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좌담 l 청소년문학, 청소년에게 길을 묻다


이번『1318 북리뷰』특집은 청소년 온라인 문학 사이트‘글틴’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과 함께 청소년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으로 기획했습니다. 이들이 풀어내는 거침없고 솔직한 이야기는 우리 청소년문학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_편집부 사실 여러분을 한자리에 모시는 게 힘들 거라 생각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청소년이다, 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는 형편이니까요. 흔쾌히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청소년문학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현재 청소년문학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시점에서 그 실소비층인 청소년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면에서 편집부로서는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게다가 문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글틴’ 친구들이 모인 자리여서 손에 땀을 쥐게 되네요. (웃음) 먼저 이런 자리에서 꼭 얘기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주제가 있나요?

_박서련 여기서 해도 되는 이야긴지 모르겠는데, 지윤이와 함께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는 흡연자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사실 청소년소설에서도 흡연하는 청소년이 빈번하게 등장하잖아요.

_편집부 네, 중요한 문제죠. 요즘 청소년 흡연율이 무척 높잖아요. 언젠가 아는 선생님을 만나러 중학교에 간 적이 있는데, 학교 곳곳에 금연 표어가 붙어 있었어요. 흡연하는 청소년의 수가 꽤 많다는 의미잖아요. 제겐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_허승화 흡연하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은 편이에요. 제 주변에도 좀 있고요. 그렇지만 학생이니까 흡연은 무조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물론 흡연 자체에는 반대예요. 무엇보다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특히 제가 다니는 예술고등학교에는 몸을 써야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꾸준히 실력을 쌓아야 할 시기인데, 담배 때문에 건강을 해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_편집부 여학교는 어떤가요?

_박주현 글쎄요. 남학교나 공학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긴 해요.

_편집부 중학생인 지호 군의 생각도 궁금해요. 요새는 고등학생보다 중학생의 흡연율이 더 높다고 들었어요.

_박서련 우스갯소리로 담배는 중학교 때 피우고, 고등학교 때는 몸 생각해서 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일동 웃음)

_문지호 우리 학교는 남녀 공학이에요. 한 반에서 보통 서너 명 정도는 피우는 것 같아요. 하지만 특별히 그 친구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담배를 피운다고 나쁜 아이들은 아니니까요. 재밌는 건 흡연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담배를 어떤 식으로 피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신경 쓴다는 거예요. 어떤 친구들은 일회용 라이터를 화염 방사기처럼 개조하기도 하고요.

_백지윤 가만 보면 라이터로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 그치?

_박서련 라이터 두 개를 이용해서 젓가락질해봤어? 그거 아주 난감해.

_편집부 역시 두 분은 대학생이라 그런지 대화가 상당히 하드코어한데요? (웃음) 좋아요.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아주 좋습니다. 그럼 여세를 몰아 이성 교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승화 양은 남자친구 있어요?

_허승화 아, 왜 절 콕 집어서. 제가 있어 보이나요?

_편집부 아무래도 예고를 다니니까 이성친구 사이의 감정 교류도 활발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_허승화 음,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그 친구도 글을 썼는데요, 관심사가 같으면 이야기도 더 잘 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렇지 않더라고요. (한숨) 글 쓰는 남자와 사귀는 거 생각보다 힘들어요.

_박민규 전 만나는 여자 친구가 있어요.‘ 글틴’에서 알게 된 친군데 저보다 어려요. (일동 환호) 둘 다 고등학생 때 만났는데, 제가 이번에 졸업을 했으니까 얼떨결에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된 거죠. 제 경우엔 이성 교제가 특별히 공부에 방해가 되진 않았어요. 오히려 자기 생활에 더 신경을 쓰게되고 긍정적인 측면이 많은 거 같아요.

_백지윤 그러고 보니 민규도 승화가 말한‘글 쓰는 남자’잖아! (일동 웃음)

_편집부 요즘 청소년들의 관심사는 뭔가요? 공통된 관심사도 좋고, 개인적인 것도 좋아요.

