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적 임꺽정인가? 화적 임꺽정인가? : 신영화

제2회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독서감상문대회
대학일반부 우수상 수상작
 

 
일제 강점기의 민족주의자이자 뛰어난 문필가인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을 잡으면서 처음부터 무척 기대한 것이 사실 이다. 대하소설이라면 황석영 씨의 장길산과 조정래씨의 태백산맥에서 느꼈던 감동과 여운이 지금껏 남아 있던 나에게, 이번에는 시대가 조금 앞서 다르기는 하지만 왠지 바탕은 그것과 같은 입장에서 씌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읽기 전에 먼 저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화적편'의 자모산성 편에서 끝나지 않는 듯 끝나버리는 미완의 마지막 줄까지 이으면서 기대 와 예상이 많이 어긋났다고 느꼈음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대작의 첫머리를 열기에, 가장 큰 기대 속에 책장을 넘꼈던 첫권의 '봉단편'은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실마리가 되어 글 전체가 풀려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어느 잡기집에 실렸던 설화나 혹은 구전설화인 듯 하다. 해방 50년이 지난 20세기 말의 우리에게조차 익숙한 이야기이다. '봉단편'은 젊은 홍문관 교리 이장곤이란 자가 구사일생 으로 연산군의 변덕과 폭압을 피하여 함흥지역의 한 시골에서 우연하게 백정의 딸 봉단과 백년가약을 맺고 반정이 성공 한후에 다시 입신하기까지를 그리고 있는데, 이야기의 흐름은 사랑과 질투와 미움, 배신, 권력에의 비굴함(봉단 어미의 경우) 등의 인간 賞情과 삶과의, 죽음 배고픔 같은 인생의 절절한 문제들을 마치 잘 그려낸 한편의 설화를 듣는 듯하였다. 대하소설의 서장치고는 매우 친근하고 유한 것 같았다. 물론 앞으로 임꺽정의 출생과 비범함, 그리고 의적(다 읽기 전까 지는 그를 시대의 의적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에)활동과 어떤 고리를 짓고 이어질까 하는 궁금함만 더할 뿐. 

'피장편'과 '양반편'은 배경이 한양으로 옮겨가서 의외로 당시의 정치상을 몇몇의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하여 묘사하고 있 다. 임꺽정 당대 임금이었던 염종代 전에, 중종반정이 있는 후부터 己卯士禍를 거쳐 인종代의 수렴청정과 윤원형과 윤 원로의 집권기까지를 잡아 그 정치적 배경을 비중있게 서술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당시 상전과 천노 간의 관계를 정치권력사회의 선과 악에 비례하여 인간적으로 풀어내는 정도였다는 것 외에 뚜렷이 보여지는 것은 없다. 본격적으로 '의형제편'과 '화적편'은 아마도 작가의 입장에서는 본 내용이라 칠 수 있겠다. 나중에 의형제를 맺게 되는 뛰어난 장기를 지녔거나 비범한 장사인 이들 여섯 명 각각에 대한 짧은 성장기랄까 일대기랄까. 하여튼 관련된 내용을 나 중에도 다시 언급하게 되겠지만 , 재미있는 공통된 내용으로 이들이 한 여자를 만나 혼인하게 되는 과정이 꼭 들어가 있 다는 것이다. 당시에 혼인하여 상투를 올려야 성숙한 어른, 한 인간으로 생각하던 때문일까. 이 당시는 건국 초기의 집 권봉건국가 성립과정에서 제정한 여러 사회제도들이 차차 무너져 그 모순을 심화해 나가고 있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부세 제도의 폐단과 파행운영으로 민초들이 고통의 신음을 흘리던 때였으며, 역사적으로 天災와 질병 등이 무수했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모사인 서림이를 만나 청석골에서 화적단을 꾸리게 되는 내용은 예상을 뒤엎고 말 그대로 '화 적단'이었다. 또한 7권('화적편'1)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주인공 임꺽정이 오입질하는 상세한 내용으로 온통 채워져 있다. 신문연재소설이라는 한계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작품에 대하여 씁쓸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때 는 책을 손에서 놓고 싶은 마음마저 불러일으킬 정도로 말이다. 어쨌건 본격적인 -실록에도 아마 이쯤부터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적당 토벌이 이루어지려는 그 시작머리에 안타깝게도 『임꺽정』은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다. 무언가 이 소설의 핵심을 잡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이 기대를 가졌다가 꺾여버리게 되는 , 무척 김새는 찰나였다고나 할까.

