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빼앗는 어른들, 자유를 찾는 아이들 : 김선정

제6회 어린이 독서감상문 대회 일반부 우수상
김선정

 
 
방학 중 근무가 있어 학교에 왔더니 마침 6학년 예비 소집일이라 학교가 떠들썩하다. 이제 6년간의 초등학교 생활을 마치고 중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의 소리다.

얼마 전 신문기사를 보았더니 이렇게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에게는 겨울방학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중학교 교과공부를 선행학습하느라 방학을 모조리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방학 내내 공부에 시달리다가 잠시 짬이 나면 부모가 마련해 놓은 질 좋은(?) 체험학습과 캠프에 참여하느라 더 힘들다는 내용도 곁들여 있었다.

『자이, 자유를 찾은 아이』를 읽고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을 본 후 많은 부모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하며 이 책을 권할까. 십중팔구는 이럴 것 같다.

“○○야, 세상에는 이렇게 사는 아이들도 있대. 너는 좋은 나라에 태어나 좋은 부모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니. 그러니 아무 불만 말고 열심히 공부해라.”

자이는 고향 마을에서 팔려오기 전에 어린 마법사라는 별명이 붙은 아이였다. 그리고 날 수 있는 양탄자를 짤 정도로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이런 자이도 열다섯 시간의 막노동과 학대 속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는 공장에 있는 동안 늘 뒷모습과 겁먹은 눈동자만 퀭하다. 딱 한 번 자신의 꿈인 양탄자를 가지고 사람에게 희망을 걸어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배신과 더한 구박뿐이었다. 그 후 아름다운 양탄자 대신 차가운 못 한 개로 발을 옥죄고 있는 쇠사슬을 푸고 탈출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자이가 얻은 삶은 길거리에서 구두도 닦고 짐도 나르고 온갖 험한 일을 하며 혼자 사는 삶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딱 하나, 공장에서는 얻을 수 없는 자유가 있다. 바로 피리를 부는 것이다. 사실 공장에서의 삶과 거리에서의 삶이 다른 점은 피리를 부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홀로 피리를 불 수 있는 자유로 인해 자이의 삶은 그 전과는 달리 ‘희망’이 넘치게 되었다.

난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교를 향해 조금은 겁먹은 모습으로 또 조금은 으쓱해하며 떠나는 우리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양탄자를 짜는 자이의 뒷모습을 함께 본다. 많은 아이들은 ‘어린 마법사’ 같은 아름다운 별명들을 똑같은 머리 스타일과 교복 속에 함께 묻어 버리고 수행평가 점수와 내신등급에 일희일비하는 삭막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그들 중에는 자이처럼 밤하늘을 나는 특별한 양탄자를 짤 수 있는 재주를 갖고 있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결국 그 재주가 자신을 구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슬픈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피리를 불 수 있을 만큼 숨통이 트이는 자유를 갖기 위해서는 못 한 자루로 쇠사슬을 자를 만큼 오랜 세월을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서 절망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은 이 책에 나오는 ‘자이’나 파키스탄의 소년 ‘이크발’의 얘기들을 들려주며 그런 ‘너희들’이 얼마나 호강스럽고 행복한지에 대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고 끊임없이 얘기할지 모른다.

언젠가 책에서 이런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린이에게 자신이 누린 자유에 대해 책임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가 누린 자유에 대한 책임은 완벽하게 어른이 져야 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이런 뜻의 말이었던 것 같다.

『자이, 자유를 찾은 아이』는 어른들이 빼앗아 버린 자유를 온 힘을 다해 자신이 찾았고 자신이 찾은 자유를 책임지기 위해 길거리에서 온갖 노동을 하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은 언젠가 자유로울 그날을 위해 열심히 ‘미래’를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곳에서도 저 곳에서도 어른들은 자유를 빼앗기만 할 뿐 아무도 아이들의 자유를 위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언제쯤 아이들은 홀로 피리를 불면서도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살게 될까. 오늘도 거리에서 힘든 하루를 버티고 있을 자이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