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서평 - 성장에 숨겨진 비밀 몇 가지

성장에 숨겨진 비밀 몇 가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글 | 오세란(문학평론가)

 

 

1. 더욱 깊고 넓어진 맨홀속으로
  박지리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마지막 장을 덮으 작가가 던지는 도전적 질문이 혼란스러워 다시 첫 장을 펼치게 되는 책이다. 작품이 열린 결말이 아닌 완벽하게 닫힌 세계임에도 독자가 질문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몇 번의 굴절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850페이지에 이르는 대작이지만 한 소년의 성장을 그렸다는 점에서 맨홀의 확장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60여 년간 조부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가족의 비밀스런 히스토리를 담고 있다. 영어덜트, 가족소설, 추리소설로 명명할 수 있지만 소년이 자라면서 견고하고 단단한 세계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다루고 있기에 가장 정통적인 성장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낯설고도 익숙한 시공간
  언뜻 영어덜트 장르가 떠오르는 작품 속 시공간은 1지구에서 9지구로 구획된 낯선 세계다. 아홉 지역을 지배하는 1지구 사람들은 진지하게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지만 본래 법이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지 않기에 1지구와 9지구간에는 근본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 1지구인들은 그것을 비판하기보다 지지한다. 1지구에서 만든 법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프라임스쿨 법학교사의 ‘1지구는 사과의 씨앗처럼 언제나 옳다는 자부심 가득한 발언이 이를 대변한다.
  1지구인들은 진짜 가진 자답게선량하고 지성적이다. 천박하고 탐욕적인 졸부 집단, 깡패 집단 같지 않게 품위 있고 인텔리전트 자기 집에서 부리는 가정부나 정원관리사에게도 친절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체제유지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영원한 갑()이다. 그런데 1지구의 체계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우리 사회나 국가가 유지되는 모양새와 흡사함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 속 시공간이 가리키는 지점을 정교하게 구축하여 단순한 알레고리로 빠지지 않고 현재 사회에 대한 다의적 해석과 성찰에 이르게 했다. 가령 1지구인들이 지옥이라고 알고 있는 9지구가 사실은 혼란과 악행조차도 모두 증발해 텅 비어 버린 모습”(142)이었다는 상상력은 우리 사회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다.
  작품의 첫 번째 굴절은 세계를 보는 시선이다. 1지구와 9지구 간의 불평등을 기술하고 있어 언뜻 진보적 서사로 보이지만 작품 속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살짝 굴절되어 있다. 이는 60년 전 1지구를 무너뜨리려 했던 하위 지구의 폭동에 관한 평가에서 알 수 있다. ‘12월의 혁명을 진정한 자유를 찾기 위한 해방 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권력을 잡기 위한 세력 싸움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수구와 진보라는 단순 패러다임을 벗어난다. 작품 속 혁명군들은 해방군이 아닌 권력추구자다. 1지구인인 다큐멘터리 작가 버즈 마샬의 진보성 또한 어린 시절의 열등감과 가족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서술에 이르면 작품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지점이 명확히 드러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인간과 사회를 추동하는 힘을 이성이나 사회진보론이 아닌 인간에 내재하는 무의식적 욕망에 두고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진보와 보수라는 거대담론의 프레임을 넘어선 자리에 엄연히 존재하는 선과 악이 뒤섞인 세상, 그 속에서 자라는 한 소년의 성장에 관한 미시서사다.

 