당시의 시대적 배경 -정치적 . 사회 경제적 배경과 민중들의 삶
 
우선 실제로 임꺽정의 난(1559)이 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역사적 발전의 맥락에서 짚고 넘아갈까 한다. 당시의 정치 상은 홍명희 씨가 '피장편'과 '양반편'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지만 , 이는 상당히 왕실중심적이며 몇몇 사화의 희생자들과 윤원형과 윤원로 같은 특정 집권자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또한 소설의 재미라는 측면과 맞물려 설화적, 민담 적 요소가 곳곳에 배어 있기 때문에 당시의 집권 양반세력의 구조와 이 당시 그들의 사회적 제기능 등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당시는 여말선초의 사대부층이 건국기부터 훈구세력과 재야세력으로 나뉘어 있으면서 각자 의 세력기반을 각각 중앙과 향촌에서 길러오다가 재야의 사림세력이 중앙정계로 진출하려는 시기였다. 이들 사림세력은 향촌에서 재지지주로서 그 경제적 기반을 확고하게 하면서, 당시 건국 이래 누대로 차지해온 중앙정부의 고관직을 기반으 로 사회의 온갖 경제적 부를 독차지하며 사회모순을 야기하고 민중을 수탈하여 대지주로 성장해나가고 있던 중앙의 훈구 세력과 정치적 및 경제적으로 갈 등을 빚게 된다. 당시의 양반사대부의 사회적 신분의 보장과 경제적 바탕, 그리고 한자 를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의 독점은 각각 따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 관계에 있는 것이었다. 이때는 조선 시대 전반을 걸쳐 양반문화가 그 상징적 지위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어느 시대 어떤 사회를바라보든 (특히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볼 때 ), 정치제도 혹은 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위기에 놓이 거나 '해이'해졌을 때 에는 그 바탕에 항상 사회경제적 변동이 있게 마련이다. 이 당시에도 마찬가지 현상을 볼 수 있 다. 중세국가의 國家之大本인 농업은 15세기 말과 16세기를 지나면서 그 생산력과 농법, 기술 등에 있어 놀라운 발전을 보이게 되는데, 이는 곧 사회경제적인 변동의 가장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점차 유통경제가 발달하여 장시가 성장하고 이에 따라 지역간의 교통이 더욱활발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곧 민중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 다. 봉건적 신분제사회인 조선에서 농민(곧 민중 대다수로 파악하겠다. )들은 국가에 의한 강한 통제 아래 부세제도에 의해 직접적으로 수탈을 당하는데 바로 이러한 부세제도는 전세와 군역, 공납의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6세기 중. 후반기는 바로 국초에 정립한 부세제도가 변질하여 그 폐단은 수탈이 더욱 가속화되고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하여 농지를 이탈하는 유망민이 속출할 때 였다. 더욱이 집권양반들이 소농들의 토지를 겸병하여 병작반수제로 부쳐먹게 하면서 농 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던 시기라 농민들은 점차 몰락하여 私奴로 떨어지거나 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렇듯 농민들의 생활이 궁핍함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저항의 기운이 비조직적이고 산발적으로나마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 고 있었는데, 그 중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른바 '임꺽정의 난'이었다.

民이 생각하는 君 -전통적인 통념의
 
조선시대의 군주는 절대적 존재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그 '절대'에 있어서 서양의 절대주의와는 완연히 다르다. 임금은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서, 실질적 국가운영은 바로 양반사대부층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물론 왕조 全期를 걸쳐 왕권 과 신권의 밀고 당기는 다툼이 여러번 있었으나, 임금이 신하들을 완전하게 제압하여 그 권력을 행사했던 적은 없었고, 무리한 제압의 시도는 오히려 정조의 경우 신하들에의한 독살설마저 있을 정도로 -견제당하였다. 임금이 완권을 강화하 려 할 때 에는 바로 자신이 지배하는 백성들과 직접 교통하려는 것이 라고도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 사이에는 항상 양반사대부가 가로 막고 있어 왔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임금의 백성을 위한 선정의 정책을 펴려 할 때 , 이는 바로 이 들을 수탈하고 직접 지배하고 있는 양반들의 권익에 배치되는 것이 당연하여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백성들이 생각하는 임금은 멀고도 높은 곳에 있는 나라 그 자체(나랏님)였으며, 항상 자애롭고 위엄 있는 군왕의 이미지를 그 안에 가지게 된다. 그들을 억압하고 그들의 것을 빼앗아가는 것은 바로 토호와 향반, 그리고 수령이었다. 사는 것이 힘들고 지칠 지경에 이르러도 '먼 곳의 임금보다 가까이 있는 원님이 더 무서웁다. ' 고 하듯이, 정말로 앗아가 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양반님네들이지 저 먼 구중궁궐의 임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임꺽정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꺽정이가 기생 소흥이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하는 얘기는 무척 의미심장한 구절이다. 

