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란다 복제하기』 역자 후기



『미란다 복제하기』
우리 삶에 퍼져 나갈 미란다의 용기 있는 질문


자신의 삶이 첫 단추부터 거짓으로 끼워졌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떨까?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완벽한 삶을 살던 미란다는 어느 날 불치병을 진단받는다. 그리고 치료 과정에서 부모와 멀린 박사가 자신이 아플 때를 대비해 복제인간 아리엘을 만들어 실험실에서 키웠다는 사실과, 자신 역시 병으로 사망한 언니 제시카의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에 완벽한 아기를 만들어 판매하려는 멀린 박사가 숨겨 둔 또 다른 복제인간 이브가 등장해 미란다와 아리엘을 위협하면서, 미란다의 삶은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번역 전 『미란다 복제하기』를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자신만만하고 어려움이라곤 모르는 미란다가 별로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찬 미란다를 주축으로 미란다와 여정을 함께 하면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아리엘과 든든한 친구 엠마까지, 세 여성 청소년의 모험을 따라가면서 이내 이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미란다는 흔한 복제인간 서사에서처럼 타인의 필요에 따라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객체가 아니라, 그 자신이 복제인간이자 복제인간의 수혜자로서 개인의 정체성, 환경과 유전의 관계, 부모의 의미 등 다양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한다. 독자는 1인칭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새침하기만 했던 미란다에게 점차 공감하게 된다.

상상의 대상이었던 AI가 일상이 되고 서로가 긴밀히 연결되어 타인과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지금, 『미란다 복제하기』는 1999년 처음 출간된 작품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의성 넘치는 여러 질문을 던진다. ‘만들어진 존재’는 인간인가? 나와 타인이 다른 까닭은 무엇인가? 기술의 발전이 용인되는 한계는 어디인가? 또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굵직한 사건 위주로 전개되어 지루하지 않고, 청소년 화자다운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부담 없이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갈 수있다.

청소년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섣불리 『미란다 복제하기』를 성장담으로 정의하고 싶지는 않다. 작품 속에서 미성숙한 것은 오히려 어른들이다. 이들은 돈과 기술만 있으면 생명을 마음대로 다루어도 된다고 믿고, 아이들이 갖는 정당한 의문을 어리다는 이유로 묵살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벌컥 화를 낸다. 그리고 미란다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런 어른들의 불완전함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답을 찾아 간다. 미란다의 모습은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질문에 해답을 주지는 않지만, 그 질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한다. 두려움 때문에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정말 두려운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 미란다의 마지막 말처럼, “누구도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