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사계절문학상 수상작품 『푸른 사다리』

청소년문학의 새장을 여는 ‘제2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청소년문학의 창작 정신을 고취하고 본격적인 청소년 문학 작품 발굴을 위해 사계절출판사에서 제정한 제2회 ‘사계절문학상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지난해에 아동문학가로 첫발을 내딛으면서 뛰어난 이야기꾼으로 아동문학계의 주목을 받아 온 신진작가 이옥수 씨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옥수는 중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키우며 성실한 주부로 살아오다가 마흔이 넘은 지난해에야 대산문화재단의 창작지원금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늦깎이 작가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 쓰고 싶고 써야 할 것들도 많다. 어린 시절,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동냥을 오거나 누군가 찾아오면 반드시 따순 밥을 해 먹여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몸에 익힌 그는 성장하면서도 늘 우리 사회의 그늘을 돌아보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의 시선은 그래서 늘 낮은 곳과 소외된 이웃들의 삶을 향해 있다.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푸른 사다리』 역시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삶의 기본권을 끊임없이 위협받아야 했던 도시 빈민들의 애환과 그 속에서 성장하는 청소년들의 고통과 방황과 꿈을 핍진하게 그려 내고 있다.

심사 당시 심사위원(현기영, 오정희, 황광수)들의 공통된 평가는 이 작품이 문학과 삶의 진정성을 탄탄하게 확보한 바탕 위에 해학과 풍자, 뛰어난 이야기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개 소외된 삶, 도시 빈민들의 삶을 그리다 보면 주로 그들의 핍진한 삶에만 갇히거나 진부해지기 쉬운 경향이 있는 데 반해 이 작품은 “천민자본주의의 생리와 도시 빈민들의 삶의 실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면서 사람들 사이의 내밀한 교감을 풍요롭게 그려 낸 수작”(황광수)이라는 평이다. 거기에다 “눈물까지 핑 돌게 만드는 해학성”(현기영)과 “비행 소년으로 낙인찍혀 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예리하고 깊은 통찰력으로 꿰뚫는 한편, 때로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 없이 보여 주는”(오정희) 면면들을 작품 곳곳에 포진시켜 초라하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꽃피는 따뜻한 인간애와 미래의 희망을 넉넉히 담아 내고 있다.

막장 광부 생활 20년에 몸과 마음이 다 망가진 아버지와 불량 소년 패거리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윤제는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에 파출소도 몇 차례 드나들고 소년분류심사원까지 거치는 등 비행 소년이 되지만, 자신의 타고난 낙천성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두 친구의 우정에 힘입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지하방 한 칸조차 마련할 수 없어 비닐과 보온용 덮개를 덕지덕지 덮어 씌운 길쭉한 하우스 한 동에 보통 네댓 집이 칸을 막고 사는 비닐하우스촌을 배경으로,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며 아웅다웅 살아가면서도 삶을 놓지 않는 도시 빈민들의 고락과 애환을 핍진하게 그리는 가운데 비행 소년으로 낙인찍혀 가는 주인공의 고통과 삶의 불화를 긴밀하게 겹쳐 보이면서 사람과 삶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작품 내용

