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 새로운 길을 연 역사 일기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이 말은 학창시절에 우리나라 역사를 배울 때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다. 이백여 년에 불과하다는 미국의 역사를 견주어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앞에 괜히 우쭐했던 기억이 있다.
그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말이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였다. ‘우리 가족’ 앞에는 반드시 ‘행복한’ 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고 ‘우리 학교’ 앞에는 반드시 ‘즐거운’ 이라는 말이 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앞에는 반드시 ‘자랑스러운’ 을 넣어야 했고, 실제로 현재 초등학교 교과서 단원 이름으로‘자랑스런 우리나라’가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언제나 자랑스럽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오천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자랑스럽기는커녕점점싫어지고,‘ 역사’라는말만들어도진저리를치게된다. 왜일까? 모두 잘못된 역사교육 때문이다. 그동안 역사를 공부할 때 가장 많이 해야 했던 것은 역사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보다 사건의 사건에 얽힌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었다. 역사가 오천 년이나 되니 외울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역사가 긴 것이 자랑스럽기는커녕‘저주스럽기’까지 하면서 아무래도 역사가 짧아 외울 것이 적은 미국을 부러워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볼 때 역사 시험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다음을 시대순으로 맞게 늘어놓은 것은?’이거나‘( )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이었다. 역사 관련 시험에서 역사적 사건의 경과와 의미는 잘 알지 못해도 용어와 사람 이름, 지명, 연도를 많이 외우고 있으면 점수를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달달 외운 것들은 시험이 끝나고 나면 허무하게 잊혀지게 마련이었다. 주변 어른들을 보면 역사 교육에 대해 이런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참 많다.
 
그동안 수없이 쏟아져 나온 어린이 역사책도 아무리 형식이 다양해졌다고는 하나 어른들 관점에서 쓴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도 역사는 늘 멀고도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아이들이 원래 역사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역사를 전해 주는 방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역사를 싫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반성으로 최근 아이들이 역사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많이 일고 있다.
 
 
『큰 그림으로 보는 우리 역사』는 20만 년 전부터 1987년까지 이 땅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역사를 22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먼저 시원하게 펼쳐지는 큰 그림이 멀고 어렵게 느껴지던 옛날의 역사적 장면을 내 눈앞에 펼쳐지게 한다. 22장의 그림을 보
면 먼저 장면 구석구석을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부감법(하늘 위에서 내려다보게 그리는 법) 표현이 정선의‘금강전도’나 김홍도의‘능행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이 역사적 장면 속에 들어가 그림 속에 있는 사
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동시대적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역사를 현재로 끌어내어, 아이들이 역사적 사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이 책이 보여 주고 있는 역사, 접근 방식은 그동안의 책들과 다른 새로운 시도로 칭찬할 만하다. 한 장의 그림 속에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담겨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숨은 그림 찾기 같은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20만 년 동안의 긴 역사를 단지 22장면으로 나타낸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이 책이 어린이 역사교육 방법의 또 다른 시도로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역사교육에 이바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역사를 가깝게 느끼고 바르게 이해해서, 유구한 역사적 존재인 자신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오늘의 어려움을 바르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이부영│서울 고덕초등학교 교사. 29년째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으며, 어른들이 정답이라고 확신하고 가르치는 것이 과연 아이들에게도 맞는 정답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초등교육 내용과 초등교육정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바른길을 가는 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 가장 친한 친구는 흙, 돌, 나무, 풀, 벌레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