_허승화 입시를 제외한 모든 것? (웃음) 얼른 졸업하고 싶어요. 사실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어요. 낭만을 꿈꾸기엔 현실이 너무 암담하잖아요. 비싼 등록금 걱정에 취업 걱정에……. 하지만 지금 고등학생이라는이 현실이 워낙 별로니까.

_문지호 저도 승화 누나랑 비슷한데요, 얼른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고 고등학생이 되기는 싫고요. 바로 대학생으로 건너뛰었으면 좋겠어요. (일동 웃음) 아, 그리고 제가 피아노 치는 걸 무척 좋아하거든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요. 하지만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해도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름 타협한 꿈이 작사가예요. 그런 점에서 문학은 제 꿈을 위한 감수성을 기르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꼭 순문학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반대예요. 오히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책을 읽고 싶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_박민규 저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자기 관리를 못해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2학년이 되면서부터 조금씩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어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요. 이제 다시 대학에 입학하게 됐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잖아요. 고등학생 때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어요. 지금은 대학에서 새내기학교 강의를 들으며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고요.

_박서련 아, 민규다운 너무 모범생틱한 발언이야!

_박주현 저도 비슷해요. 이제 대한민국 고3이니까 대학 진학이 가장 큰 관심사죠. 그래서 수능이 끝나면 수험 공부에 전념하느라 미뤄 왔던 개인적인 바람들을 하나씩 이뤄 가고 싶어요. 거창한 것들은 아니고요. 제일 먼저, 읽고 싶었던 책을 실컷 읽고 싶어요. 특히 저는『나니아 연대기』나『찰리와 초콜릿 공장』같은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는데, 읽으면서도 너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사실 학교에서 지정해 주는 필독서 같은 것은 재미없잖아요. 하지만, 그런 것만 읽어야 했어요. 바람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너무 건전한 거 같아서……. 제가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데, 시험이 끝나면 평소 고마웠던 분들에게 손으로 직접 편지를 쓰고 싶어요. (일동 야유) 거봐, 너무 건전한 것 같다고 했잖아!

_백지윤 저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고, 글 쓰는 일을 계속하는 건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대부분 쓸데없는 걱정들이죠. 그래서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요. 올해는 가능하다면 농담만 하며 살고 싶어요. 뭐랄까, 승화도 얘기했지만 요새 대학생들에겐 낭만이고 뭐고 없어요. 정말 걱정해야 할 것들이 태산이죠. 그래서‘농담’같은 태도가 더욱 절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_편집부 이제는 학교 안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들어가 볼까요? 지난해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에서 ‘학생의 날’80돌을 맞아‘청소년이 행복해지기 위해 반드시 없어져야 할 다섯 가지 키워드’를 발표했어요. 그중 하나가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폐지’였는데, 여러분의 생각도 같은가요?

 

_박주현 우리 학교는 7시 30분부터 0교시를해요. 근데 한 친구가 그 시간에 책을 읽다가 걸려서 선생님한테 엄청 혼났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 싶었어요. 책을 읽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요. 독서 자체가 대학 진학에 필요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좀 서글프기도 했고요.

_박민규 제 경우는 아무래도 이과다 보니, 교과 특성상 문학이나 인문학과 관련된 공부를 하기 힘든 환경이었어요. 친구들 역시 문학에 관심을 갖고 직접 창작 활동까지 하는 저를 특이하다고 생각했고요. 몇몇 짓궂은 친구들은‘이과의 문학소년’이라고 불렀어요. (웃음) 그 친구들 입장에서 저는 동경의 대상이라기보다 그냥 특이한 거죠.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너무 힘든데, 어째서 책을 읽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거예요. 공부도, 또 공부하면서 책을 읽는 것도 힘들죠. 모두들 힘들지만 하잖아요. 해야 하니까, 하고 싶으니까.

_박서련 저도 0교시와 야자를 다 했는데요, 아무리 정신력으로 무장한다 해도 체력의 한계라는 게 있잖아요. 새벽같이 집을 나와서 별 보고 귀가하는 생활이 반복되면 누구라도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힘들거든요. 개별적인 학습 방법과 컨디션을 배려해 주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없는 행정이 늘 안타까웠어요. 사실은 불만이었죠.

