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구원의 미술관_강상중 미술 에세이②








존재의 의미를 잃고 타지에서 방황하던 청년 유학생 강상중은
우연히 방문한 미술관에서 한장의 그림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창세기의 하느님처럼
너는 어디에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진 그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강상중 미술 에세이 구원의 미술관
그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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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
 
한 인물, 하나의 사건, 한 권의 책 그리고 한 장의 그림이 인생에 헤아릴 수 없이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그러한 예를 하나 들라고 한다면 제 경우에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입니다. 그것은 어떤 조짐도 없이 돌연 제 눈앞에 나타나 저를 큰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어느 날 무거운 눈구름 사이로 엷은 햇살이 비치던 뮌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장소는 독일 굴지의 국립미술관 알테 피나코테크의 한 전시실.
 
알테 피나코테크는 바이에른의 루드비히 1세가 역대 군주의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미의 전당입니다. 바깥의 쌀쌀한 공기가 웅장하고 화려한 사원 같은 건물의 어두운 장내까지 흘러들어 관람객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세에서 근세로 접어드는 시기의 작품을 모아둔 방으로 가려다가 구석에 걸린 그림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초상화였지만, 제게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남자가 저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작품은 가로세로 고작 50~7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로, 커다란 작품들이 북적대는 곳이었다면 못 보고 지나칠 법한 작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독특한 아우라를 가진 그림으로, 어슴푸레하지만 실로 매혹적인 빛을 주위로 떨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때까지의 제 자신, 일본 그리고 ‘자이니치’로부터 도망치듯 독일로 건너가 아무런 속박도 없는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유학이라고는 해도 어떤 전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일본에 돌아온다고 해도 제게 약속된 것은 무엇 하나 없었기에 그것은 짧은 기간의 ‘망명 생활’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편한 마음이기는 했지만, 불안했고 동시에 우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었기에 미술 작품을 즐길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같은 기숙사에 살던 친구의 권유에 마지못해 이 ‘미의 전당’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제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이 ‘한 장의 그림’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뒤러가 1500년에 그린 <자화상>입니다. 뒤러는 당시 28세. 저와 비슷한 연배였습니다. 500년 전을 살던 그림 속의 남자는 제게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묻는 듯 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그때까지의 미망에서 빠져나와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언으로서의 자화상
 
털 달린 갈색 가운 같은 것을 몸에 두른 그가, 마치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름답게 물결치는 긴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채 형언할 수 없이 투명한 눈동자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자세히 보면 살짝 아래쪽으로 향한 오른쪽 눈에서는 슬픔에 젖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화가로서의 결연한 매니페스토임에 틀림없는 자화상이, 걱정스러운 얼굴에 자애로운 눈빛을 하고 있다는 점에 저는 강하게 끌렸습니다.
 
나와 엇비슷한 나이의 사람이 유언처럼 그린 자화상. 거기에는 그의 멋진 모습과 강렬한 자아, 슬픔과 기쁨 그리고 속세적인 것에서 성스러운 것까지 모조리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조숙하며 또 얼마나 인생의 심연까지 꿰뚫어 보는 듯한 근심어린 시선인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결연히 선 긍지 같은 것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참담한 시대의 결의
 
뒤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청신한 예술을 보다 형이상학적인 경지로 끌어올린 북방 르네상스의 거장입니다. 뉘른베르크의 금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화가를 목표로 했습니다. 깊은 신앙심과 향학열에 불타던 그는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에 처하면서도 기량을 갈고닦은 결과, 15세기 말 고향 뉘른베르크로 돌아와 드디어 판화 마이스터로서 공방을 꾸릴 수 있게 됩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비롯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16세기 초엽, 유럽은 장미빛 찬란한 자유로운 르네상스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전란과 기아, 역병과 살육이 퍼져나간 참담한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인 시대였던 것입니다.
뒤러는 어머니의 초상화 밑그림도 남겼는데, 어머니가 낳은 열여덟 명의 형제 가운데 셋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도 삶과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토록 혹독한 시대에 운 좋게 살아남은 뒤러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경험 끝에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평생을 신에게 바친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해도 신기할 것이 없습니다.
결단을 내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을 때 뒤러의 가슴속에 어슴푸레 희망이 깃든 것은 아닐까요.
 
뒤러의 <자화상>을 만나고 나서야 제 마음속에 있던 그 어슴푸레한 빛으로부터 어떤 희망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 삶의 전환기에 이렇게 뒤러와 마주한 일은 제게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3회에서 계속)
  • 작가
  • 강상중
  • 출판
  • 사계절
  • 발매
  • 201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