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 김가화

제2회 청소년 독후감상문 대회 청소년부 우수상
김가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아무 근심 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하늘하늘 춤을 추면서도 제발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강한 저항을 보이기도 한다. 엉뚱한 발상일지 몰라도 나는 청소년이 이런 갈대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위태위태해 보이지만 뿌리는 강하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뿌리만은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우리들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다시 생각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들이지만, 나는 그 일들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그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던 나쁘던 그것들은 나만의 기억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글로 깨작거리기도 아직은 많이 힘이 들지만, 나는 이미 나의 것이 되어버린 것들을 사랑하려고 한다.

아름다운 꽃마을에 사는 윤제, 초라한 집이 부끄러워 수업을 빼먹은 행동이 가출로 이어지고 결국 비행 청소년으로 낙인찍혀 버리는 일들. 그리고 특별한 이유 없이 막다른 길로만 가고 있었던 내가 생각난다. 자꾸 깊어만 가는 윤제를 보며 당장이라도 소설 속에 뛰어 들어 말리고 싶었다. 그리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 세상이 글 만만하지는 않다고……. 한번 잘 못된 길로 들어 버리면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고……. 돌아올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게 어른들이라고…….

힘들어하면서도 혼자서 끙끙 앓다가 결국 말하지 못하는 윤제. 도와 달라는 한마디면 되는데…… 그게 왜 그리 힘든 걸까? 엄마는 걱정을 할까 봐, 아빠는 다그치기만 할까 봐, 영진이 형은 자신에게 실망할까 봐서. 끝내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 갔다가 또 한 건의 사고가 터지고 만다. 윤제는 한참 후에서야 자신이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잘못되었고 어리석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섬뜩할 정도였다.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 이상은 안될 것 같아 친구들에게 절교를 선언하고 혼자가 되었던 나는 그야말로 눈물로 하루 하루를 보냈다. 밤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삼켜야 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때는 혹시라도 누군가가 들을까 봐 이불을 뒤집어 써야 했다. 진작부터 걱정을 너무 많이 끼쳐 더이상은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기 싫었다. 그리고 항상 공부 잘하고 착한 딸인 줄만 알았던 아빠, 날 너무 믿고 있는 오빠, 난 아무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 실망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날 어떻게 생각할지도. 지금에 와서는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웃음이 난다. 도대체 무엇이 그리 무서웠고 무엇이 그리 슬펐던 걸까? 어찌되었건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면 지나간 일들은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웃음을 전해준다. 어느 유행가 노래 가사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 아직 남아 있는 상처들과 어설픈 기억의 조각들도.

영진이 형의 그 말,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의 전부야.” 아직도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듯하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윤제가 공부를 하는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쳤을 때, 나를 그 수렁에서 헤어날 수 있게 하는 ‘무언가’. 그것이 있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에게는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그러하기에는 나는 친구들에게 공부를 해야 해서 더 이상 놀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특한 행동이었고, 씩씩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물론 그 후로 정말 많은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친구들이 괴롭힐 때도 싸움을 걸어 올 때도 나는 참아야 했다. 그것은 참을 만했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던 것은 열심히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공부였다. 학교 진도는 내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저 멀리에 있었고 내가 놀고 있는 동안 실력을 꾸준히 쌓아간 친구들, 자신 있게 공부를 한다고 그곳에서 빠져 나왔지만 정작 나는 이도 저도 이니었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공부라도 잘하자. 그래서 본때를 보여 주자. 그 후로 1년 가량 뒤 처진 공부를 위해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았으니 더 오기가 생겼던 것 같다. 조금씩이나마 올라가는 성적에 기뻤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성적을 유지할 수는 없지만 꾸준히 올라고 있다. 이번 올림픽(마라톤)을 보면서 느꼈다. 오기가 있으면, 앞의 사람이 한 걸음 디딜 때 나는 두 걸음을 딛는다면 충분히 다시 그 그룹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면서 용기를 냈다. 나도 꾸준히 노력을 한다면 언젠가 다시 예전처럼 할 수 있으리라.

눈물이 핑 돌았다. 윤제가 무슨 잘못을 하든 아들을 믿고 헌신적인 사랑을 하는 엄마, 작년 여름이 생각났다. 친구들의 괴롭힘을 못 이겨 집에 돌아와서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거의 악을 썼대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동안의 서러움과 기억들이 공존하며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죽고 싶다고, 전학을 보내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이렇게 글로 쓰기도 부끄러워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던 나다. 평생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엄마, 아빠의 가슴에는 딸의 이 힘들 때 선생님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의 말을 믿어 주었고 나의 편에 서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했다. 나보다 더 많이 아파하며 눈물을 흘려 주었던 사람이다. 엄마는 내게 있어 그런 존재이다. 항상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오고 목부터 메어오게 만드는 사람이다. 지금 수술 후 병원에 누워 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일 엄마를 찾아가면 차가운 손을 잡고 말해야겠다. 그 동안 쑥스러워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말. 

“사랑해요. 엄마.”

엄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났고 나의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이 났고 지금 나의 모습이 그러져 눈물이 났다. 이 책은 나에게 눈물을 주고 갔다. 눈이 부어 올라 학교에서 친구들이 괴물같다고 놀려댔지만, 그래도 기뻤다. 엄마에게 이제는 착한 딸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나의 기억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고, 지금 나의 모습 또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책을 읽는 내내 윤제 속에서 나를 찾느라 바빴다. 그래서 힘없고 돈 없고 참혹하게 찢겨진 사람들에게는 눈길을 줄 수가 없었다. 그 점이 글을 쓰는 내내 아쉬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읽어 보려고 한다. 이제는 그 속에서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 그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앞선다. 

“나의 행복을 찾았으니 그들의 행복도 지켜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