_백지윤 맞아요. 0교시에 모두 등교해 책상 앞에 앉아 있지만 피곤을 못 이겨 자는 친구들도 많거든요. 왜, 아침밥을 먹어야 건강하고 머리 회전도 빨라진다고 엄마나 선생님이 잔소리하잖아요. 근데 정작 그럴 시간을 안줘. 우린 아침 먹을 시간에 차라리 자고 싶은 거예요.

_문지호 전 아직 중학생이라 경험해 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그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고요.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좀 걱정이 돼요.

_편집부 여러분 얘기를 듣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건 역시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면서도 여기 모인 친구들은 어쨌든 또래 친구들보다 책을 많이 접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은데요. 내 인생의 책, 또는 내 인생의 작가가 있나요?

_박주현 미하엘 엔데의『끝없는 이야기』를 참 좋아해요. 『모모』도 물론 좋고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무척 매력적이에요. 『끝없는 이야기』를 두 번째 읽으면서, 환상 세계와 현실 세계는 대립이 아닌 소통의 관계라는 메시지를 깨닫게 됐어요. 그 메시지가 모든 환상 동화의 본질적 주제가 아닐까 해요.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랄까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랄까, 이런 묵직한 주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감동의 스토리에 저도 모르게 푹 빠지게 돼요. 좀 더 나이 들어서 다시 읽어 보고 싶어요. 그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_박민규 이 책 이름을 말하면 다 웃는데……. 법정 스님의『무소유』요. 제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책이에요. 원래는 학교 필독서여서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읽은 뒤의 영향력은 무지 컸어요. 저 스스로가 많이 달라졌거든요. 그 뒤로 법정 스님의 다른 수필도 찾아 읽었는데, 역시 좋더라고요.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져 줬어요. 아, 파울로 코엘료도 좋아요. 코엘료의 작품도 종교를 떠나 인간의 영혼과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드는 거 같아요.

_편집부 민규 군의 독서 취향이 딱 나오네요. (일동 웃음)

_백지윤 저는 고등학생 때 장정일의『아담이 눈뜰 때』를 가장 인상 깊게 읽었어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죠. 『아담이 눈뜰 때』는 아주 잘 쓴 성장소설이에요. 말 그대로‘성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거든요. 요즘 작가들은 성장소설이라고 하면 케케묵은 유년의 기억을 끌어내려고만 해요. 근데 그게 정작 청소년들에겐 다가오지 않는다는 거죠. 청소년들이 원하는 건 지금 우리 이야기인데……. 그렇다고 학교 생활을 시시콜콜 들려주는 것도 별로예요. 관념적이긴 하지만, 존재의 고민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내용을 우리 눈높이에 맞게 구체화시켜 준다면 호응이 클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아담이 눈뜰 때』는 청소년소설의 전범이 될 만한 요소가 충분하죠. 청소년소설이라는 딱지가 붙은 작품들은 너무 반듯해요. 우리나라 청소년문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사계절 1318문고’도 착한 편이잖아요. 예전에『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를 읽었는데 결론이 지나치게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청소년소설이니까, 하는 틀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얌전하다고 할까요. 청소년도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접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하루키의『상실의 시대』나 가네하라 히토미의『뱀에게 피어싱』같은 작품도 좋아해요.

_문지호 누나, 무슨 피어싱이요?

_백지윤 뱀에게 피어싱. 진짜 짱이야. 이따 제목 써 줄게.

_문지호 저는 최근 읽은 작품 중에 전경린의『엄마의 집』이 기억에 남아요. 그전까진 학교에서 권해 주는 세계 명작이나 장르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아, 현대문학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설득력 있는 인물들의 심리 묘사나 감동적인 이야기 구조를 접하니 새롭고 좋더라고요.

_박서련 전 중학생 때 에드거 앨런 포를 무척 좋아했어요. 지금은『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쓴 페터 회가 좋아요. 읽는 동안 괴롭기도 했지만, 끊임없이 아름다움의 실체를 만지는 느낌이었어요. 작가와 내밀한 소통을 한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이었죠. 문학이 다른 영역의 학문과 함께 발맞추어 가야 한다면, 그 지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요.

