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교감하는 역사 읽기

지난해부터 가르치기 시작한 아이들은 모두 열두 명이다. 일고여덟 살 먹은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는 교실 안팎에서 수없이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자기 책상으로 공책이 넘어왔다고, 놀렸다고, 건드렸다고, 치기 장난 하다가 자기를 잡았다고…… 싸우는 이유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아무 일 없다가도 내가 돌아서는 순간 뒤에서 치고받고 싸우다 코피가 터지기도 한다. 이런 교실 안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느끼면 참지 못하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자주 일어나는 사소한 싸움은 서로 사과를 하면 해결되지만 도무지 사과할 마음이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수업이 모두 끝난 뒤 남게 하는데 보통은 자기들끼리 해결하여 나중에 보면 어깨동무를 하고 있거나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다 해결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화나게 했는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싸운 아이들뿐만 아니라 옆에서 본 아이들의 이야기도 모두 들어 본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명수들이다. 그러니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 조각을 모아 조합을 해 보아야 객관적인 상황이 떠오른다. 과거는 이미 사라져 버렸기에 그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그 상황에 대한 그림이 아이들 안에 떠오르게 되면, 아이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지를 이해한다. 그럴 때 문제는 해결되고 평화가 찾아온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문제들로 갈등을 겪어 왔는데 그 가운데 하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있다. 권윤덕의『꽃할머니』는 바로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의 작가들이 이제는 평화로워지자고 말하기 위해 그림책을 출간하기로 하였는데 그 첫 번째 책이 바로『꽃할머니』이다. 이 책은 열세 살 어린 소녀가 맞닥뜨린 잔혹한 역사의 순간으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그리고 있다.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나 평화롭지 않은 상황을 그림으로써 평화는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어진다. 그렇기에 인간에 대해 가장 극심한 폭력이 자행되었던 전쟁, 나아가 여성의 성적인 착취가 이루어졌던 바로 그 문제를 다루는 것은 적절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는 자체만으로 이제 더 이상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강한 감정이끓어 오르기 때문이다.『꽃할머니』를 읽다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얼른 책을 덮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고 작가가 그려내는 이미지들이 불러오는 과거의 장면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라 우리를 거기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꽃할머니』의 그림 가운데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린 그림들은 이러한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해 준다. 칸칸이 들어찬 방마다 꽃다운 여성들이 눈물 흘리고 있고 그 앞에바지를벗고서있는남자들이있다.‘ 몸도마음도바치는아가씨의서비스’라는글씨가 보이고 성병 진료소에서 쓰는 도구들도 보인다. 막사를 둘러싸고 줄줄이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군인들의 모습은 우리들까지도 몸서리치게 만든다. 이런 한 장의 그림은 수천마디 말보다도 더 강하게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다.

할머니를 중심에 둔 다른 그림들은 할머니의 삶을 따라 이어져 간다. 꽃으로 시작해 꽃으로 이어지는 그림들이다.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소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제비꽃, 허물어지는 몸과 마음처럼 흩어지는 꽃잎들, 할머니의 가슴에 켜켜이 눌려 쌓인 한처럼 꼬옥 눌러 말린 꽃으로 그린 꽃 그림…… 모두가 아프다. 꽃은 할머니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현실에서는 피워 내지 못했던 아름다운 꽃을 부여잡고 할머니는 차마 견딜 수조차 없어 정신을 놓아 버려야 했던 삶을 견디어 냈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래서 피투성이 역사를 증언하는 것, 그것이 할머니에게 주어진, 숨겨진 역사적 과제였을 것이다. 들끓는 역사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수많은 평범한 이들의 삶은 그래서 소중하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폭력에 분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을 수 있다.

풍부하고 다양한 방식의 그림에 비해 글은 절제되고 간결하게 이어진다. 마치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쓴 듯 담담한 글은 할머니의 삶 속으로 독자들이 뛰어드는 것을 막고자하는 듯이 보인다. 어른이나 청소년들에게 이런 형식은 적절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을 아이들이 읽기를 바란다면 조금 더 아이들의 특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싶어 한다. 모든 이야기 조각들을 작가가 세심하게 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를 알아 가며 그 사람의 영혼과 자신의 영혼이 공명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안에서는 그 상황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싹틀 수 있다.

단순히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다시는 이 세상에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돼.’라는 강한 소망이 자리 잡아야 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아프고 고심했는지는 충분히 드러나고 있기에 아이들은 이 책에서 작가의 영혼과 교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을 바라는 많은 작가들의 영혼이 빚어낼 다른 책들도 그래서 기대가 되고 기다려진다.

오히려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많은 부분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 일이 있은 지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아직도 아이들과 여성들이 끌려가 성적인 폭력을 당하는 현실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 평화로운 세상을 아이들에게 주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우리 안에 필요할 때이다.


김찬정│초등 대안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아이들과 세상이 만나도록 이어 주는 일을 하며 기쁨을 느끼곤 한다. 그러기 위해 모든 세상사에 관심을 갖고 살펴보려 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동화와 옛이야기에 담긴 세상을 살필 때 몹시 즐겁다.

꽃할머니
(권윤덕 글ㆍ그림)
열세 살 나이에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가 끔찍한 고통을 받고 일생을 다 잃어버렸던 꽃할머니, 몇십 년이 흐른 뒤에야 가슴에 묻어 두었던 아픈 과거를 세상에 꺼내 놓고 역사의 증인이 된 꽃할머니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담겼다.

사계절 즐거운 책 읽기 2010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