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버섯』 정지연 작가 인터뷰



『작은 버섯』 정지연 작가 인터뷰
“어디에선가 같은 고민을 하는 또 다른 작지만 큰 사람을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 첫 그림책의 멋진 출간을 축하드려요. 책을 처음 열어 볼 때 어떠셨어요?

감사합니다. 짝짝짝.
처음 책 상자를 받고는 기뻐서 꺅! 소리를 질렀고요. 상자를 열어서 책 실물을 보자마자 황홀해서 오오오! 소리를 질렀지요. 책을 펼쳐 보고는 악! 하고 재빨리 덮고서 한동안 책에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웠어요. 제 자신에게 냉정한 편이라 부족한 부분이 도드라지게 보였어요. 지금은 일방적으로 삐져서 말다툼한 단짝 보듯이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고 있답니다. 다시 둘도 없는 친구가 되고 싶은데 먼저 다가가기 어색하고 부끄러워요.
언제쯤 우리는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요?

- 첫 만남을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작은 버섯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저를 항상 응원해 준 지인이 있는데, 본인이 작아서 콤플렉스였다는 얘기를 듣고 이번엔 내가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신은 언제나 긍정 에너지와 바른 생각이 넘쳐서 그걸 주변에 나눠 주고, 깊고 알차게 삶을 꾸려 나가는 큰 사람이라고. 그리고 어디에선가 같은 고민을 하는 또 다른 작지만 큰 사람을 응원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의 얘기를 들으며 어린 시절 만났던, 작지만 나를 커다랗게 채워 준 버섯이 떠올랐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산에 버섯을 따러 간 적이 있었어요. 낙엽과 솔방울들 사이에서 조그맣고 둥그런 것이 빼꼼 머리를 내밀고 있더군요. 만져 봤더니 말캉하면서 단단한 느낌이었어요. 송이버섯이라고 했어요. 어린 저는 그게 무슨 버섯인지는 모르겠고 그저 흙 속에 혹이 난 것 같았어요. ‘솔방울이 떨어지면서 혹이 났나 보다, 아팠겠다.’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날 저녁, 가족이 모두 모여 버섯전골을 해 먹었는데 작은 버섯 한 점에 온몸이 숲 향으로 가득 차는 것을 느꼈어요. 작은 버섯들로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이 가득했던 순간이었죠.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버섯의 향과 따뜻한 기운이 훅 느껴집니다.
작지만 큰 에너지를 가진 버섯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서 글을 중후반부까지 단숨에 완성할 수 있었어요.

- 이 책이 말하는 ‘작지만 소중한 힘’, 응원에서 시작된 이야기군요. 이 안에 여러 의미가 녹아 있는 듯한데 그림 서사는 참 쉽고 재미있어요.

<작은 버섯>은 작지만 큰 사람인 어린이들이 가장 먼저 읽어 주길 바랐어요. 놀이 같이 가볍게 톡톡 주고받으면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리듬을 즐겼으면 해서 어린이 시점으로 그림을 꾸려 나갔어요. 이 돌고 도는 자연의 순환 이야기는 삶의 순환과 닮아 있어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작은 버섯을 만나고 서로 영향을 주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빗대죠.
첫 더미 작업을 시작할 때는 담으려던 이야기가 좀 달랐어요. 작고 큰 영향으로 자아를 일구는 동안 단단한 내면을 가진다면 어둠 속에서도 빛날 거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녹이고자 했지요. 그 단단한 내면이 마지막의 작은 불빛, 작은 벌레였어요.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씩 다르게 작업이 흘러갔어요. 작은 것의 영향력을 넘어 서로 주고받으면서 풍요로워지는 삶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림이 저를 더 넓은 세계로 끌고 간 느낌이었어요.
솔방울이 버섯을 깨운 것처럼 지인의 말에 문득 제 어릴 적 기억이 깨어났고, 버섯이 숲이 되었듯이 저는 그림책이라는 큰 숲을 완성하게 되었어요. 숲의 영광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사라져도 작은 벌레의 불빛처럼 단단한 에너지가 새겨졌으니, 제게 또 하나의 살아갈 힘이 생긴 것 같아요.

- 첫 작업 안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 첫 더미에서 책으로 가기까지는 더 많은 변화가 있었겠죠?

네, 책이 완성되기까지도 돌고 도는 과정이 있었어요.
첫째로는 에너지의 방향을 만들게 되었어요. 첫 더미에서는 책 전반에 깔린 에너지의 강약 밸런스에만 집중했는데 편집 회의를 통해 에너지의 방향에 대해 살피게 되었어요. 위아래로만 들썩였던 에너지의 방향을 옆으로 흐르게도 하고, 모였다 흩어지게도 하면서 에너지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자연스럽고 힘 있게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빠진 장면들 중 개인적으로 아쉬운 장면들도 있지만, 흐름과 완성도 측면에서 훨씬 나아졌어요.
다음으로, 사슴의 강한 이미지를 완화했어요.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사슴을 더 강하고 부리부리하게 표현했었는데 포식자 같다는 의견을 듣고 살펴보았더니 힘의 균형이 깨졌더군요. 버섯과 사슴이 크고 작지만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사슴이 모두 흡수해 버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강한 사슴의 이미지를 버리고 힘의 균형을 맞췄습니다. 
또 바꾸었다가 돌아간 부분도 있어요. 역시 편집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였는데, 책의 물성을 최대한 이용해 보는 것이었어요. 종이의 밑면을 지평선이라고 두고 이미지를 구성해 보았고, 잘 표현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지요. 그런데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어요. 보이지 않는 힘이었어요. 잘 인식되진 않았지만, 땅이 밑바닥에 깔려 버섯을 받치고 있을 땐 무언가 힘이 있었어요. 그런데 종이 밑면을 땅으로 설정하면서 노란 땅을 없애고 나니 버섯이 힘이 없고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빠져 보였죠. 이미지에서 잘 보이지 않는 힘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이었습니다.