_편집부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 하나. 청소년들은 정작 청소년소설은 잘 안 읽는다! (일동 웃음) 농담이고요. 생각보다 여러분의 독서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과 시선이 매우 날카롭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특히 지윤 양의 이야기가 와 닿네요. 우리나라 청소년소설은 지나치게 얌전하다는 얘기 말이에요. 우리나라 청소년소설이 교훈성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렇다면 좀 거창하게 들릴지모르지만,‘ 우리나라청소년문학에바란다’로얘기해볼까요?

_백지윤 뿌리 깊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청소년은 이래야한다, 라는 기성세대의 고정 관념이요.

_박주현 작가가 지나치게 청소년의 시선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지양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10대의 말투나 시각을 날것으로 써 내려간 청소년소설이 많잖아요. 아무래도 작가는 성인이니까 실제 우리들의 시각과 이질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청소년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들의 말투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우리의 언어를 어설프게 따라한 것보다는 작가 고유의 문체로 쓴 것이 더 읽기 좋아요. 황석영의『개밥바라기별』처럼요.

_허승화 가족이라는 화두? 뭐든 가족으로 마무리된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물론‘가족’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게 아니에요. 소중하죠. 성인이 아니기때문에 가족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을 필요가 있고, 또 공동체 안에서 많은 위로와 희망을 찾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요. 하지만 청소년의 생활에서 가족이 전부는 아니거든요. 아무리 다른 소재와 주제를 다루는 소설이라 해도 가족과의 갈등과 화해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것 같아요. 일종의 강박 같기도 한데요, 그것부터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_편집부 그럼 구체적으로 이런 청소년문학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도 있나요?

-허승화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면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선 독자가 청소년인 문학, 또 하나는 청소년이 직접 쓰는 문학. 청소년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건 또래 친구들이 쓴 글이에요. 성인 작가의 수준 낮은 작품을 읽고 실망한 나머지 결국 문학을 기피하게 되는 것보다는 또래 친구들의 잘 쓴 글을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_편집부『세 번째 교과서』라고,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글틴’청소년 작가들이 쓴 글을 모아서 낸 책이 있는데, 저희도 작업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이렇게 글 잘 쓰는 청소년들이 많단 말인가 하고요. 어떤 면에선 기성 작가들보다 더 유연하게 사고하고 더 넓은 시야로 글을 쓴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이야기니까 그렇겠죠?

_박서련 청소년문학이라고 하면 대개 소설이잖아요. 어른들이 어른의 시선으로 본 우리의 얘기예요. 주제는 대부분 성장인데, 어른들이 그 통과 의례를 치르는 우리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형식 자체가 다양하지 않다는 것도 좀 답답하게 느껴지고요. 소설 말고 시나 희곡 등 다양한 장르로 시도되었으면 좋겠어요.

_박민규 소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재가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블로그나 트위터, 인터넷 댓글 등을 소재로 한 작품 말예요. 요즘 청소년들의 관심사를 좀 더 면밀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자신들의 흥밋거리를 다룬 작품이라면 모두 읽고 싶어하지 않겠어요? 어떤 면에서는 농촌이나 빈민 이야기 쪽으로 너무 편향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좋은 이야기지만 공감이 잘 안 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_백지윤 민규 이야기에 덧붙이자면, 은미희 작가의『18세, 첫경험』과 무라카미 류의『69』를 비교해서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18세, 첫경험』은 사실 자극적인 제목 때문에 읽게 됐는데요. 그 작품에 비쳐진 청소년의 모습이 전혀 능동적이지 않아서 안타까웠어요. 주인공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움직일 뿐이거든요. 이것이 주인공의 한계이자 작품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69』의 경우는 조금 달라요. 주인공들이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사건에 가담하죠. 학교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는 페스티벌이라고 부르거든요. 두 작품의 차이는 사건 속에서 움직이는 주체가 과연 누구냐는 거예요. 이게 단지 한국과 일본의 정서 차이만은 아니잖아요.

