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 이야기를 해 볼까?

처음 이 책을 손에 잡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몸이 약간 경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종.이.야.기.를.해.볼.까?'라는 제목을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면서 머릿속이 '즐거움'이나 '행복' 같은 단어가 아니라 '편견', '차별', '불평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로 점령당하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공통된 심리적인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 시작 이래로 '인종'이라는 단어가 겪어온 그 처절함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며, 오랜 세월 동안을 우리의 의식 무의식 속에 뿌리박힌 잘못된 인종 이야기의 모습인 것이다. 작가 줄리어스 레스터는 쉽지 않을 그런 '인종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해 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도대체 인종 이야기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하나의 이야기 :
인종을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관

작가는 첫 단락에서 우리 모두 각자는 하나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의 시작은 다 똑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우리 자신,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텍스트의 의미심장함은 카렌 바버의 그림에서도 온전히 드러난다. 화면 전체의 노란색은 색채심리학적으로 볼 때, 빛과 생명을 상징하며 동시에 유아기적 행복감이 가득한 상태,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 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장면은 인종 이야기와 관련해서 우리 인류가 진정 지녀야 할 참된 마음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상징하는 장면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노란색 배경 위에는 커다란 나무가 여기저기 굵은 가지를 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나무는 세계의 전체이자, 하늘과 땅과 물의 총체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양육자 또는 보호자로서 태모(太母)를 상징한다. 가운데 굵은 가지에는 마치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가 서 있는 듯 보인다. 작은 줄기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갖가지 표정과 모양새로 앉아 있기도 하고, 매달려 있기도 하고, 또 나뭇가지에서 거꾸로 떨어지려는 아이도 있다. 떨어지는 순간 그 아이는 구원의 손길로부터 보호를 받는데, 바로 그 곳에서 희망의 나비가 한 마리 날아오르고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살고 돕고, 그 안에 오직 희망이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인종 이야기의 핵심이다. 자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잘못된 인종 이야기의 근원, 두려움
작가는 우리 각자의 이야기 속에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일이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색이 다르고, 또 취미도 다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각자의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어 가는 이유이다. 인종도 그 중의 하나이고, 여자냐 남자냐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작가는 참인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맞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왜 어떤 이들은 자기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낫다고 말하는 걸까?'작가 줄리어스 레스터가 제시하는 답은 두.려.움.이다. '내가 너보다 나아. 나는 어디에 사니까, 무슨 학교에 다니니까, 돈이 더 많으니까…….'이것은 모두 참이 아닌 잘못된 이야기이다. 차별이라는 가면 밑에 숨어 있는 알 수 없는 불안감, 바로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자꾸 거짓 이야기를 지어내게 하는 뿌리인 것이다. 기억하는가? 첫 장면의 노란색이 상징하는 바가 바로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라는 것을. '참이 아닌 모든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자. 그 이야기가 참인지 아닌지는 용기를 가지면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다. 이 책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렵지 않느냐는 견해들도 있다. 그것은 인종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어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부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를 가져 보면 어린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인종 이야기에 대한 참된 마음과 태도를 충분히 공감하게 될 것이다. 참인 것은 누구에게나 쉽다! 어려운 것은 거짓일 뿐. 만약 참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오랫동안 참을 외면하고 거짓 이야기로 살라고 부추겨 온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살갗을 벗어 버리는 용기
카렌 바버가 그린 살갗을 벗겨 낸 우리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머릿속에 들어 있던 편견이니 차별이니 불평등 같은 단어는 싹 사라지고 그냥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마음이 재미있고 즐겁다. 이런 모습으로는 싸움도 비난도 저주도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그렇다. 참된 만남 속에서는 미움이나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편안함과 서로에 대한 위로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보렴, 이렇게 한 꺼풀 살갗만 벗겨 내면 나는 너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남자와 여자가 다를 것 없고, 우리와 그들이 다를 것 없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여태 무엇을 보아 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아 그래, 왜 그걸 잊고 있었을까? 우리가 진정 서로에게 들려주고 또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피부색과 눈 모양, 머릿결 너머에 참된 마음의 이야기가 아닌가?'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나의 살갗을 벗어 버리는 용기, '자신을 드러내는 용기'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선물은 이 책의 첫 장면에서 본 온전한 행복감의 상태일 것이다. 

우리의 참된 이야기를 향하여
참된 인종 이야기는 단지 우리가 속한 다문화나 국제화 시대의 필요나 사회적 요구 때문만은 아니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나 편견 없는 개방성은 온전한 개인화와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발달 과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생각하는 인간'(Homo-Sapiens)이 아니다. 이제는 '이야기하는 인간'(Homo-Narrans)의 시대이다. 아직도 자기 보호에만 급급해서 '차이'를 두려워하고 있는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에게 우리는 참된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한다. 앞으로 써 나갈 우리의 참된 이야기가 서로를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하게 해 줄지에 대해 자꾸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고, 모두 연결되어 있단다. 살갗을 벗은 만남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함께 행복할 수 있고,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해지는 길이란다. 오래된 잘못된 이야기는 이제 벗어 버리자. 참된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자고.'       

 
신혜은
따뜻한 감성의 양띠 엄마입니다. 개띠와 소띠인 두 딸 때문인지, 특히 강아지와 송아지가 예쁘다고 합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아동학을 공부한 아동심리학자이며, 여러 어린이책을 기획하고 글을 썼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서치료에도 관심이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