3. 아홉 인물의 변론으로 이루어진 서사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에 사는 주인공 다윈 영은 1지구인 중에서도 미래 사회의 핵심 멤버가 될 브레인을 양성하는 프라임스쿨의 프라임 보이다. 피라미드식 계급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소년으로 크리스마스 트리의 꼭대기에서 빛나는 별 같은 아이다. 다윈은 악의가 없고, 순수하며, 스마트한 소년이다. 아버지 니스 영 역시 다윈처럼 평온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중 모종의 사건을 겪으며 악의 세계에 발을 디딘 채 살게 된 훼손된 영혼이다. 다윈 영의 할아버지 러너 영은 9지구 출신이라는 비밀을 숨긴 채 1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물로 그의 이름이 암시하듯 9지구에서 출발하여 1지구까지 성공적으로 달려왔다. 다윈과 니스 영 부자는 가족의 번성을 기원하기 위해 집집마다 호두나무를 심어 호두나무 거리로 이름 붙여진 고급 주택가에서 살고 있다.
  또 다른 가족인 헌터 일가는 니스 영의 어린 시절 친구로 열여섯 살 때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된 제이 헌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 저세상 사람임에도 제이 헌터는 주인공에 버금가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조카딸 여고생 루미 헌터는 삼촌의 죽음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다. 루미 헌터는 하급 공무원 신분에 만족하는 아버지와 달리 사회적 야심이 큰 소녀로 일찍 죽은 제이 삼촌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반면 그의 아버지 조이는 형의 죽음을 겪으며 이미 권력보다는 조용히 숨죽여 사는 인생의 이로움을 간파한 인물이다. 작품에서 영원한 소년인, 제이 헌터는 가족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억압을, 세상의 악을 척결해야 한다는 삐뚤어진 강박으로 풀어내다가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비극을 자초한다.
  이 두 집안과 엮이는 세 번째 가족으로는 다윈 영의 친구인 프라임 보이 레오 마샬과 레오의 아버지이자 다큐멘터리 작가로 1지구를 비판적으로 보는 버즈 마샬이 있다. 아버지 세대인 니스 영, 제이 헌터, 버즈 마샬은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그들 사이의 우정과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버즈 마샬은 제이의 죽음에 의도치 않은 도화선을 당기게 되며, 그의 아들 레오 역시 비슷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레오는 1지구를 비판하고 의심하는 반골 성향이 강한 소년이다.
  추리소설 형식이지만 독자가 제이 헌터를 죽인 범인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살인사건의 범인 추적이라는 장치를 빌려 작가는 소년이 자신의 세계를 위협하는 사건을 만났을 때, 즉 예기치 않게 맨홀에 빠졌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아름다운 동화가 지저분한 잔혹 세계로 탈바꿈되는 길목에 선 작은 인간의 두려움과 절망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아홉 인물에 내재한 콤플렉스와 갈등을 깊이 있게 제시하면서 그들이 선 위치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는 방향을 정교하게 설계했다. 아홉 인물이 스스로를 변호하는 내레이션은 그들의 지난한 삶을 통해 구축된 것으로 인간의 처지와 내면세계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4. 아버지의 발견, 아들의 이름으로
  숨겨왔던 사건이 탄로 날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더구나 그 비밀이 어린 시절의 영웅인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라면 그를 고발하고 세상에서 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살 수 있을까? 아니면 그것을 은폐하고 평생 죄의식 속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야 할까? 범죄로 상징했지만 아버지가 선악의 복합체라는 것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마르트 로베르(Marthe Robert)가 말한 정통적 가족 로망스.
  이 작품의 두 번째 굴절 지점이자 서사의 핵심은 다윈 영의 행보다. 다윈은 먼저 아버지가 벌인 죄를 자백하고 벌을 받도록 조언해야겠다고 결정한다. 이 부분이 작품의 3분의 2 지점인 640페이지다. 만약 여기서 작품이 끝났다면 이 작품은 죄를 씻고 다시 착한 사람이 된 아버지를 돕고 여전히 아이에 머무는 다윈의 이야기, the good boy의 스토리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윈은 자신이 그런 결정에서 멈출 수 없는 상황임을 불현듯 깨닫는다. 그는 계속 달려야 한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이 버즈 마샬이 만든 프라임스쿨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다윈은 프라임스쿨을 완벽하게 재현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자신이 바로 프라임 보이, 즉 이 세계의 새로운 기원임을 인식하게 된다. 다윈의 첫 번째 결정은 어린아이가 내릴 수 있는 도덕적이지만 순진하고 낭만적인 결말이었다. 마르트 로베르는 이러한 결말을 낭만 서사로 일컫는다. 그러나 박지리의 소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다윈은 아버지의 드러난 죄 아래 숨겨진 아직 굳지 않은 생생한 괴로움을 보게 된다. 악한 범죄자일 뿐 아니라 약한 죄인이기도 한 아버지를 끌어안으며, 차갑게 벌을 묻는 검사에서 죄인을 사랑하는 변호사로 선회한다.
  그런데 작품은 여기서도 멈추지 않는다. 다윈은 아버지의 죄가 탄로 날 순간 그것을 감추고자 자신 역시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러너 영과 니스 영, 그리고 다윈 영으로 대물림되는 범죄의 반복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작고 오래된 혈연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자, 우리 사회를 바꾸지 못하는 원초적 이유다. 작고 소박한 가족 간의 사랑이 인류에게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사회에는 큰 악이 누적되는 아이러니를 어찌할 것인가?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착한 아빠가 사실은 악인이며 나아가 약한 어른이라는 복잡성을 발견한 후 아버지를 변호하고자 아이가 스스로 타락한 자가 되어 타락한 사회로 진입하는 것이 작가가 정의한 성장이다. 마르트 로베르는 낭만 서사가 아닌 현실세계로 나아가는 종류의 가족 로망스는 아버지를 부정하고 아버지를 미워하다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단계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러니 사회에서 어른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아버지의 죄를 대속한 소년들이다. 영원한 어린 아이가 없듯 진짜 어른은 없다. 어른의 옷을 걸쳐 입은 아이들이 슬프게 서 있을 뿐이다.

