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에게 열려진 가능성, 그 ‘마음의 힘’을 믿으며 : 이민수

제2회 청소년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대상
이민수

 
 
김은 언니에게
언니,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저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을 하다가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어제가 마침 백중이었다네요. 흐르는 구름 사이로 높이 뜬 저 보름달이 저를 깨웠는지, 아니면 읽고 싶다고 사 놓고는 책상 위에 쌓아 두기만 한 책들이 저를 깨웠는지, 자다가 아이들의 뒤척임에 문득 잠이 깨어 언니에게 편지를 씁니다. 며칠 전 우리가 나눈 이야기, 『열여섯의 섬』에 대해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지요.

언니는 서이의 상황을 저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서이처럼 섬마을은 아니지만, 언니도 어린 시절을 전라도 깊은 산골에서 보냈기에, 또 학교에 다녀오면 공부보다는 부모님이 하시는 농사일을 도와야 했고, 중풍이 드셨지만 꼬장꼬장한 성격만은 그대로이셨던 팔순 할머니의 수발이 언니의 몫이었다고 하니 언니는 정말 서이의 심정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언니에 비하면 변두리이긴 해도 서울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으며 ‘공부만 잘 하면 된다’는 암묵적인 특혜(?)를 받고 자란 제가 서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저 피상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그렇게 서이와 비슷한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인지, 언니는 외딴 섬에서 힘겹게 사는 열여섯의 아이에게 외지에서 온 여자가 바이올린 하나 던져 주고 가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작가의 문제 해결 방식을 못마땅해하셨지죠. 서이는 생전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던 아이인데, 그런 서이에게 당장 바이올린이 생겼다고 해서 갑자기 그 섬에서 바이올린 레슨을 받을 수가 있겠느냐고, 혹시라도 천부적인 음감이 있다 한들 서이 형편에 음대를 진학할 만한 여건이 되겠느냐고, 몹시 안타까운 목소리로 제게 말하는 언니를 보고 있자니 정말 서이가 언니의 조카, 아니 언니의 딸처럼 가깝게 느껴졌답니다.

그런데, 전 솔직히 서이 같은 상황에 놓여 보지 않아서 언니 같은 답답함이 올라오지 않았나 몰라도 서이가 바이올린을 손에 들고, 섬을 떠나는 ‘아줌마’를 배웅하는 마지막이 참 따뜻하고 든든하게 가슴에 와 닿았답니다. 그래요, 언니 말대로 서이에게는 사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을지 몰라요. 아빠가 서이의 반항(?)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사실 아빠가 많이 변하셔서 앞으로 조금은 다정한 눈빛으로 서이를 봐 주신다고 해도 여전히 서이에게 아빠는 짐이 될 테지요.(혹시라도 아빠가 재혼을 해서 아주 좋은 새엄마가 들어오셔서 살림을 도맡아 주신다면야 모를까.) 더구나 그 동안 서이가 가장 마음을 많이 기대었던 큰이모가 돌아가셨으니 앞으로 섬은 서이에게 더욱 외롭고 가슴아픈 곳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요. 물론 이배가 옆에서 그 전보다 더 서이에게 잘해 주고 둘이 깊은 우정을 나눈다고 해도, 사실 이배가 현실적으로 해 줄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서이에게 자기가 잡은 생선 몇 마리 가져다 주는 정도겠네요.

하지만 언니, 눈여겨보세요. 이렇게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서이의 ‘상황’이랍니다. 어쩌면 서이를 둘러싼 외적인 상황은 사실 처음부터 서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러고 보니 애당초 작가는 열여섯 아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상황들을 설정해 놓고, 말도 안 되는 결말을 내었다고 언니는 제게 화를 내셨던 것이네요.

하지만 언니 전 분명 제가 지금 열여섯은 아니지만, 거의 20년이란 세월을 서이보다 더 멀리 왔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읽는 내내 서이의 상화 속으로 쉽게 빠져들었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며 남들이 볼 때 아무 문제 없는 지극히 평범한 주부의 생활을 하고 있는 저도 문득 ‘내가 외롭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요. 서이처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갇혀 있다는 느낌말이에요. 남편은 육아를 돕기는 하지만 절대 시간이 부족한 너무나 바쁜 사람이고, 친정 부모는 저를 늘 안쓰럽게 생각하시지만 거리도 떨어져 있거니와 이건 누가 봐도 성인이 된 저의 몫이고 제 생활인데 누구에게 무슨 하소연을 할 수가 있겠어요? 현실은 답답하고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들은 나를 옥죄는 것만 같고……. 그러다가 서이를 만났어요. 서이를 만나서 나도 서이처럼 즐거운 상상을 해 보고, 서이가 바이올린 선율에 취하듯 나도 내가 좋아하는 해금 연주를 듣고, 서툴지만 어릴 때 배웠던 피아노도 쳐 보고, 아이들이 자는 틈에 소설책도 읽어보고……. 그러면서 이렇게 뭔가 내 안의 음악에 대한, 문학에 대한 감성이 일깨워지고 삶에 활기가 느껴지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지요. 그래서 친구를 만나고, 서이처럼 중학교 시절 제게 저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분(학교 은사님)도 만나고, 실컷 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나니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느 새 제 마음 구석구석 쌓였던 먼지가 깨끗이 청소된 느낌이 들었답니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세끼 반찬을 고민하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몸은 피곤하지만,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 상황을 떠나고 싶다는 간절함이나 그 누구와도 단절된 것 같은 외로움은 덜해지더군요.

언니, 서이도 그랬을 거예요.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잖아요. 또 섬밖에 모르고 살아온 서이에게 육지의 먼 곳, 지구 곳곳의 다양한 여행담을 들려주는 ‘아줌마’는 동경의 대상이자 세상을 향한 출구가 되었을 거예요. 물론 서이와 아줌마는 사랑하는 사람(아니 엄밀히 말하면 자기를 사랑해 주었던 사람)을 잃어버린 아픔을 공유하였기에 만남, 사랑, 이별, 죽음 등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길 수 있었겠지요. 비록 아줌마는 떠나지만 둘을 만나게 해 주었던 바이올린을 서이에게 선물로 주는 아줌마의 손길이 참으로 크고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와 마음으로 나누었다는 것, 진정한 사랑과 신뢰를 받았다는 경험은 그 사람의 뿌리를 든든하게 만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서이가 발 딛고 선 척박한 땅은 비록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땅에 뿌리내린 서이의 마음만큼은 이전보다 더 굵고 깊어졌을 것입니다. 물론 바이올린을 볼 때마다 서이는 아줌마와 함께 지구 다른 한 편, 섬을 떠난 먼 곳으로 향하는 상상 속 여행을 하겠지요. 그곳에서 저마다의 아픔이 있고 힘겨운 짐이 있지만 그것에 짓눌리지 않고 의연하게,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할 것입니다. 나아가 서이는 자신이 선 외롭고 팍팍한 황무지를, 열여섯 나아만큼 싱그러운 꿈이 피어날 수 있는 옥토로 가꾸어 나갈 힘을 키울 것입니다.

부둣가에서 아줌마가 타고 있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고 선 서이의 눈빛이 어른거립니다. 햇빛을 받은 물결처럼 반짝이는 서이의 눈빛에서 저는 그 힘을 느낍니다. 단지 ‘소설을 소설처럼’만 읽었기에 그 힘을 믿는다면, 언니가 철없는 저를 이해해 주세요. 안녕.
 
2004. 9. 1 서이를 만나, 현실을 새로 보는 마음의 힘을 배우게 된 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