"세상사람이 임금이 나보다 잘났다면 나를 멸시 천대하더래두 당연한 일로 여기고 받겠네, 그렇지만 내가 사십 평생에 임금으로 쳐다보이는 사람은 몇을 못 봤네. 내 속을 털어놓고 말하면 세상사람이 모두 내 눈에 깔보이는데 깔보이는 사람 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니 어째 분하지 않겠는가. 내가 도둑놈이 되고 싶어서 된 것은 아니지만 조금도 뉘우치지 않네......" 

꺽정이의 생각이 당시 민중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물론 아닐 것이다. 백정의 집안에서 태어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갖은 멸시와 천대를 받고 또한 능력 있는 자신의 스승과 동생들이 사회로부터 아무런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아래에 서 그는 자신만의 분노와 세상의 부당함에 대한 반발심을 키워오고 있었던 것이다. 화적단 두목이 다니 것은 우연한 계 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 당시의 도덕적 기준과 정상적 생활을 무시하고 뿌리칠 만큼 그는 사회의 현실을 증오 하고 '세상사람에게 분풀이하려'했던 것이다. 그러한 자신이 도둑놈이 아니라 '시골에 있는 사모 쓴 도둑놈, 서울의 조정 에 득실득실한 도둑놈을 나라에서는 녹을 먹여 기르고 있다. '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바로 자신의 천한 출신으로 하여 받 는 수모가 부당하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생각은 세상사람과 도둑놈들인 양반, 사회적 현실, 나아가 임금마저도 부정하는 그의 사상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화적 임꺽정과 의적 임꺽정 -그가 민초들에게 또 하나의 억압세력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홍명희 씨가 『조선 중기 명종代에 황해도 지방에 임꺽정이라는 장사가 대장이 되어 큰 도적단을 이끌고 나라 안을 소란 스럽게 하다 결국은 4년 만에 토벌되었다. 』 는 역사적 사실을 두고 어떤 주제를 생각한 것일까. 홍명희 씨가 임꺽정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는 더욱 모호하게 남은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그리려고 했던 임꺽정 은 과연 어떤 도적이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그가 어떤 사회 속의 전형적 인물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민중이 차지하는 위치 혹은 역할이나 아니면 우리나라 역사의 중세시기의 사회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했던지는 소설 전반에 나타 난 임꺽정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위와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고 읽었는데도, 나에게 와 닿는 것은 없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즉 나의 생각은 그가 과연 의적이었던가 아니면 단지 도적단의 대장일 뿐이었던가이 다. 그 이유를 차근차근 소설 속에서 찾아볼까 한다. 

소설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가졌던 느낌은 하나, 꺽정이의 비범함은 단지 그의 육체적 힘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 과 둘, 그가 민중들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첫째 는 바로 그의 서울 오입질 부분에서 볼 수 있다. 백손 어머니에게 첩은 드리지 않는다고 자신이 먼저 약조를 하 고서도 부인 셋과 기생첩 하나, 이렇게 네 여자 속에 파묻혀 정신을 못 차리고 한 도적단을 이끌고 있는 대장이라는 사실 조차 망각한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여자든 취하여 푹 빠져드는 것과 백손 어머니의 당연한 반박을 귀찮아하고 나아가 폭력으로 제 얼굴에 침뱉는 짓을 하는 것은 참 기막히는 일이다. 독자들에게 약간의 흥미를 주려는 것인가, 아니면 이 또한 당시의 생활상의 잘 그려낸 것으로 보아 보편적 사회상의 표현으로 파악해야 할 것인가. 여자들을 취하는 방법 또한 오입쟁이 하는 옹졸한 짓 그대로라 그의 사물에 대한 정당함과 대범함을 전혀 연괄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한 이야 기의 전개에 더욱 중요한 사실이 바로 그의 이 오입질로 인하여 청설골의 의형제 두령들을 내부분열의 위기에 까지 놓이 게 하는 그의 무책임함과 무분별함이다. 황천왕동이의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고를 짜증과 무관심으로 일변하고 주색에 빠져 있는 것은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이 할 일인가 하고 한때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둘째 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임꺽정과 다른 두령들은 사회로부터 이탈하거나 불만을 품고 있는 상황을 몰아 도적단을 만들고 의형제가 되었다. 또한 이들에게는 이들을 따르는 수많은 졸개들이 있으며 이들 모두에게는 딸린 식솔들이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도적단'이라 필요한 식량과 물품을 '약탈'할 수밖에 없으리라.그러나 식량과 물품의 획 탈은 물론 , 평산쌈에서 보이는 관군과의 대적, 그리고 그들의 거의 모든 활동에 그들과 마찬가지로 지배층의 폭압 아래 신음 하고 있는 대다수 농민들에 대한 적극적 배려와 동일시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것은 그들 적당이 사소한 일로 농민들을 죽여버리는 일이 잦은 것, 집과 마을을 빼앗아버리는 것, 농민들을 죽여버리는 일이 잦은 것, 집과 마을을 빼앗아버리는 것, 농민들을 힘과 폭력으로 위협하고 그들 아래에 두려고 한다는 것 등에 잘 나타나 있다. 모두가 함께 다 같이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피지배계급이며 자신들이 받았던 억울한 차별과 천대와 억압을 다시는 받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실제로 서림이의 말에 ".. 하고서야 나라를 도모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와 오두령의 말에 "... 잘할 테니 대 장께서 소원성취하시는 날 나를 송도유수루 승차나 시켜주시우."를 보면 임꺽정이 독 도적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 상을 바꾸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리적임 힘을 가지고 있는 제가 이들을 감싸주어 같은 편이라는 생 각을 심어주어야할 터인데, 임꺽정과 그 도당은 민초들에게 새로운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는바로 양반지 배 사회, 신분제사회의 힘의 논리, 권력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민중에 대한 또 다른 억압세력 . 위협세력으로서 다가 가고 있다고 밖에 파악할 수 없다. 이들이 단지 화적단에 불과하고 민중의 편에 서는 의적의 측면은 극히 미약하여 동정 과 연민에 의한 변덕스런 정도에 그치니 이는 정말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홍명희 씨가 생각한 임꺽정은 과연 이정도 였더란 말인가. 아니면 미완의 불행인가.