5. 억압된 것의 귀환
  이 작품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바로 억압된 것의 귀환이다. 서사에서 끈질기게 반복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앞선 살인사건의 목격자를 제거하기 위해 일어나는 새로운 살인사건이다. 범인은 종족 보호 본능과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목격자를 제거한다. 그러나 앞의 사건과 뒤의 사건 사이에 차이가 생성된다. 아버지 니스 영의 죄의식과 그로 인한 괴로움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부분적으로나마 기여했다면 다윈은 아버지를 변론하는 과정을 거치며 죄의식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운 차원으로 진화한다. 착한 소년에서 범죄자가 된 다윈 영, good boy에서 bad boy이자 hoody를 거쳐 big boy가 된 다윈 영이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 거리낌 없이 버리는 유효기간 지난 놀이공원 입장권은 철없어서 행복했던 순수한 어린 시절의 영혼과 양심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말로 억압된 것이 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잃어버린 편지에서 독자가 편지 내용을 영원히 읽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살인사건과 범죄라는 기표만 반복된다. 살인사건의 반복을 끊을 수 있는 진실, 즉 서사에 숨겨진 소년의 무의식적 욕망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를 부정해야 진짜 독립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 즉 부친살해 욕망이다. 소년이 아버지를 인정하는 한 그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소년은 아버지를 부정하고 자신을 선과 악의 첫 출발선에 놓을 수 없다. 아버지를 부정하는 순간 이미 자신이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알콜 중독 아버지와 결별한 버즈 마샬조차 어린 시절의 상처, 아버지의 유령이 그의 생애를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독자는 다윈이 착한 소년으로 아버지의 죄를 자백하기를 원했던 첫 번째 판단과 스스로 후디가 되어 가족의 비밀을 은폐하게 된 두 번째 사건 중 어떤 결과를 지지할 것인지 요구받는다. 그런데 이 완벽해 보이는 성장 공식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걸까? 나는 희망 없이 닫혀버린 결말이 두려워 작가가 만들지 않은 굴절 몇 가지를 상상한다. 이 작품에서 유일한 비판자이자 아웃사이더였던 소년 레오 마샬을 떠올려 본다. 1지구인이면서 1지구의 주변인이었던 레오 마샬은 다윈 영이 걸어간 성장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이었다. 레오 마샬을 다시 살려 당돌하고 씩씩하게 주류 집단에 도전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작품에 여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유일한 여성 인물 루미 헌터는 명예남성일 뿐이다. 모성은 이미 사라져버린 채 현재 사건에서 기능하지 못한다. 남성이라는 상징계의 영원한 적대자, 그래서 약한 아버지가 아닌 악한 아버지를 강조할 수 있는 여성화자라면 혹시 다른 성장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1지구가 아닌 저항성이 강한 지역을 작품 공간으로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이 작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하위 지구에 계층상승 욕구에 충실하거나 반대로 저항성을 상실한 무기력한 인간만 존재할까? 성장의 문을 닫고 들어간 다윈이 아닌, 피라미드식 성장을 해체하고 출구를 찾아 꿈꾸고 탈주하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이러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말하는 진실은 부인될 수 없다. 작가가 말하는 주인공 프라임 보이, 다윈 영은 바로 어른이 된 당신이며 나다. 프라임스쿨로, 1지구로 상징화된 사회에서 혈연관계에 소속된 우리는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뫼비우스의 띠로 묶여 있다. 우리가 부모에게 작고 좋은 것을 물려받는 동안 사회에는 크고 나쁜 것이 계승되고 이 오래된 모순은 들키자마자 은폐된다. 우리의 변호인이자 속죄양, 다윈 영을 만들고 그가 최후까지 숨 가쁘게 달려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리하여 작품을 통해 인간과 가족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극의 전 과정을 깊이 성찰한 작가 박지리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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