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웅이라고?』 그림책 깊이 읽기 수업 기록



(1) 들어가며


2학년 통합교과의 첫 주제는 ‘나’이다. 대개 수업 내용은 자기 이름을 알고 자기가 사는 곳을 알고 좋아하는 것, 자신의 꿈 정도를 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것과 몸의 특징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때 몸의 특징은 일반적인 ‘사람’ 몸의 특징이다. 따지고 보면 내 특징이 아니라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 예를 들어 신체의 이름과 기능과 같은 것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다. 또 소개라 한다지만 외형적인 부분에 멈추는 경우가 많다. 생김새, 가족 수, 나이, 심지어 같은 교실에 있는데 꼭 학교와 학년을 소개 내용에 넣는다.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나’를 새 학년의 첫 번째 주제로 삼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나에 대해서 살펴보고 알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가장 기본되는 과정이다. 어쩌면 자신에 대해서 세심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없었고 친구들은 또 어떤 개성을 갖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욱 쉽지 않은 일이 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나를 돌아보고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평생을 두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나’ 수업에서는 좀 더 세밀하게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이를테면 언제 화를 참을 수 없는지, 다시 떠올려도 기분 좋은 기억은 무엇인지, 친구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 간지럼을 잘 타는지, 잠은 언제 자는지, 등등이다. 그 수업의 시작으로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넓은 의미의 질문을 던지고 『내가 영웅이라고?』라는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2) 책을 읽어주며