_허승화 그것 역시, 아까 지적한 가족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감동은 중요한 미덕이긴 하지만 억지로 자아내는 경향이 있어요. 마치 불쌍한 아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앞으로 끌어내어 동정에 호소하려는 거 같아요.

_박주현 문학은 다른 예술 장르보다 훨씬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면‘19금’같은 부분에서 말예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문학은 너무 보수적이에요. 학생은 이래야 한다, 그러면 안 된다, 모두 어른들의 잣대로 우리를 규정하려 하니까 답답할 수밖에요.‘ 청소년이니까’안 된다는 단서가 언제나 꼬리표처럼 붙어 다녀요. 오히려‘청소년이니까’좀 더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열아홉 살이라는 경계를 넘어선 세계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호기심을 문학을 통해 해소하고 싶은 것뿐인데 말예요. 샐린저의『호밀밭의 파수꾼』은 국에서 출간되었을때 학부모들이 불매 운동까지 벌였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세월을 초월한 명작으로 평가받잖아요. 당시의 청소년이 알고 싶어하는 것, 또 알아야 할 것들을 여실히 보여 줬기 때문에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 싶어요.

_편집부 아까 이야기도 나왔지만, 『나는 누구의 아바타일까』는 사실 만들면서 많은 고민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소재 자체가 파격적이었으니까요. 특히 국내 창작물의 경우 여러분의 지적처럼 어른들의 잣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에요.

 

 _백지윤 공감해요. 사실 저는 청소년소설을 읽으면서 오히려 어른들이 바라는 모습으로 자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규제하니까 오히려 그 밖으로 튕겨 나가고 싶어지는 거죠.

_박민규 저기…… 혹시 사계절출판사에 대한 생각도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좋은 점이라든가 그런 거 말예요. 너무 우리 생각만 앞뒤 없이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_편집부 역시 모범생다운 발언을! 괜찮습니다. 여러분과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사실 좋은 소리보다는 쓴소리를 듣고 싶어서였으니까요. 책을 만드는 우리로서는 청소년소설을 읽을 여러분과 여러분이 대변할 또래 청소년들의 지적이 아주 소중합니다. 생각보다 살살 다뤄 줘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은데요.

_백지윤 아, 그런 거였나요? 그럼 좀 더 세게 나갈 수도 있었는데. (웃음) 그나저나 민규 말처럼 너무 불만만 늘어놓은 거 같아서 걱정이에요.

_편집부 아니에요, 전혀요. 오히려 그래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많이 흘렀네요.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으며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리도 같이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2010년 계획을 들어 보고 싶네요.

_문지호 아까 얘기했듯이 최대한 많은 책을 읽는다, 다양한 글쓰기를 한다! 그게 올해의 목표예요.

_박민규 대학생이 되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생활 방식이나 사고를 고수할 수는 없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변하겠죠. 하지만 전공 이외에 가장 큰 관심사가 문학이라는 점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요. 제가 이과 출신이기 때문에 인문학이나 예술적 소양을 쌓는 일에 목이 마르기도 하고요. 글쓰기 능력은 오히려 자연과학 전공자들이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올해도 게을리하고 싶지 않아요.

_백지윤 맞아! 글 잘 쓰는 과학자, 정말 매력적이지. ‘글 쓰는 남자’말고 ‘글 쓰는 과학자’하면 되겠네.

_박서련 저는 이번에 총여학생회 부학생회장으로 당선됐어요. 일단 학내에서 여성 문화를 뿌리내리는 데 힘쓰고, 넓게는 등록금 투쟁에 신경 쓰는거예요. 아, 그리고 연애! 올해는 멋진 남자친구 만나서 근사한 연애도 하고 싶어요. (웃음)

_박주현 아까 제가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잠깐 얘기했었는데요, 그게 모두 시험이 끝나고 나서라는 전제가 있어요. 어느새 고3이 되었고, 좀 두렵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거니까요. 어쨌든 수험생 생활을 훌륭하게 해치우고 싶어요.

_편집부 올해 여러분 모두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길 바라겠습니다. 긴 시간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줘서 고맙습니다.


 
진 행 · 김 태 희 (사계절출판사 아동청소년문학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