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사계절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발표

제1회 사계절그림책상 대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김지영 『내 마음 ㅅㅅㅎ』


심사위원: 서현(그림책 작가), 송미경(동화작가), 이지은(그림책 작가)
당선자에게는 개별 통보하였고, 대상작은 2021년 4월 출간 예정입니다.
사계절그림책상에 응모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1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평
 
올해로 첫 그림책 공모를 시작한 사계절엔 총 299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첫 공모에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작품을 응모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예심을 보러 가던 날은 전날부터 이어진 비바람으로 파주 출판단지의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청량했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잡풀들의 흔들림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299편의 응모작은 작가의 확고한 세계관이나 거대한 서사보다 주로 작가 개인의 내밀하고 사적인 고백이 많았고 그림의 표현 또한 본인만의 방식과 기법을 사용한, 개성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 자기 자신과의 소통에 주를 둔 작품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겠으나 독자에게 닿았을 때 그 의미가 쉬이 전달되지 못하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수도 있는 단점도 있다. 요즘은 그림책의 독자가 유아부터 성인까지 확대되었고 반드시 상업적 출판이 아니더라도 혼자 그림책을 출간할 기회들이 많아져서 더욱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다.
 
 
한 권의 그림책은 하나의 세계다.
그림책의 표지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문과 같다.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마음을 사로잡아 버려서 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어지는 책이 있고, 문 앞에서 주저하게 되는 책이 있다. 판형과 두께, 제목, 서체의 느낌이 각각 다른 299편의 책들이 우리를 압도했다.
예심에선 우선 기본적인 서사 체계, 그림책의 기본 형식뿐 아니라 참신함에 중점을 두고 보았다. 심사위원들이 각자 뽑은 작품을 모아 두고 보니 그중엔 세 명의 심사위원에게 공통으로 선택된 작품도 있고 두 명에게 혹은 한 명에게 선택되어 올라온 작품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총 21편을 본심에 올린 뒤 우리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각자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 본심 날짜를 뒤로 따로 잡았다. 우리가 여행한 299편의 세계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여행은 매우 강렬해서 그 순간 우리를 매료시키지만 시간을 두고 기억하면 마음에 남는 것이 덜한 경우가 있고 어떤 여행은 특별한 일이 없는 듯하지만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것처럼 본심작들 또한 시간을 두고 숙고하는 사이 심사위원의 마음에서 여러 가지 작용을 일으킬 것이었다.
다시 본심을 보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을 땐 마치 우리 자신이 시험장에 온 것처럼 긴장감이 일었다. 이번엔 순수한 독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21편의 본심작을 다시 정독했다. 긴 침묵이 이어진 후, 우리는 그중에 또다시 반 이상을 걸러 냈고 그러는 사이 새롭게 드러나는 풍경이 있는가 하면 처음의 열정과 달리 희미하게 스러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본심작에서 최종 거론된 작품은 총 7편으로, 『아침에 떠난 여행』 『거꾸로 서 있던 날』 『정글버스』 『보들보들 실뭉치』 『플리즈』 『빨간 지붕집의 아기』 『내 마음 ㅅㅅㅎ』였다.
 
『아침에 떠난 여행』은 꿈꾸듯 유년의 집으로 떠나는 여행을 다룬다. 삼 남매가 함께 집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단순한 내용이 여백과 선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그림과 만나 독자가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게 하고 잠시 꿈을 꾸게 한다. 작가가 자기 호흡을 유지하며 그림과 글을 잔잔하고도 강하게 풀어 간 점이 매력적이나, 아쉽게도 이야기 전달 방식이 좀 더 넓은 층위의 독자와 소통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여서 수상작으로 선정하지 못했다.
 
『거꾸로 서 있던 날』은 양념을 담아 두는 곰돌이 통이 거꾸로 뒤집어진 채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곰돌이 통이 뒤집어진 채로 세상을 보는 아이디어도 좋고 개성 있는 캐릭터도 돋보였다. 하지만 기발한 설정에 비해 결말을 가볍게 푼 점, 전체적으로 그림 스타일이 일관되지 않아 산만한 점이 약점으로 다가왔다. 캐릭터가 바라보는 세상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하고 글과 그림을 집요하게 파고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정글버스』는 어느 날, 한 여자아이가 늘 집에 타고 다니던 버스의 번호가 슬그머니 바뀌면서 아이에게 펼쳐지는 모험을 그렸다. 판타지적 설정을 유머러스하고 능청스럽게 배치한 점이 매력적이며 그림과 글의 구성이 정직하게 맞아떨어지고 강렬한 색감이 고전적 서사와 어우러지는 느낌이 좋지만, 낯익은 그림체로 이야기가 표현되어 작품의 매력과 신선함이 반감되었다. 그림에 담긴 야생적인 힘을 포기하지 않되, 작가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탐구하면 더 좋을 것이다.
 