책을 읽으려고 모두 한자리에 앉았다. 일주일에 한두 권 읽어주는 책은 다행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게다가 오늘 읽어줄 책은 그야말로 ‘웃기는’ 책이라 읽어주려고 앉은 내 마음도 편하다. 표지에 있는 얘는 ‘누구지?’라고 물어보니 너무 당연하다는 듯 ‘토끼잖아요.’ 한다. 제목을 함께 읽었다. ‘내가 영웅이라고?’ 영웅에 물음표가 있다. ‘어떤 경우에 영웅이라고 할까?’ 하고 물으니 아이들이 어벤져스 인물들을 외쳤다.
“좋아, 그럼 영웅이라면 적어도 이건 갖고 있어야지 하는 걸 떠올려봐. 여학생부터 생각해 놓은 것을 정지 동작으로 나타내보자.”
여학생부터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지 동작으로 나타냈다. 아무래도 영웅이라는 것에 무기와 같은 것들이 주로 떠오르는지 대부분 여학생들이 주먹 쥐고 섰다. 역시 설명을 들어보니 모두 ‘힘’, ‘주먹’과 같은 것이다. 남학생들도 내용으로는 다를 게 없었지만 훨씬 움직임은 다양하다. 게다가 게임이나 만화영화에서 본 무기를 구체적으로 흉내 내고 이름을 말했다.
“그렇구나. 역시 영웅은 큰 힘을 가져야겠구나. 그 힘으로 무엇을 했을까? 힘이나 무기만 있다고 영웅이라고 하지는 않을 텐데.” 라고 하니 이제는 지구를 구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구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럼 힘이 없으면 아예 영웅이 될 수 없겠구나 하니까 그건 아니라고 한다. “그럼 또 뭐가 있으면 영웅이 될 수 있는데?” 하니까 몇몇 아이들이 용기, 착한 마음도 있어야 된다고 말했지만 남학생 몇은 여전히 게임에 등장하는 무기 이름만 외쳤다. 아이들이 영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보려고 한 활동이라 더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래, 그럼 이 토끼는 어때서 내가 영웅이라고? 라고 물었을지 읽어보자.
책의 도입은 영웅과 전혀 상관이 없다. 토끼인 것이 너무도 분명한 데일리 비가 자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며 ‘나 000이야?’ 하고 묻는데 아이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나 산미치광이야?’ 하고 물으니 그제야 깔깔깔 웃는다. 아마도 산미치광이라는 이름과 실제 산미치광이가 토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서 살아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를 묻는 데일리 비에게 아이들이 저절로 “토낀데.” “당근 먹어야지.” “나는 사람인데.”라고 대답했다.
“자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일리 비가 여러분은 어떤지 궁금하대요. 그래서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을 여기 이 의자에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자 000 나오세요.”
아이가 주춤거리며 나왔다. 원래는 하고 싶은 사람이 손 들게 할까 싶었는데 슬쩍 보니 너도 나도 하려고 할 것 같아 그냥 앉아서 가장 말을 많이 하고 싶어했던 00을 초대한다고 했다.
“네. 오늘 자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분을 모셨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빼빼로입니다.”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앉아서 말할 때는 인간이라고 했던 아이다.
“아, 그렇군요. 혹시 무엇 때문에 빼빼로라고 하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너무 삐쩍 말라서 친구들이 저를 빼빼로라고 부릅니다.”
자연스럽게 아이 몸의 특징이 나왔다.
“그렇군요. 그럼 빼빼로 씨는 무엇을 먹나요?”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나물은 안 먹습니다. 빼빼로도 잘 먹습니다.”
“아, 그렇군요. 빼빼로가 빼빼로를 먹는군요. 그럼 어디에서 사나요?”
“빼빼로 통 안에서 삽니다.”
“아! 거긴 살기가 어떻습니까?”
“좀 좁습니다. 그래서 잘 부러집니다.”
“네, 몸 조심하기 바랍니다. 이상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빼빼로 씨였습니다.”
우리 집에서 산다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는 정도로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별명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다. 첫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다른 아이들도 자기가 발표하겠다고 난리다. 모두 자기 별명을 말할 것 같다. 이번에는 가장 조용히 앉아서 책을 듣고 있던 아이를 초대했다.
“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박주가리입니다.”
“아! 박주가리는 꽃인가요?”
“네, 꽃입니다.”
“무엇을 먹나요?”
“이슬과 햇볕을 먹습니다.”
“어디에서 사나요?”
“땅에서 삽니다.”
“네, 그럼 혹시 자신이 왜 박주가리 꽃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박주가리는 내 이름이랑 닮았는데 박주가리꽃을 보니까 예뻐서 마음에 들었어요.”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자기의 별명을 이야기했다. 이렇게 세 명을 더 했다. 한 아이는 자기가 변신하고 싶은 장난감으로, 두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과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했다. 손톱이 좀 길어 보이길래 ‘손톱은 왜 있는 걸까요?’라고 물으니까 물건을 잡으려고 있다고 대답했다. 머리카락이 긴 친구에게 ‘머리카락은 왜 있나요?’라고 물으니 잘 모른다고 했다.
잘 됐다 싶어서 그럼 여기 머리카락이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음 시간에 ‘자신의 몸에 이것이 왜 있나?’ 하는 질문을 다시 해보자고 했다.
 
