이 소설의 또다른 미덕이다.
우리는 이옥수의 <푸른 사다리>를 대상으로 뽑는 데 즐겁게 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