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인터뷰] <오누이 이야기> 이억배 작가



 
“그림책은 귀여운 독재자이며
나는 그의 충성스런 신하쯤 될 것 같다.”
-이억배


 
2020년 1월, 『오누이 이야기』출간 기념으로 이억배 작가님과 짧은 인터뷰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누이 이야기』는 작가가 1996년에 전집의 일부로 선보인 그림을 새로운 짜임과 장정에 담아 다시 펴낸 그림책입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 책의 뒷이야기뿐만 아니라 평소 궁금했던 작업 이야기를 풀어 보았습니다.
 
  
이. 억. 배. 작가님 이름은 흔치 않아요. 이름에 담긴 뜻은?
-제가 태어나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싸리 빗자루를 묶다가 혼잣말로 “억만장자가 되어라, 억배다!”라고 하셨다는... 옛이야기와 같은 유래가 있습니다. 이름 뜻풀이는 열심히 노력해서 살라는 의미이며 쓰러질지언정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억배한테 그림책은?
-서른 살이 훨씬 넘어 만난 그림책은 어느 날 바람처럼 왔다가 이제는 내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귀여운 독재자이며 나는 그의 충성스런 신하쯤 될 것 같다.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면요?
-몇 년 전 어느 날, 지방 강연 중에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에게 “선생님 이제는 그림책 안 해요? 책이 왜 안 나와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나는 순간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어린 독자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구나.’ 아이의 질문은 당시 여러 가지 이유로 작업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에게 격려와 큰 용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림책 작업은 하루 중 언제, 어디서?
-『오누이 이야기』를 작업할 무렵에는 열두 시간씩 작업한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출판사에서 두 달 이상 작업 기간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서 마감을 지켜야 했습니다.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면서... 요즘은 저녁 7시 이후에는 작업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전 출근시간보다 오후 퇴근시간이 더 즐겁습니다.
 

『오누이 이야기』의 밤 색깔, 청색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청색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검고 푸르며 환하게 빛나는 푸르름은 어린 시절 시골마당 멍석에 누워 바라보던 밤하늘의 빛깔이었습니다. 그 우주적인 풍경은 두렵고 경건하며 슬픔과 행복함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영원함에 색깔이 있다면 저런 것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나는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였으나 이루지 못하고 작은 흔적만 남겨 놓았습니다.
 
 
작가님 그림이 ‘민화를 닮았다’고들 해요.
-고마운 표현이입니다. 옛날사람들이 고단했던 자신의 삶을 이겨내고 현세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소박, 솔직, 재미있게 표현했던 민화의 세계관은 내가 배우고자 노력했던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자연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품성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는데, 나의 그림책이 구만리 인생을 살아갈 어린이들이 자신과 세계를 발견하고 긍정할 수 있는 힘을 갖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996년의 그림이 새 책에 담겼습니다. 소감!
-어렸을 때 집 나간 아이가 청년이 되어 돌아온 느낌입니다. 저작권 양도계약, 전집에 따른 매절 계약, 심지어 원화조차 작가에게 되돌려 주지 않았던 출판계의 흑역사가 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질 작품을 보석으로 환생시켜 준 편집자와 디자이너에게 감사드립니다.
 
 
작업이 안 풀릴 때 쓰는 처방은?
-작업은 늘 잘 안 풀리기 때문에 특별 처방은 없지만, 나무깎기, 장작패기, 모닥불놀이, 수영, 영화보기, 친구들과 잡담, 낙서하기 등 취미가 있습니다.
 
 
요즘 그림책들을 보면?
-질투 날 정도로 신선하고 발랄합니다. 우리 세대는 웃을 줄 몰랐는데 지금은 표정이 환합니다. 나 자신에게 더욱 분발하자고 다짐합니다, 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더미는?
-아직도 호명을 받지 못하고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수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들에게 미안한 마음입니다. 반드시 만날 그날을 약속하며...
 
 
다음 그림책 작업은요?
-요즘 작업실 가구 배치를 다시 하는 중입니다. 새로운 여행에 앞서 시스템을 점검하는 중입니다. 신선하고 발랄하고 무거움조차 재미있는 방향으로,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