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베타_미래 상상과 현실 탐구가 만나는 이야기 세상

풍성하게 차려진 과학소설의 잔칫상
 
‘한낙원과학소설상’은 우리나라 과학소설의 개척자인 한낙원(韓樂源, 1924~2007) 선생을 기려서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상이다. 한낙원 선생은 1950년대 말 과학소설 발표를 시작한 이래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고, 『잃어버린 소년』 『금성 탐험대』 『인조인간 피에로』 등 많은 작품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직도 어린 시절 읽었던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은데, 한낙원 선생이 일찍이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을 개척했지만 지금은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이라 하면 오히려 그 상(像)이 또렷하게 그려지지 않는 형편인 것 같다.
매년 나오는 과학소설 작품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고,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이론적, 비평적 논의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실정에서 창작자나 독자 모두 선뜻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떻게 써야 할지, 어떤 작품을 찾아 읽어야 할지, 또 과학소설이 어떤 의의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막연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한낙원과학소설상은 이러한 상황에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 과학소설에 뜻을 둔 예비 작가나 신인 작가들에게 마당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 일반 공모나 출판에서 과학소설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 장르만을 공모하여 시상하는 것은 과학소설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제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인 『안녕, 베타』는 모처럼 차려진 풍성한 과학소설의 잔칫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당이 펼쳐지니 이처럼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모였다. 수상작인 「안녕, 베타」를 비롯해 수상 작가의 신작, 다섯 편의 우수 응모작 등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형형색색으로 잔칫상을 수놓는다.


복제 인간과 청소년의 자아 찾기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이 당연히 갖게 되는 특성일까? 크게 보면 청소년의 정체성 찾기, 자아 찾기로 수렴될 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로봇 이야기나 인조인간 이야기에 여러 작가들이 도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주제와 관련된 관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안녕, 베타」(최영희)는 자신과 꼭같이 복제된 ‘대체 인간’과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다루고 있다. 제품명 ‘TXR0091-베타진아’는 열여섯 살 진아가 해야 할 궂은일들을 대신 하게 하려고 진아 아빠가 주문한 대체인간이다. 그런데 베타진아의 행동에서 진아는 혼란을 느낀다.
또 하나의 당신이란 말은 거짓이었다. 아까 녹물 웅덩이에서 베타의 손을 잡았을 때 진아가 본 것은 그저 진아를 본떠 만든 대체 인간의 눈빛이 아니었다. 난처함과 염려가 갈마들던,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던 타인의 눈길이었다. 베타는 진아의 대체물이 아니라 전혀 다른 존재, ‘남’이었다. 그건 34개월이나 남은 할부금과는 눈곱만큼도 어울리지 않는 깨달음이었다. (…) 대체 인간이 프로그래밍된 업무를 수행한 게 아니라, 베타라는 아이가 진아를 대신해 수학여행을 가고, 워크숍을 하고 밤마다 이층 침대 위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17면)
진아는 베타가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만 동시에 독립적인 자아를 갖고 있는 존재임을 알아차린다. 진아는 베타를 따라 빈민가까지 가서 다른 세계를 보게 되고, 그때 베타는 진아에게 악차이 할아버지를 찾아가겠다고 말한다.


 
“바이오칩을 제거한 뒤에는 뭘 하고 싶은데?”
“악차이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다시 한 번 리뉴얼해 달라고 할 거야.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어떤 모습?”
“구체적으로 바라는 건 없어. 그냥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외모면 돼. 쫓겨 다니지 않고 사람들 틈에 묻혀 지내고 싶어. 그래야 내가 누군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생길 테니까.” (27면)
 