나무 위에서 도토리를 먹으며 살기로 한 데일리 비는 또다시 자신의 발이 왜 이렇게 큰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먹으며 살아야 할지, 나에게 맞는 일은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많은 어른이 여전히 자신에게 맞는 건지 확실히 알지도 못한 채 일터에 나가며 어디에서 살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여러 가지 핑계로 깊이 고민하지 못하고 그냥 세상 따라 살아가다가 자신의 길을 찾아 지내는 사람들을 보고 그저 부러워하기만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데일리 비의 고민은 우습게 보이지만 결코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하지만 데일리 비에게 위험이 닥쳤다. 주위의 동물들이 위험을 알려주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데일리 비는 천진난만하게 족제비 재지 디를 마주한다. 그리고 재지 디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 책장을 넘기기 전에 어떤 질문을 할까 하고 물어보았더니 아이들이 모두 대답했다. ‘넌 누구야? 어디에서 살아? 무엇을 먹니?’라고. 밝은 목소리로 데일리 비의 질문을 하고 최대한 음흉한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을 하다가 “와락 달려들었지요!” 하면서 그림책 장면을 멈췄다. 잠시 뒤 책을 덮었다. “왜 끝까지 안 읽어줘요?”하는 원성이 컸지만 모른 척하고 모둠끼리 어떻게 되었을지 장면을 상상하여 만들어보라고 했다.
한 모둠이 족제비한테 잡아먹혔다고 장면을 만들자는데 눈치 빠른 학생이 “그런데 왜 제목이 내가 영웅이라고 하지?”라는 질문을 했다. 그래서 다시 의논하더니 데일리 비가 나무에서 뛰어내린 뒤 토끼 구멍으로 쏙 들어가서 재지 디가 못 잡아먹는 장면을 만들었다. 다른 모둠은 발에서 힌트를 얻어 데일리비가 가까이 오는 재지 디의 얼굴을 큰 발로 세게 다다다 때리는 장면을 만들었다. 마지막 모둠은 “살려 줘!” 하고 외치니까 숨어 있던 토끼들이 나와 나무를 막 흔들어서 재지 디가 떨어지고 그 위로 데일리비가 떨어지면서 큰 발로 재지 디를 눌러버리는 장면을 그렸다. 모두 재치 있는 장면인데다가 제목과 데일리 비의 큰 발을 연관지으려는 아이디아가 놀라웠다.
이제 마지막 장면을 읽어주었다.
토끼들은 데일리 비가 영웅이라고 외치는데 데일리 비는 여전히 “내가 영웅이라고? 난 토끼인줄 알았는데….” 하며 특유의 천진한 고민을 이어갔다. 엉뚱해 보이는 데일리 비처럼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도 좀 더 깊이 생각해보자면서 책 읽기를 마쳤다.
 

(3) 읽고 난 뒤

책을 덮고 데일리 비가 직접 우리 교실에 찾아왔다며 집에서 갖고 온 토끼 인형을 내세우고 “너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아?” 하고 물었다. 모두 다 잘 안다고 대답했다. “그럼, 너희에 대해서 소개해줄래?” 하니까 좋다고 했다.
“아, 그런데 그냥 다 소개하면 재미없으니까 친구들도 너희에 대해서 아는지 퀴즈처럼 해보자. 나도 너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니까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선생님이 나눠주는 종이에 자기 자신의 특징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낱말을 적어줄래? 그럼 나랑 친구들이 맞춰볼게.” 했다.
내가 다시 알겠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그럼 데일리 비와 관련된 낱말을 다섯 개 같이 뽑아보자고 했다. 낱말 다섯 개를 칠판에 적었다.
1.토끼? 영웅? 2.큰 발 3.고민 4.재지 디 5.나무 위
이렇게 써 놓은 낱말을 보더니 아이들이 알겠다는 듯 자기와 관련된 낱말을 적었다. 처음 몇 명은 다섯 개까지 적을 게 없다 하고, 좋아하는 친구나 음식 이름만 다섯 개를 적으려고 했다. 고민하는 아이들한테 데일리 비가 다가가서 “너도 나처럼 네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구나. 나도 잘 몰랐는데! 그래도 5개 잘 생각해봐.”하면서 말을 거니 다시 또 적었다. 다 적은 낱말은 주머니에 넣고 데일리 비가 꺼내서 종이에 적힌 낱말을 읽었다. 서너 개만 읽어도 누구인지 잘 맞췄다. 희한하게도 자기를 맞추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해하던 아이들 얼굴이 환해졌다.
앞으로 나와 발표할 때도 다섯 개의 낱말을 왜 쓰게 되었는지 아주 자세히 설명한다. 자기를 표현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쉽게 말하는 아이들이 이런 시간을 통해서 조금씩 “그래, 이게 바로 나야.” 하며 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구들이 나한테 관심도 없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몇 개의 낱말만으로도 알아준다는 건 아이들에게 굉장히 기분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다음 시간에는 ‘나는 언제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