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l 슬픔을 극복하고 이제 씩씩하게 살아가길

『맹자』에‘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는 말이 있다. 이에 따르면 늙어서 부인 없는 사람을‘환(鰥)’이요, 늙어서 남편 없는 사람을‘과(寡)’라 하며, 어려서 부모 없는 사람을 ‘고(孤)’라 하고,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을‘독(獨)’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최우선으로 돌보아야 할 사람이란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라서 그런지 유독‘고(孤)’에 눈길이 간다. 조금만 도와주면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는 어른에 비해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도움까지필요로 하는 어린이에게 부모는 단순히‘돌봐 주는 사람’ 그 이상이다. 그런 어른이 없는‘고’는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 책의 아이 아빠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났다. 책을 펼치자마자 나타난, 빨간 바탕에 단색으로 그려진 자동차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다음 장으로 넘어 가면 몸에 여러 가지 줄을 붙이고 누워 있는 사람을 만난다. 바로 주인공의 아빠다. 밖에서 엄마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 커다란 수술을 받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끝내 아빠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고 남은 두 식구는 새로운 삶과 마주해야만 한다.

이제 아빠를 대신해서 일을 하는 엄마가 아침 일찍 나가고 혼자 덩그마니 앉아서 밥을 먹는 주인공에게 식탁은 너무 크다. 목욕을 할 때도, 그네를 탈 때도 아빠가 생각난다. 커다란 공간에 색이라고는 바탕색만 칠해져 있고 단색으로 아주 작게 그려져 있는 아이 모습은 쓸쓸하고 우울해 보인다. 아빠가 없는 생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처럼 슬픔에 빠져 지낼 수는 없다.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고마운 선물이 망각이라고 했던가. 엄마와 주인공 아이는 서서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는 꿈을 꾸다 오줌까지 싸지만 엄마는 오히려 괜찮다고 말해 준다. 그동안 각자의 슬픔에 허우적대느라 상대방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던 둘은 이제 씩씩하게 살자고 서로를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이후부터는 이들의 공간에 조금씩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고 설거지도 할 뿐만 아니라 엄마가 마신 커피 잔도 치울 줄 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바로 그림에 색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주인공 꼬마의 옷도 이제서야 색을 되찾았고 공간도 색을 찾았다. 이제 아빠를 잊기 위해 억지로 애쓰지 않고 아빠를 그리워할 줄 도 안다. 씩씩해지기로 했으니까.
 

 
처음에는 단순하고 바탕색과 구별되지 않는,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림이었으나 꿈에서 아빠를 만나는 장면에서 드디어 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쉬는 날 단둘이 가서 본 알록달록한 산은 지금까지 현실을 회피했으나 이제부터 씩씩하게 맞설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리고 정확히 그 뒤부터 인물들과 주변의 사물들이 본래의 모습을 찾았다. 단색의 공간에 오버랩되어 있던 사물과 인물이
드디어 자신만의 색을 찾았다. 이제 이들에게 주어진 삶을 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아니,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죽게 되어 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해도 죽음 앞에 슬퍼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욱이 아무 준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또한 적응하게 되어 있다. 아이와 엄마가 아빠를 잊는 것이 아니라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고 씩씩하게 살아가기로 하듯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그래야 한다.
책을 읽을 때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마지막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있다가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이야기의 밝고 어두움을 떠나 독자의 경험과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을 읽는 어른, 특히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부모라면 주인공 아이가 남의 아이 같지 않아서 마음 아파하다가 슬픔을 극복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겨우 안심할 것이다. 또한 누구에게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행여라도 이 책과 비슷한 일을 겪은 이가 읽는다면 이 책을 통해 위로받고 힘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바로 책의 역할이자 독서의 힘이므로.

 
이정향│지금 알고 있는 지식의 70%는 어린이책을 읽으며 얻게 되었다. 지식뿐만 아니라 어린이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졌다. 현재 어린이도서연구회 수원지회에서 활동하며 어린이책을 열심히 보고 있으며 블로그 http://blog.yes24.com/ljh9368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