- 버섯을 캐릭터로 잡기가 어렵진 않으셨나요?

버섯은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냈을 때 이미 빛나는 분홍 버섯이었어요. 저는 무엇을 외우거나 기억할 때 사진처럼 이미지로 떠올리는데, 그때의 버섯은 흑백의 넓은 산속에서 아주 작고 에너지가 가득 찬 모습이었지요. 책 속 버섯도 어디에 있든지 에너지를 뿜어내고 존재감이 가득하기를 바랐습니다. 색은 화려하되 생김새는 뻔한 버섯을 그렸어요. 어떤 버섯인지 종류에 상관없이 누가 봐도 호불호 없는 작은 버섯이어야 했어요. 그래야 버섯 자체보다는 버섯의 크기 변화와 에너지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또 버섯에게 지나치게 정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평범한 모습으로 그렸어요. 버섯이 뭔가 특별히 사랑스럽고 개성 있는 캐릭터였다면 사슴에게 톡 먹히는 장면에서 ‘아니, 귀여운 버섯이 죽었어!’ 하면서 실망하고 슬퍼했을지도 몰라요.
하나 더 얘기하자면, 버섯과 사슴은 유난히 독자들과 눈을 자주 맞춥니다. 그 시선으로 그들이 느끼는 기운을 나누고 즐거운 놀이에 동참할 수 있길 바랐어요.

- 작업 과정에서 그림책의 장면과 별개로 여러 컨셉아트를 보여 주셨어요.

재미있게 이것저것 마구 그려봤죠. 특히 숲이 되어 가는 장면과 완성된 숲을 많이 그렸어요. 이거다 싶은 이미지가 잘 나타나질 않아서 낙서하듯이 계속 그려 봤습니다. 프린트를 해서 거실에 내내 붙여 뒀어요. 전체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지, 숲이 내가 생각하는 숲다운지, 눈을 새롭게 해서 다시 보고 밥을 먹다가도 보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노려보고 달래보고 멍하게 보기도 하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봤던 것 같아요. 그만큼 숲이 제일 중요했어요. 100% 만족은 아니지만, 그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잘 표현된 것 같아 나름 만족합니다.

  

- 글을 읽다 보면 동시를 읽는 느낌이에요. 정말 시 같기도 하고요. 시를 좋아하시나요?

사춘기 병이 심하게 왔을 때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어요. 세상의 모든 고독과 비장함을 뿜어내던 시기가 가소로워서 글을 쓸 때 쉽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까지의 인터뷰에 어려운 말을 많이 늘어놨을까요? 더 쉬운 사람이 되어 보겠습니다! 직장인이 되어 야근에 시달리고 결혼을 하고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을 하나 현실이 크게 다가오면서 시와 멀어졌습니다. 그럴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어요. 그래도 가끔 시를 읽으면 ‘아, 참 좋다~’ 했지요.
지금은 동시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위트와 천진한 마음이 좋아요. 그런 면에서 가네코 미스즈 작가님의 시집을 특히 좋아해서 여러 사람에게 제발 읽어 보라고 사정을 하곤 했어요.

- 이 그림책을 힘껏 품으려면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이 부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아주 멋지고 원대한 훈수 계획이 있었어요. 그런데 저의 과한 오지랖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걸렸지요. 독자분 모두 제 생각보다 더 즐기고 계시더군요! 하마터면 잘난 체하는 흑역사를 만들 뻔했어요. 그냥 마음껏! 멋대로! 즐겨 주세요!
이 책은 마지막에서 두 번째 페이지가 진짜 끝맺음이에요. 마지막 페이지는 저의 이야기의 끝이자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이지요. 독자님들은 각자의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찾아보세요. 주변에서 찾으셔도 좋고요. 책 속에 예시도 있어요. 반짝이는 시작을 발견해서 숲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 작업이 막힐 때 돌파구가 있으셨나요?

후훗. 게임이요. 머리가 복잡할 때는 말끔히 비우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돌파구였지요.
어린이 여러분, 어른이어서 게임을 마음껏 하는 게 아니에요. 할 일을 다 하고 게임을 하면 당당히 할 수 있답니다!
원래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고 할랑할랑 누워 있다가 임박해서 후루룩 해 버리는데 이번만큼은 머리가 복잡하면 한번 털어내고 꿋꿋이 그렸습니다. 부담감이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낙서하듯이 버섯이랑 사슴이랑 대화도 하면서 뭐라도 그리다 보면 앞으로 나아가긴 하더라고요.
큰 벽을 만나 좌절할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기도 했어요. 위로받기도 하고, 징징대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지요.

- 요즘 작가님의 작은 버섯은 누구인가요?

가족과 친구들, 동료들은 영원한 저의 작은 버섯이에요. 
근래에 새롭게 등장한 작은 버섯은 독자님들이랍니다. 덕분에 에너지를 가득 채워서 타닥타닥 새로운 숲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나 산책길에 종종 어린이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반갑게 또는 수줍게 웃으며 인사해 주는 작은 친구들에게 그 웃음을 꼭 돌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