서초동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촌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빈민촌.
윤제는 초등학교 6학년 학기 초에 이곳으로 이사 온다. 강원도에 살다가 집을 나갔던 엄마가 일년 여 만에 어렵사리 구한 집. 비닐과 보온용 덮개를 덕지덕지 덮어 씌운 길쭉한 하우스 한 동에 보통 네댓 집이 칸을 막고 사는 까닭에 옆집에서 방귀 뀌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지낸다.
윤제는 조금 불퉁하긴 하지만, 속은 여리고 순수한 아이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윤제네 집을 방문하겠다고 하면서부터 윤제의 불퉁스러움은 비행의 길로 표출되고 만다. 윤제는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곳에 담임 선생님을 데리고 갈 수가 없어서 그길로 수업을 빼먹고, 다음날엔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워 아예 결석을 해 버린다. 결석은 가출로 이어지고, 중국집 자장면 배달을 하며 아이들과 좀도둑질을 하는 새대가리파 두목 용호에게 덜미를 잡힌다.
아침이면 빌딩 청소를 하고 저녁엔 식당 일로 생계를 꾸려 가다가 복부인들에게 하우스를 소개해 주고 소개비를 받는 재미에 팔려 집안일을 돌보지 못하는 어머니,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부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양재역 인력 시장에 나가 그날 그날 날품팔이를 하면서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두들겨패며 못살게 구는 아버지,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집과 가족을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는 형, 골목대장을 넘어서 차가운 카리스마로 윤제를 제압해 버리는 태욱이와 그 패거리들, 윤제에게 눈곱만큼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첫사랑 혜미, 바람 잘 날 없이 힘겹게 악을 써 대며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윤제는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것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아버지도, 집안일엔 늘 방관하며 잘난척하는 형도 모두 싫다. 그래서 꽃마을도 훨훨 타고, 학교도 타고 아예 이 세상이 통째로 훨훨 다 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윤제는 집을 나와 용호가 일하는 중국집에 얹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용호 패거리들과 한패가 되어 좀도둑질을 시작한다. 어머니는 윤제의 가출 이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윤제를 찾아다닌다. 결국 윤제는 어머니에게 잡히고, 어머니는 윤제를 위해 굿을 하고 용호 패거리들로부터 윤제를 보호하기 위해 등하교를 함께 한다.
어머니의 노력으로 용호 패거리들과 결별하고 한동안 탈 없이 지내던 윤제는 이듬해에 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다시 용호 패거리들이 윤제를 범죄의 나락으로 끌어들인다. 윤제는 다시 힘겹게 빠져나오긴 하지만 뒤늦게 특수절도 행각이 발각되어 마침내 소년분류심사원까지 가기에 이른다. 이른바 촉법소년이 된 것. 촉법소년이란 미성년자라 해도 죄질이 형사 처분에 해당하는 소년범을 말하며, 소년범은 관할 소년부와 검찰 소년부를 거쳐 소년분류심사원으로 보내진다. 소년분류심사원은 심리를 결정하여 소년원에 송치할 것인지의 여부를 가리는 한편 소년범들을 훈화시키는 곳이다.
윤제는 한 달 남짓 그곳 생활을 하면서 자유라는 것과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사랑으로 집에 돌아오게 된 윤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만, 윤제를 둘러싼 환경은 여전히 힘겹기만 하다. 내적으로 한바탕 회오리를 치른 윤제는 비닐하우스촌이 철거 위기를 맞게 되면서 다시금 회오리를 겪는다. 철거반들의 강제 철거에 맞선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 그 과정에서 결국 하나 둘씩 하우스촌을 떠나고 윤제네와 옆집 영진이 형네와 대현이네 세 집만 남는다. 천막을 치고 시위를 하다가 아버지는 다리를 다치고 결국 적은 돈이나마 보상을 받고 이사를 가게 된다. 윤제는 작은 승리감을 맛보고 아버지에게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자신을 느끼지만 내색하진 않는다.
윤제네가 살 집은 바깥으로 나 있는 좁은 철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4층짜리 허름한 상가 건물의 옥탑방. 윤제네가 이사를 하던 날 이복 남매인 태욱이와 혜미가 찾아온다. 혜미는 옥상에 걸쳐진 긴 사다리를 보며 윤제와 태욱이를 놀린다.


“야, 새대가리파! 새, 대, 가, 리…… 사, 다, 리. 어째 좀 닮은 것 같지 않니? 새대가리파, 사다리파. …… 맞다! 이제부터 너네 둘이서 사다리파 하면 되겠다. …… 둘이서 사다리파가 되어 꼭 붙어서 올라가란 말이야. 봐, 한쪽만 있으면 사다리가 안 되잖아. 태욱이 넌 이쪽 다리, 윤제는 저쪽 다리. 그래, 좋았어. 푸른 나무처럼 쑥쑥 자라는 사다리……. 맞다, 푸른 사다리파! 어때?”


태욱이는 혜미를 쫓아 달려가고 윤제는 혜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사다리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처럼 푸른 꿈이 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