「안녕, 베타」는 대체 인간인 베타의 홀로 서기를 그린 이야기인 동시에 진아의 홀로 서기를 그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진아가 베타를 자유롭게 해주어 베타가 원인간인 진아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은 곧 진아가 대체 인간의 도움을 받아서 시민 등급을 높이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힘으로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본떠 복제됐지만 대체 인간이 아니라 ‘베타라는 아이’임을 안다는 것, 그 인식은 진아에게 베타를 더 이상 구속할 수 없게 하였고, 복제된 존재인 베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얻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해 나간다. 이는 ‘대체 인간’이라는 미래의 과학적 가능성이 실현된 세계를 상상함으로써, 대체 인간과 맺는 관계의 실험을 통해 청소년의 자아 찾기와 홀로 서기를 자연스럽게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베타는 복제된 인간이면서 복제된 인간을 넘어 독립적인 자아를 발달시켰다. 그러나 과연 인간의 복제가 잘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어 볼 수도 있다. 「지금부터 진짜」(홍유정)는 그런 질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클론으로 탄생한 나우가 ‘진짜 나우’가 되기 위해서는 나우의 기억을 모두 회복해야 한다. 복제된 아이와 본래 아이의 유령이 교섭하는 이야기는 신선하며, 정교하게 점층적으로 전개된다. 유령이란 단지 복제된 나우의 기억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환영이라고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클론이 겪는 심리적 혼란의 묘사가 생생하고, 나우가 어떤 아이인지 차츰차츰 드러나는 것도 흥미롭다. 나우의 부모는 아들을 되살리고 싶은 열망으로 나우를 복제했고, 나우의 기억이 살아날수록 진짜 나우로 받아들이게 된다. 끝은 해피엔딩이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뒷이야기로, 아들로 받아들인 클론과의 관계가 변함없이 유지될까 하는 문제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사람의 친구, 로봇
「엄마는 차갑다」(경린)는 엄마 로봇이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 엄마 로봇은 「안녕, 베타」의 대체 인간이나 「지금부터 진짜」의 클론처럼 완전한 인격체가 아니다. 엄마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점도 많을 때 아이가 엄마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엄마가 없는 자리에 온 엄마 로봇 M101은 외모와 목소리가 엄마와 거의 같지만 따뜻한 체온을 지니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로봇 엄마의 방에서 로봇 엄마를 껴안고 함께 자고, “엄마한테 로봇이니 고물이니 그런 말 하지 마. 엄마는 로봇이 아냐. 고물은 더더욱 아니고.”(120면)라고 할 정도로 애착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충전 중인 상태의 로봇 엄마를 보았을 때, 그리고 폭발로 팔이 부서진 상태를 보았을 때는 엄마 로봇에게서 심하게 이질감을 느낀다. M552는 발전된 엄마 로봇으로 따뜻한 체온을 지녔고 요리도 훨씬 잘하지만 엄마 목소리와 엄마 얼굴을 지니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로봇을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이들이 엄마와 어떤 지점에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엄마 로봇의 주체성이나 자아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니며, 성장기의 아이에게 로봇이 엄마의 자리를 얼마나 대치해 주는가, 그 과정에서 아이는 어떻게 엄마로부터 독립해 가는가를 다루었다.
「레트와 진」(이인아)은 위와 같은 작품들에 비해 이색적이다. 사람이 아니라 두 마리의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것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도 정교하고 세련된 묘사가 주는 울림이 독자의 가슴을 야금야금 파고들 정도로 대단하다. 택배 상자에서 레트와 진이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부터 손에 잡히게 묘사가 생생하며,
 
소년이 원반 던지는 시늉만 해도 달려 나갔다. 원반이 하늘을 가르고 있을 때 그 아래에는 늘 원반보다 빠르게 달리는 레트가 있었다. 원반과 달리기 경쟁이라도 하듯 레트는 언제나 원반보다 앞서 있었다. 달리는 모습만큼은 공원에 있는 사람들의 작은 탄성을 이끌어 낼 만큼 멋졌고, 원반이 떨어질 때쯤이면 저 개가 얼마나 멋진 점프로 잡을까 기대에 차게 했다.
(…)
레트는 멋지고 웃겼다. 그리고 언제나 실패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 재미있는 것은, 레트가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 보인다는 것이었다. 떨어진 원반을 물고 소년에게 돌아올 때면 콧대를 잔뜩 세우고 거드름 피우듯 천천히 걸어왔다.
진은 소년이 원반을 던진 순간에 뛰어나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듣는지 어쩌는지 모르겠지만, 뒤를 돌아보거나 확인하지 않고도 원반의 위치를 항상 정확하게 파악했다. 원반을 잡을 수 있는 정확한 지점에서 점프해 단 한 번에 물고 착지했다. 노련한 럭비 선수처럼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95~96면)
 
레트와 진이 공원에서 소년과 즐기는 놀이 장면은 더한층 박진감이 있을뿐더러 각각의 특성을 섬세하게 그려 보인다. 둘 중 하나는 안드로이드 펫인데, 과연 레트일지 진일지 궁금증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다. 소년의 정체도 자세히 드러나지 않는다. 원반은 잔디 깎는 기계의 칼날 위로 떨어졌고, 레트가 원반을 물자 진은 레트를 밀쳤다.
큰 부상을 당했던 두 마리 개가 수리되고 치료를 받아 다시 택배로 배송되자, 소년은 “기억을 떠올릴수록 두 마리 털북숭이를 껴안고 싶은 마음과 절대로 깨우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엇갈려”(105면) 망설인다. 소년의 손에 남은 마른 살점과 합성 금속 조각의 존재처럼 둘은 차이가 있지만, 소년은 “자신의 모든 사랑과 다짐과 간절함”(106면)을 둘에게 똑같이 기울인다. 안드로이드 펫이 사람의 친구가 되었을 때의 세계상에 대한 하나의 정교한 관점이다.
 
