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의 안광복 저자를 만나다


사상의 빈곤 시대, 삶의 나침반을 찾아가는 철학자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의 안광복 저자를 만나다


얼마 전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이라는 강렬한 제목의 책을 출간하셨습니다. 철학자의 시선으로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들을 톺아본 책이지요. 이 책은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의 개정 증보판인데, 책에 대해 큰 애정이나 가치를 두어야 이렇게 계속 원고를 손보고 내용을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이 책을 쓰실 때 여러모로 고충이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이번 작업은 어떠셨나요?

이전 『교과서에서 만나는 사상』은 저의 여러 저서 중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책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안 좋은 편이었어요. 5천 권 남짓 발행에 그쳤으니까요. 공력도 많이 들였고 편집도 훌륭했는데 왜 널리 읽히지 않았는지, 미련이 많이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에 담긴 ‘교과서’라는 말이 독자의 독서 욕구를 떨어뜨리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곤 했어요. 교과서에 담긴 지식이란 “시험 보기 위해 알아야 하지만 별로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기 쉽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사계절 편집부에서 방향을 180도 바꾸어 제목을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로 달았습니다. 어떠세요? 왠지 끌리지 않으세요?(웃음)

책 개정 작업을 하면서 민주주의, 공산주의를 추가했어요. 이 책을 쓸 때 처음 가졌던 생각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사상들을 충실하게 풀어 주기’였답니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야말로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들이잖아요? 그 외 나머지 사상들은 독자의 관점에서 다시 찬찬히 읽어 보며 조금씩 손을 보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책이지만 정말 잘 썼더군요.(웃음) 초등학교 6학년들도 사상의 고갱이를 제대로 짚을 수 있을 정도로요.


어렵게 느껴지는 여러 사상들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셨는데요. 사람들이 사상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자들이 책을 통해 무엇을 느끼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합니다.

‘신자유주의’는 사람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몰았어요. 그래서 취업하기도, 결혼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지요. ‘보수주의’자들은 진보 세력들 때문에 나라가 망가진다고 혀를 찹니다. ‘페미니즘’은 소외된 자들 없는 평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죠. 하지만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남성들도 꽤 있습니다. 저는 지금 짧게 몇 마디를 했을 뿐이지만, 그 속에 이미 우리 삶을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보수주의, 페미니즘 등 여러 가지 사상들이 튀어나왔어요. 과연 우리 가운데 이런 이념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요?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모른 채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보수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채 정치 논쟁을 벌이며 페미니즘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으로 격렬한 다툼을 벌이곤 합니다. 사상은 세상을 이해하는 지도와도 같습니다. ‘사상 공부’를 제대로 해야 오해나 편견 없이 여러 사회 현상을 진단하고, 문제의 핵심을 짚어 올바른 처방을 내놓을 수 있어요. 독자들이 이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 생각들이 갈등을 빚는 현실에서 사상들을 치우침 없이 바라본다는 것은 철학자의 의무이자 매우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상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지식을 얻는 일은 ‘인지적 불구’가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가”는 알 수 없는 무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일단 한글을 익히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가”를 ‘가’ 외에 다른 것으로 볼 수가 없어요. 그냥 자동적으로 ‘가’라고 읽게 되지요. 사상도 마찬가지예요. 태어날 때부터 유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효’(孝)같은 개념은 절대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할 당연한 진리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돈과 계산으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을 무척 이상하고 불안하게 여깁니다.
‘사상 공부’란 ‘다르게 생각하는 용기’라 할 수 있어요. 내 삶을 지배하는 이념들을 따져 물으며,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지요. 이 가운데 내 삶과 세계를 나아지게 할 온갖 새로운 통찰과 희망이 솟아오릅니다. 『우리가 매혹된 사상들』같은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모르는 채 우리가 특정한 사상들에 사로잡혀 있음을 깨닫게 되니까요. 모르는 것은 꿈꿀 수도 없어요. 새로운 사상을 알고 나면 비로소 새로운 꿈도 꾸게 되지요. 끊임없이 성찰하며 나아지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책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쉼 없는 독서를 통해 다른 생각들과 만나는 과정이야말로 어떤 사상에 매몰되지 않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철학 교사이자 철학자이신만큼, 철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정말 많으실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철학책을 꾸준히 펴내는 이유와 청소년들이 철학을 통해 얻길 바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철학은 ‘정신을 위한 운동’(mental gymnastic)과 같습니다. 근력이 튼실한 사람은 힘든 운동도 어렵지 않게 해냅니다. 마찬가지로 철학으로 정신을 단련한 이들은 삶의 어려운 문제도 거뜬히 넘겨 내지요. 제 책은 쉽고 짧습니다.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글들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폭넓고 통찰을 안기는 문장들이 많지요. 지적 관심사를 넓히고 생각을 깊게 하도록 유도하는, 제 나름대로의 노력인 셈입니다. 청소년들이 제 책들을 통해 철학의 세계로 ‘입문’하시길, 나아가 정신의 근력을 키우고 지적 호기심을 한껏 틔우시길 부탁드립니다.


선생님께 철학을 직접 배우는 학생들이 무척 부럽습니다. 디지털 시대, 많은 것이 예전과 달라진 요즘, 학생들이 철학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요?

“나는 왜 살지?”, “꼭 세상이 인정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할까?”, “세상은 왜 이 모양일까?” 등등, 학생들이 힘들 때 스스로에게 던지곤 하는 물음들은 사실 모두 철학의 핵심 문제들이에요. 예전 학생들 가운데는 이런 물음들에 깊이 빠져들어 사춘기를 ‘문청’(문학 청년)으로 보낸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요새 학생들은 이런 물음에 부딪힐 때 오히려 게임이나 연예인 ‘덕질’로 도피해 버리는 경우가 더 많지요. 힘든 물음에 맞서기보다, 눈앞의 고민거리들을 잊게 하는 소일거리로 도망치는 셈이지요. 하지만 근본적인 물음에 제대로 맞서고 깊게 탐색해 본 경험은 나를 큰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삶이 힘든 순간에 내 고민을 풀어줄 소설책, 심리학 서적, 철학 책 등등을 찾아 열심히 읽으며 답을 찾아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20여 권이 훌쩍 넘는 철학 책들을 써 오셨는데, 앞으로 쓰고 싶은 주제 또는 더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가요? 더불어, 요즘 선생님의 관심사도 궁금합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주제가 50여 가지는 더 있어요.(웃음) 그래서 제가 작가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초조하게 세어 보곤 해요. 지금은 ‘수양론’에 관심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철학의 지혜가 내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철학적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요새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등 음식에 대해 구체적인 혜안을 전해 준 철학자들의 식습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과연 건강한 삶이 되는지를 ‘입증’해 보려고요.(웃음) 이외에도 철학자들의 공부법, 철학자들의 인간관계법 등 ‘일상에서의 수양’과 관련된 주제들을 시리즈로 구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들이 행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데 필요한 철학 화두는 무엇일까요?

“지금처럼 살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나의 꿈을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했을까?”라는 물음을 늘 가슴에 품고 사셨으면 합니다. 이 두 가지는 행복한 삶을 꾸리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철학 화두’이니까요. 자기가 뭘 바라는지도 모르는데 행복하기가 쉽겠어요? 꿈과 욕망도 연습하고 훈련해야 제대로 자라나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목표와 꿈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은 없어요. 저의 이전 책 『열일곱 살의 욕망 연습』은 앞서 말씀드린 두 물음을 탐색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