『보들보들 실뭉치』는 주인공 도롱이가 풀숲에서 실뭉치를 발견하고 집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도롱이가 자기에게 꼭 맞는 집을 알아 가는 과정이 귀여운 작품이지만, 캐릭터와 실뭉치의 관계가 평이하며 배경이 반복되어 긴장감이 떨어진다. 패턴화된 배경에 거리감이나 여백 등의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줄 여지가 많아 보였다. 캐릭터가 형성하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강점이었던 만큼 이미지와 서사에 강약을 조절하여 리듬감을 부여하면 사랑스러운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플리즈』는 아이의 꿈속에 등장하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인 한편, 내면의 공포에 관한 이야기다. 괴물이 아이 내면의 창조물이고 아이가 보내 줘야만 집에 갈 수 있는 나약한 존재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괴물 캐릭터의 성격이나 형태를 독특하게 표현해 낸 점은 인상적이나 괴물 엄마 아빠의 설정이 서사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설득력이 약하다. 아이와 괴물 사이의 심리를 더 깊이 다루었다면 소재와 이미지의 신선함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달되었을 것이다.
 
『빨간 지붕 집의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사는 아기들의 이야기다. 그림책에서,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다루기 힘든 소재인 유산,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고도 능숙하게 다루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또한 이 강렬한 서사를 진행하고 결말을 다루는 방식은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조뿐만 아니라 섬세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에서도 빛이 났다. 따뜻하면서도 강하고 익숙하면서도 독창적인 서사는 흠잡을 데 없다. 다만 글에 비해 이미지의 힘이 약한 것이 아쉬웠다. 글의 밀도에 어울리는 그림을 만난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내 마음 ㅅㅅㅎ』은 다른 응모작에 견주어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으며 그림책을 여러 방식으로 다채롭고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이의 감정선을 따라 진행되는 서사가 산뜻한 시각 이미지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펼쳐진다. 아이가 일상에서 느끼는 마음의 단어들을 골라서 ‘ㅅㅅㅎ’ 의 글자 이미지와 연결하고 시각화하는 아이디어와 솜씨가 굉장히 매력적이며, 무엇보다 그림책의 시각적 만족도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주는 작품이었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을 따로 모아 두고 여러 번 펼쳤다 덮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덧 밤이 깊었다. 심사위원들은 최종 대상작을 놓고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작품을 검토하고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마음 ㅅㅅㅎ』을 대상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이 작품에 대한 감상을 가장 많이 나누고 있었다는 것도 대상을 확정한 뒤에야 깨달았다. ‘ㅅㅅㅎ’ 자음을 품은 마음의 단어들을 따라가다 보면, 천진하게 변화하는 아이의 감정이 자연스레 들어오고 결국 읽고 있는 나 자신의 감정과 닿게 된다. 우리가 한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것을 먹고 보고 들어도 결국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의 감정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그 여행은 하나의 체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양한 감정을 독자에게 제시한 뒤에 결국 독자가 가진 감정을 끌어내는 근원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잘 짜인 작품이라는 점과 다양한 감상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 언어를 물성과 의미의 차원에서 유희적으로 풀어내는 솜씨가 뛰어나고 그것을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감각 또한 탁월했다는 점이 이 작품을 대상작으로 꼽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게 했다.
 
대상작으로 『내 마음 ㅅㅅㅎ』을 정하고 난 뒤, 우리는 현장에서 수상자에게 전화 연결을 해서 당선 소식을 전하고 축하했다. 그 순간은 수상자에게도 기쁨과 놀라움의 순간이었겠지만 편집부와 심사위원들에게도 그러한 순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와 전화를 끊고 난 뒤 우리는 마치 이제 막 긴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온 나그네들처럼, 길고도 깊은 이 여행에서 결국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음을 고백했다. 어떤 피로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권의 그림책을 펼치며 독자들이 한 세계로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뒤의 내가 어떤 나일지 궁금해서가 아닐까. 한 세계를 경험한 뒤의 나는 이전의 나와 같은 나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내 안에 숨어 있던 새로운 나와 조우하기 위해 기꺼이 그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로 누군가를 불러들이고 결국 그 세계로 나를 던지는 것이다.
 
299편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게 해 준 응모자 전원에게 감사드린다.
 
서현, 송미경, 이지은(제1회 사계절그림책상 심사위원)
- 대표 집필 송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