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가족]달팽이도 달린다

연일 무더운 날씨가 기승이다.' 여름은 덥기 마련이지' 하면서도 잠시만 걸어도 어질어질한 날씨에 집밖으로 한 발짝 떼기가 무섭다. 집 정리를 마치고 얼음 가득 채운 커피에 에어컨 앞에 앉았는데 창문하나, 에어컨 시설도 안되어있는 물류창고에서 잠시 쉬는 시간동안 제공되는 아이스크림으로 이 여름을 나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갑작스레 시원한 바람 부는 공간에서 책장 넘기는 순간이 미안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오늘 나의 호사스런 순간을 함께 한 아이는 5가지 단편동화로 구성된' 달팽이도 달린다.'이다.



짧지만 묵직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이 동화는 서로 다른 주인공과 에피소드가 등장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함께 발맞추고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예의에 대해 생각해본다. 함께 사는 세상에서, 우리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지켜보면 보이는 것들. 들리는 것들에 관한 5가지 이야기를 만났다.



-달팽이도 달린다: 선생님과 같은 종류인 반려달팽이 '팽이'를 키우는 진형이와 이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다민이 이야기이다. 애완동물도 아니고 '반려'동물인데,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던 가족, 진형이. 다민이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길래 진형이의 이런 점을 미리 눈치챈걸까?



-땡땡 님을 초대합니다:작가와의 만남을 앞둔 학교. 평소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온종일<괴물 잡는 아이>만 읽는 희석이는 땡땡 작가님을 기다리지만, 학교에 초대된 손님은 다른 작가님. 땡땡 작가님을 만나려면 우선 이메일을 보내보라는 초대작가님의 조언에 희석에게 우연히 이메일 주소를 빌려주게 된 주완이. 희석이가 보낸 메일에서 '우리 집에도 괴물이 있어요.'란 사연을 읽고, 희석이의 사정이 걱정된 주완이는 땡땡 작가님에게 간절한 초대메일을 보내게 되는데~



-잠바를 입고

'가난'한 연기를 하게 된 아역배우 하리. 전학온 친구 지현에게 낡은 잠바를 빌려입으면서 연기 지도도 함께 받게 된다.



-복어의 집: 제주 바다에서 만난 복어와 웅덩이에 바다생물을 잡는 아이들의 이야기



5개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던 것은 마지막, '최고의 좀비'이다.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는 미주, 친구 유진이 지나친 '도움'과 동생을 따라 할로윈 행사를 즐기게 된 이야기였는데~ '배려'란 이름으로 위장한 도움이. 정작 당사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상적인 부분을 함께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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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5

'휴, 오늘은 뭘 도와준다고 할까. 또 어떤 눈길로 나를 바라볼까.'

미주가 보기에 적응이 필요한 건 자신이 아니라 유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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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9

지나가던 어른들이 미주 다리를 힐끔거렸다. 이 동네 사람들도 나에게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겠네. 자주 돌아다녀야겠어. 미주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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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5

"나 안 힘들어. 앞으로 도와주고 싶으면 나한테 먼저 물어봐 줘."



이 책을 읽은 여러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걷고, 달리고, 구르고, 미끄러지면서 더 넓은 세상을 만나기를 바랄게요. 저도 그러도록 노력할 거예요.

-작가의 말 중-

누구나 각자의 속도로 걷고, 달리고, 구르고 , 미끄러져도...안전한 세상을 꿈꾼다.

쉬이 동정받지도 비난 받지도 않는 세상이 판타지가 아니길 바라며, 지금 최고로 안전한 내 공간에서 일렁이는 이야기를 만나 더 반갑다. 달팽이의 속도로 느긋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이야기들을 동화 속에서 풀어주어 더 고마운 동화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