새로운 사회의 지향-평등사회. 불평등사회
 
이들이 의적임을 바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갈구하고 새로꾸리려는 사회가 평등사회를 지향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이들이 청석골에 모여 이룬 집단은 작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규율과 위계질서가 존재하고 있다. 그 러나 이 위계질서라는 것은 아쉽게도 바깥세상과 꼭같이 흉내내어 만든 것이니, 임금이 바로 꺽정이료, 대소신료들이 바 로 두령들이요. 말단직이 바로 시중드는 졸개들이요, 나머지 졸개들은 이들 지배하의 백성들이다. 물론 사회를 지탱해나 가는 '생산'에 대당하는 행동은 대장 이하 두령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건만, 그 언어의 사용과 물질생활의 뚜렷한 차 이둠, 그리고 무엇보다 중세봉건사회에서 인간의 고려할 때 가장 먼저 그 신분적 위치의 상하를 보는 것처럼, 여기 청석 골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이 위계질서의 고하에 따라 매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절대로 주인공과 주변 엑스트라들의 차 이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임꺽 정에게 바라야 할 것은 주인공으로서 이 소설의 더 큰 주인공인 민초들의 삶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이들의 저항과 살아있음을 상징하는 역할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사회를 이 룩할 때 그 사회는 신분제가 타파되어 억울한 멸시와 천대, 그리고 억압이 사라지고 경제적 부가 균등하게 분배되어 더 이상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할 수 없는 사회여야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에서 범인인 꺽 정이는 자신의 울분과 억울함을 새로운 청석골 사회의 우두머리로 서는 것에 풀어버림으로써 그만인 듯하다.

그러나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한 당시 사회의 모습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의 표현과 대화, 그리고 그 당시의 지리적 사실을 아주 실감나게 나타내주어 -홍명희 씨가 황해, 경 기를 비솔한 전국의 지리를 직접 밟아본 듯 얼마나 잘 묘사했는지 감탄할 지경이다. -백리길, 사흘 꼬박 걸리는 길이라 는 말 속에 그 당시의 교통과 교류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듯 훤한 느낌이었다. 홍명희 씨가 이 『임꺽정』을 집필하기 시 작한 때가 1920년대였고, 책의 배경은 16세기의 조선국가이니 못해도 200년의 차이가 있을진대, 아무리 20세기 초라하더 라도 척박한 일제하에서 자료와 사료를 모아 이렇게 그린 듯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임꺽정』의 가치는 바로 그 문학적. 역사적 가치에 있을 터인데, 그 역사적 가치는 비록 내가 기대하였던 것은 아니더 라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비록 사회의 혁명세력, 민중의 저항을 대변하는 상징세력으로서의 임꺽정의 화적단 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정치세력이 갈등하는 속에 이들 지배경제등 급의 농민들에 대한 수탈과 착취가 극에 달하는 이 시기에 , 임꺽정은 가장 밑바닥의 출신으로 조정과 양반사대부들을 조롱하며 큰 세력을 펼 치었고 또한 이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으니, 그 바탕에는 바로 이 새대를 살아가며 최소한의 생존조건만을 지니고 억지로 억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임꺽정에 대한 나의 실망 아닌 실망을 마무리하고자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