미래 상상과 오늘의 재조명

「지구인이 되는 법」(권담)은 먼 미래의 우주여행을, 「내 맘대로 고글」(김란)은 무엇이든 다 해 주는 만능 고글을 다루고 있어서 앞의 작품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이 발달한 미래 사회에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는지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지구인이 되는 법」은 태양계 밖의 행성 뉴글로브로 이주하는 지구인들과 달리 꿈을 품고 다시 지구로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주 개척이 아니라 우주에서 역으로 귀환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지구에서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성공하고 싶은 준하는 엄청난 요금을 내고 동면을 하면서 30년간이나 항해하여 지구로 가고 있다. 태양계가 멸망하리란 예측은 빗나갔지만 식민회사는 지구인들의 뉴글로브 이주를 부추기는데, 뉴글로브인들은 식민지 행성에 태어난 것을 억울해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지구로 가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욕망과 노력의 이면이 밝혀지는바, 불법적인 인간 복제를 이용하고 있다. “장대만 있으면 그냥 뛰는 것보다 훨씬 높이 뛸 수 있지 않나? 내 아이가 더 높이 뛸 수 있다면 기꺼이 장대가 되어 주려는 게 부모 마음”(85면)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자식을 이등 시민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부모의 욕망과 희생을 다룬 이야기로 흘러간다.
「내 맘대로 고글」은 두뇌 인식 칩에 연결된 고글이 실현하는 가상현실에 폭 빠져 사는 ‘나’가 칩의 고장으로 예기치 않은 외출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집에서 고글만 쓰면 나오는 세상, 내가 만들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암벽 등반도 하고 거친 파도에 맞서는 선장도 되고 학교 수업도 받는”(137~138면) ‘진짜 세상’을 벗어나,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던 ‘가짜 세상’으로 외출해서 소년을 만난다. 그리고 공을 뺏고 뺏기면서 이제껏 알던 고글 세상 속의 농구가 아닌 실제 농구를 소년과 함께 즐긴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같이 뛰다가 설중이가 지쳐 잔디에 큰대자로 누웠다. 나도 설중이 옆에 누워 크게 팔을 벌렸다. 숨이 하늘까지 닿았다가 내려왔다.
등에 닿은 잔디의 촉감이 좋았다. 흙냄새, 땀 냄새가 좋았다. 진짜 잔디에 누우면 이런 기분이구나. 하늘을 보니 거실 유리창에서 보던 것과도 다르고 모니터에서 보던 하늘과도 달랐다.
(146~147면)
 
이렇듯 새로운 감촉, 새로운 냄새, 새로운 기분을 맛본 ‘나’는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9년이나 빠져 있던 고글과 입체 영상기에서 해방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과학소설은 대개 과학기술이 발달한 미래 사회의 여러 가지 변화된 삶의 조건을 상상하고 형상화하여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그려낸다. 연구나 철학이 아니고 문학의 한 장르인 만큼 무엇보다도 경이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상상과 탐구는 종종 오늘의 현실에 대한 재조명으로 귀결된다. 현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미래를 상상하고, 미래에 대한 상상은 다시 현실의 재조명이나 재발견을 이끌어 내는 순환이 발생한다.
「내 맘대로 고글」에서 잔디밭 농구 골대에서의 농구 연습, 「지구인이 되는 법」의 장대높이뛰기 스포츠, 「지금부터 진짜」의 자전거 타기 등은 오늘의 재조명으로서 생동감이 있으며 작품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기능한다. 「전설의 동영상」(최영희)의 경우는 포틴스라는 뇌 조절 장치를 시술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위트와 해학으로 전개하는데, 사춘기 청소년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는 오늘의 우리 사회 현실을 그대로 그려 보인 것이라 해도 무방한 작품이다. 순치되지 않는 청소년들의 싱싱한 욕망과 돌진에 희망을 걸고 있다.
과학소설이 현재의 재조명을 포함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인식 지평을 새롭게 하지 못한다면 자칫 오늘의 현실에 대한 상투적인 묘사를 모양만 바꿔 놓아 제시한 차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신인들은 더욱 경계할 지점이다.
한낙원과학소설상이 불러낸 이야기의 잔칫상. 어린이 청소년 과학소설의 길을 찾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발랄한 상상력과 이야기 솜씨가 입맛을 돋운다. 꼭 과학소설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골치 아프지 않고 술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풍성하다. 읽다 보면 사람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의 주름이 펴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글 |김이구(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