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아』 6인 6색 작가 인터뷰


제8·9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 작품집
『사라지지 않아』 6인 6색 작가 인터뷰


“제가 만든 행성에서 파도가 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아요”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 작품집은 지금 과학소설가들이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보여 주는 척도입니다. 『사라지지 않아』 참여 작가들은 삭제를 앞둔 게임 속이나 불행 측정이 가능한 시대, 누구도 죽지 않는 시대의 저승 차사 앞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그 낯설고 흥미로운 세계에 막 진입할 독자를 위해, 참여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사라지지 않아』 채은랑
「사라지지 않아」 속 ‘행성 꾸미기’ 게임의 플레이어라면, 작가님의 행성에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요?

커다란 바다부터 하나 만들고 시작할래요. 지구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바다거든요. 바다를 보러 늘 먼 곳으로 떠나곤 하는데, 제 행성에 바다가 생긴다면 언제든 볼 수 있으니까요. 제가 만든 행성에서 파도가 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 해질 것 같아요.


『하얀 파도』 채은랑
「하얀 파도」 속 세계의 관리자들처럼 작가님에게도 이 세계의 무언가를 삭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무엇을 삭제할 건가요?

이거 정말 어렵네요. 저는 ‘상처’를 삭제하고 싶어요.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보이지 않는 칼날이 사라지면 조금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복도에서 기다릴 테니까」 연여름
「복도에서 기다릴 테니까」 속 가상현실 학교 ‘소나’에 다니는 중학생이었다면, 무엇 이 가장 즐겁고 무엇이 가장 어려웠을까요?

소나 시스템에서는 겉모습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가장 편하고 좋을 것 같아요. 무엇을 어떻게 입을지, 머리를 어떻게 할지 등등 생각하고 실행하는 데도 제법 품이 들잖아요. 그런데 로그인만 제때 한다면 세수 안 하고 머리가 뻗친 채로도…. 당당하게 등교 할 수 있다는 점은 단연 최고 아닐까요. 가장 어려운 점은 그래도 ‘어딘가를 오가는 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등굣길 하굣길이 없다는 거요. 저는 학교 가는 길,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음악을 들으며 걷거나, 친구와 수다 떨기를 좋아해서 지름길을 놔두고 일부러 먼 길로 돌아가기도 했거든요. 그런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점은 소나 시스템의 치명적인 약점 같아요.


「나의 메신저 버씨」 김두경
「나의 메신저 버씨」에서 가장 좋아하는 문장과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버씨는 귀를 기울이지만.”
누구나 남의 말을 듣기보다 자기 말을 하고픈 욕구가 앞서기 마련이죠. 그런 내 말에, 그 것도 언제든 무슨 말에든 귀 기울이는 이가 있다면 어떨까요? 이 순간 주인공 이레는 알 고 있었을 거예요. 버씨와 이미 친구가 되었다는 것을요. 나는 과연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친구인지 한번 되짚어 보면 좋겠습니다.


「우르수스 행성 대족장 취임 46주년 기념 선물에 대하여」 존 프럼
멜빵바지를 입은 콧수염 배관공 아저씨가 등장하는 게임을 모티프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콧수염 배관공이 활약하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야말로, 안전한 실패를 연습케 하는 비디오 게임의 긍정적 효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게임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를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개발자는 밥상 뒤집기를 하며 게임을 만든다고 하는데, 무수한 시행착오와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며 제작에 임했기에,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절대 불행 소녀」 이새벽
불행을 선택하는 대신 미래를 보장해 주는 불행특기자 전형이 있습니다. 선택하시겠습니까?

불행특기자 제도의 가장 어려운 점은 남의 불행을 짊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차라리 쉬운 일이죠. 정말로 어려운 점은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증명하고 남들에게 내보이며 평 가받아야 함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로 불행특기자가 되고 말고는 선 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거예요. 살 수 있는 길이 하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길을 걷는 것을 선택이라고 말해선 안 될 테니까요.


「마지막 차사와 혼」 나현
만약 작가님이 작품 속 휴머노이드라면,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로 소멸하는 것과 모든 기억을 포맷하더라도 존재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할 건가요?

둘 다 의미가 있을 거예요. 방식과 의미는 다를지라도 계속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한 가지 고른다면 (미래의 저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고 싶어요. 지금과 전혀 다른 존재이자, 그들을 사랑한 적 없는 ‘나’여도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니 분명 제가 다시 사랑하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